학예사는 왜 정대협 측에 3급 정학예사 자격증을 보냈나

윤미향 7차 공판...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학예사, 검찰 측 핵심 증인으로 출석

2015년 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실내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남긴 것으로 보이는 메모가 남겨져 있는 모습. 자료사진ⓒ뉴시스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11부(재판장 문병찬)는 24일 서부지법 303호 법정에서 윤 의원 등의 보조금관리법 위반, 사기 등 혐의에 관한 7차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공판에는 검찰 측 핵심 증인으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학예사 A 씨가 나왔다.

이 학예사는 정대협이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지자체 등록박물관으로 인정받기 위한 신청 절차를 밟을 당시, 정대협 측에 이메일로 “박물관 등록하는데 도움이 필요하면 또 말하라”라며 정학예사 자격증을 보내준 이다. 하지만 A 씨는 검찰조사에서 “박물관 등록에 사용하라고 자격증을 보내준 적 없다”라고 진술했다. 검찰은 이 진술을 근거로 윤미향 의원이 대표로 있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학예사를 보유하고 있지 않으면서 A 씨 몰래 A 씨의 학예사 자격증으로 서울시 박물관 등록 심사를 통과하여 수년 동안 1억5천여만 원 상당의 국가보조금을 부정 수령했다고 보고 있다.

학예사는 왜 3급 정학예사 자격증을 보냈나

이날 공판은 시작부터 분위기가 무거웠다. 판사 입장까지 서류 넘기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검찰 측 핵심 증인으로 출석한 학예사 A 씨는 증인석에 앉기를 꺼렸다. 증인석과 방청석은 떨어져 있었지만, A 씨는 “안전을 위해 어머니와 함께 왔다”라며 어머니와 함께 증인석에 앉을 수 있게 해 달라며 한참을 머뭇거렸다. 이에 판사는 “어머니는 방청석에서 방청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고 제안했고, 증인은 이를 받아들였다. A 씨는 다른 증인이 출입하는 문이 아닌 검사들이 출입하는 문을 통해 법정에 입장했고, 어머니는 방청객에 앉아 재판을 지켜봤다. 특별히, A 씨와 A 씨 가족을 위협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심문 중 제시된 경력증명서와 A 씨의 책 등에 따르면, A 씨는 2008년부터 2년간 상근하면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건립위원회 학예사 업무를 했다. 그는 호주 유학 시절 ‘위안부’ 증언대회에 참석했다가 윤미향 의원(당시 정대협 대표)을 만나 명함을 받았고, 귀국 후 윤 의원을 찾아가 박물관 건립위 일을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일을 시작한 A 씨는 지금의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토대를 구축했다.

A 씨는 2009년 이후 박물관 건립위 상근직을 그만두고 책 집필과 여러 차례의 언론 인터뷰를 하는데, 해당 책과 인터뷰에서 그는 박물관 건립위 활동을 매우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또 자신을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큐레이터”라고 소개했다. 이 같은 소개는 그가 건립위에서 일하면서 외부 단체와 주고받은 이메일에서도 여러 번 등장하며, 한 포털사이트에도 자신을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큐레이터”라고 소개하고 있다. A 씨 설명대로라면, 국내에서 큐레이터는 보통 학예사라는 의미로 쓰인다.

A 씨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학예사로 상근하면서 동시에 지인이 관장으로 있던 ○○박물관에서도 일했다. A 씨는 지인이 관장으로 일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고 했다. ○○박물관은 등록박물관 중에서도 인력·시설·자료의 관리실태 및 업무실적에 대한 전문가 실사를 거쳐 인정된 경력인정대상기관이었다. A 씨는 이곳 ○○박물관에서 2년 동안 일한 경력으로 ‘3급 정학예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가 검찰 측 핵심 증인인 이유는 그의 증언에 따라 ‘정대협이 학예사를 보유하지 않았으면서 보유했다고 서울시를 속이고 지자체 등록박물관이 됐는지’ 여부를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 등록박물관이 되려면 학예사 1명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다만 학예사가 반드시 상근해야 하는지 여부는 명시적인 지침 또는 법규가 없다.

제시된 증거자료와 A 씨의 진술은 일맥상통한다고 보기 어려웠다.

A 씨는 정대협 상근직을 그만 둔 후 학업 등에 전념하던 중 정대협이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박물관등록 절차를 밟을 무렵인 2012년 12월 17일 이메일로 정대협 측에 자신의 이력서와 함께 ‘3급 정학예사 자격증’을 보냈다. 정대협 측은 이 자격증으로 박물관 등록 절차를 밟을 수 있었고, 서울시 등록박물관이 될 수 있었다.

단순히 자격증을 보낸 것이라면 별다른 다툼의 여지가 없을 수 있지만, A 씨는 해당 이메일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박물관 등록하시는데 도움 필요하시면 또 말씀해주세요.”

이 이메일 내용대로라면 박물관 등록에 필요한 자료를 보냈다고 볼 수 있다. 이메일 내용과는 다르게, 그는 검찰조사에서 박물관 등록에 사용될 자격증이었다면 절대로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는 ‘박물관 등록을 위해 자격증을 내어준 것은 불법대여’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날 공판에서 정대협 변호인이 해당 증거자료를 제시하자, 그는 “레퍼런스(참고용) 형태로 보낸 것”이라며 참고용으로 학예사 증명서를 보내달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보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대협 측 변호인은 “참고용으로 박물관 등록 기준에 맞는 시설 현황 등은 보낼 수 있다고 보는데, 정학예사 자격증은 어떤 참고용으로 보내나”라며 의아해했다. 그러면서 “올 한 해 동안 학예사 자격증을 누군가에게 보낸 적 있느냐”고 질문했다. 이에 A 씨는 “네이버만 쳐도 내 경력이 나오기 때문에 네이버를 찾아보라고 한다”라고 답했다. 그는 검찰 측 심문에서는 “학예사 자격증은 이렇게 생겼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보냈다”라는 취지로 답했다.

2020년 6월 1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1,443차 정기 수요시위에서 고 손영미 소장의 영정이 놓여 있다. 2020.06.10ⓒ김철수 기자

A 씨가 정대협 측에 전달한 자신의 국민은행 통장 개설 날짜도 의아한 지점이다.

검찰은 정대협 측이 A 씨의 국민은행 통장을 A 씨 모르게 임금통장으로 사용하고 이 통장에서 임금을 빼내 다시 정대협 운영비로 사용했다고 본다. 실제, 2013년부터 약 3년 동안 매달 이 통장으로 인건비 성격으로 160만 원씩 입금됐고 ATM기계에서 현금으로 인출된 뒤 다시 정대협 운영비 통장으로 입금됐다. 이에 대해서도, A 씨는 검찰조사에서 “모르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A 씨가 문제의 통장을 개설한 날은 2013년 1월 11일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등록심의가 있던 날이다. 정대협 측은 당일 학예사의 답변이 필요할 수 있다는 담당공무원의 말에 A 씨가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제시된 국민은행 신규거래서의 글씨 또한 A 씨의 글씨였다. 찍혀 있는 도장도 A 씨가 사용하던 도장이 맞았다. 하지만 A 씨는 당일 근처에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등록심의가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고, 어떤 경로로 통장과 비밀번호를 정대협 측에 전달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A 씨는 “모금에 사용될 통장인 줄 알았다”라며, “속아 이용당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또 당일 근처 배재학당에서 자신이 준비하던 전시 회의가 있었던 거 같다고 했다.

A 씨는 2015년 5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운영위원회 회의에 운영위원으로 한 차례 참석한 사실도 있다. 하지만 이 또한 A 씨는 “운영위원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가볍게 생각하고 갔다”라고 말했다. 여러 차례 발송된 운영위원 회의 일정 단체문자에 ‘운영위원’이라고 명시돼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운영위원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다만, A 씨는 운영위원으로 한 차례 참석 뒤 이후 열린 운영위원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제시된 휴대전화 기록을 보면,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관장이 여러 차례 A 씨의 의사를 묻기 위해 전화하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지만, A 씨는 이에 답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재판에서 A 씨는 회의에 나가지 않겠다고 의사를 밝힌 적이 없었고, 박물관 문자를 스팸처리 했다고 말했다.

박물관 관장과 A 씨의 연락은 한참 뒤에야 이루어졌다. 박물관 측은 A 씨가 운영위원으로 참석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A 씨를 운영위원 명단에서 뺐다. 이후 이루어진 국가보조금 신청에서도, 박물관은 학예사가 있다고 명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날 검찰은 정대협 측 관계자가 A 씨에게 전화를 걸어 나눈 대화 녹취파일을 공개했다. 이는 A 씨가 검찰조사를 2차례 받았을 무렵 정대협 측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와서 녹음한 파일로, A 씨는 자신이 단순 피해자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검찰 측에 이 자료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36분가량 되는 녹취파일 중 70~80%가량 들어봤을 때, 정대협 측 관계자가 A 씨를 회유하거나 압박한다는 내용은 없어 보였다. 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당시 상황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었다. 정대협 측 관계자가 A 씨의 기억에 “당황스럽다”라고 말하는 대목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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