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에 완성차 기업이 전시장을 꾸린다. 출시를 앞둔 신차, 미래 기술을 집약한 콘셉트카가 전시된다. 현대자동차는 다른 모습이다. 자동차가 아닌 로봇을 전면에 내세운다.
현대차는 5일(한국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CES 2022에서 보도발표회를 열고 미래 비전을 발표했다.
이번 발표에서 자동차는 등장하지 않는다. 현대차는 로보틱스 기술에 집중했다.
모든 사물에 이동성이 부여된다는 의미의 MoT(Mobility of Things) 개념이 제시됐다.
현대차는 MoT를 구체화한 기술을 공개했다. 플러그 앤 드라이브(Plug&Drive Module·PnD) 모듈이다. 바닥에 바퀴가 달린 원통 모양이다. 모터와 브레이크 시스템, 주변을 인지하는 센서로 구성된다. PnD 모듈을 사물에 결합하면 운송 수단이 된다.
현장에는 PnD 모듈을 활용한 콘셉트 모델이 전시됐다. 퍼스널 모빌리티는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캡슐에 PnD 모듈 네 개가 달린 형태다. 캡슐 공간은 너비 133cm, 길이 125cm, 높이 188.5cm로, 중앙에 의자가 설치돼 있다. PnD 모듈의 휠은 5.5인치다.
자가용이나 대중교통 등 기존 교통수단에서 내려 최종 목적지까지 가는 길을 이르는 라스트마일을 이동하는 데 쓰일 수 있다. 스티어링휠이나 페달 없이도 좌석 우측에 설치된 조이스틱으로 운전할 수 있다.
용도에 맞게 캡슐을 바꿀 수 있다. 짐을 실어 나르기 편리하도록 설계된 캡슐을 적용한 게 서비스 모빌리티와 로지스틱스 모빌리티다. 서비스 모빌리티는 호텔 등에서 짐을 효율적으로 운반할 수 있도록 천장에는 옷걸이, 바닥에는 세로 칸막이가 달렸다. 로지스틱스 모빌리티는 물류창고에서의 사용성을 고려한 모델로, 두 개의 가로 선반이 있다.
초소형 자동차도 만들 수 있다. L7에는 12인치 휠의 PnD 모듈이 적용됐다. 너비 140cm, 길이 190cm, 높이 70cm로 사람 한 명이 앉을 수 있는 크기다. 퍼스널 모빌리티처럼 조이스틱을 통해 조작할 수 있다.
드라이브 앤 리프트 모듈(Drive&Lift Module·DnL)은 현대차가 제시하는 또 하나의 MoT 기술이다. 휠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도록 설계된 모터가 각각의 휠에 장착된다. 휠의 높낮이를 운행 환경에 맞게 조절할 수 있어, 경사진 바닥에서도 차체를 수평으로 유지할 수 있다.
현대차는 DnL을 기반으로 한 소형 모빌리티 플랫폼 모베드를 선보였다. 납작한 차체에 바퀴 네 개가 달렸다.
PnD 모듈과 마찬가지로, 모베드도 유연성을 강점으로 한다. 안내·배송 등 무인 서비스뿐 아니라 사람이 탑승 가능한 버전까지 다양한 형태로 활용할 수 있다. 현대차는 모베드에 안내문과 유모차를 적용한 모델을 소개했다.
최대 속도는 30km/h로, 용량 2kWh의 배터리로 1회 충전 시 약 4시간 주행할 수 있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네 개의 다리로 걷는 로봇 스팟과 함께 연단에 올랐다. 스팟은 지난해 현대차그룹이 인수한 보스턴 다이내믹스와의 첫 협력 프로젝트다.
스팟은 비전 센서와 음향 센서, 온도 감지 센서, 스테레오 카메라 등을 탑재해,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위험지역에서의 임무를 수행한다.
최고 속력은 5.76km/h, 최대 적재 무게는 14kg이다. 영하 20도의 추위, 영상 45도의 고온에서도 작동하며, 방수와 방진 성능을 갖췄다.
교체가 수월한 충전식 카트리지 배터리가 적용된다. 배터리는 1회 충전으로 90분간 사용 가능하다.
인간형 로봇 아틀라스도 모습을 드러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개발했다.
총 28개의 유압 동력 관절을 통해 인간과 유사한 움직임을 구현한다. 이동과 스테레오, 감지 센서를 통해 복잡한 지형에서도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고 현대차는 설명했다. 키는 1.5m, 몸무게는 80kg이다. 이동 속도는 초속 1.5m다. 약 11kg의 짐을 들 수 있다.
현대차는 MoT 기반 모델을 비롯한 각종 로봇의 완전 자율주행을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 이날 정 회장과 함께한 스팟은 미리 입력해둔 경로를 따라 이동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CES에서 자동차를 다루지 않은 배경에 대해 “미래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자동차만으로는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없다”며 “미래 기술 비전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율주행·전기차 비전 제시하는 기업들…오미크론 영향에 온라인 공개로 선회
GM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메리 바라 회장이 CES 기조연설자로 나선다. 바라 회장은 오는 6일 새벽 온라인 연설을 통해 GM의 차세대 전기차 전략을 발표할 예정이다.
GM은 트리플 제로 비전을 제시한다. 교통사고·교통체증·탄소배출 제로를 의미한다.
교통사고·교통체증 제로는 자율주행 기술에 기반한다. GM은 자회사 크루즈를 통해 자율주행기술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크루즈는 2020년 셔틀 운행용 자율주행 전기차 오리진을 공개했다. 운전대와 페달 등 조종 장치가 없다. 2023년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GM의 자율주행 기술은 승용차 모델에도 적용된다. GM은 지난해 도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주행 상황에 95% 이상 대처할 수 있도록 설계된 울트라 크루즈를 선보였다.
울트라 크루즈는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경로에 따라 자동으로 차선을 변경하고, 좌·우회전이 가능하다. 교통 신호에 반응하며 도로의 속도 제한을 따른다. 물체도 알아서 피한다. GM은 울트라 크루즈를 오는 2023년부터 캐딜락의 주요 차량부터 적용할 계획이다.
탄소배출 제로는 전기차 전환을 이른다. GM은 2025년까지 전기차 30종 이상 출시를 목표로 한다.
이번 행사에서 예정됐던 쉐보레 실버라도 EV 실물 공개는 오미크론 확산에 따라 GM이 온라인 참석으로 선회하면서 무산됐다. 실버라도 EV 공개는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실버라도 EV는 픽업트럭 실버라도의 전기차 모델이다. 1회 충전 주행거리는 약 643km 수준으로 전망된다.
세계 4위 완성차 기업 스텔란티스는 크라이슬러의 첫 전기차 모델 에어플로우를 공개한다. SUV 모델로 1회 충전으로 약 805km를 달린다.
스텔란티스의 브랜드들은 유럽 시장을 겨냥한 소형 전기차를 전시한다. 시트로엥은 도심형 2인승 전기차 아미, 피아트는 레벨2 수준의 자율주행이 적용된 저가 전기차 피아트 500을 선보인다.
이탈리아와 미국이 합작한 완성차 기업 피아트크라이슬러(FCA)와 프랑스 자동차 기업 푸조시트로엥(PSA) 합병으로 출범한 스텔란티스는 2025년까지 전기차 전환에 약 41조원(300억 유로)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독일 3사는 바이러스 확산을 고려해 CES 불참을 결정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당초 CES에서 공개하기로 한 전기 콘셉트카 비전 EQXX를 행사 일정에 맞춰 자체 디지털 채널로 선보이는 수준을 조정했다.
지난 3일 공개된 비전 EQXX의 1회 충전 주행거리는 1천km에 달한다. 메르세데스-벤츠는 배터리 크기를 늘리는 대신 에너지 밀도를 높인 배터리 팩을 개발했다. 대형 전기 세단 더 뉴 EQS의 배터리와 비슷한 약 100kWh 수준의 용량이지만, 크기는 절반으로 줄였으며, 무게는 30% 가벼워졌다.
차체 루프에는 117개의 태양 전지를 장착해 추가적인 에너지를 공급한다. 메르세데스-벤츠에 따르면, 태양 전지는 주행거리를 25km 늘려주는 한편, 온도와 조명,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도 에너지를 전달한다.
BMW는 플래그십 전기 SUV iX의 고성능 버전 iX M60을 온라인으로 공개한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콘셉트카와 달리 오는 6월 출시를 앞둔 모델이다.
1회 충전 주행거리는 566km다.
BMW는 파워트레인 성능을 강조한다.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100km/h에 도달하는 시간)이 3.8초다. BMW는 “강력한 동력 전달이 고부하 범위까지 꾸준히 계속된다”며 “가속이 전자적으로 제한된 최대 속도인 250km/h까지 거의 일정하게 유지된다”고 설명했다.
완성차 시장 진출을 추진하는 전자 기업도 있다. 소니다. 지난해 CES에서 자율주행 전기차 비전-S 프로토타입(개발용 시제품) 주행 영상을 공개한 데 이어, 올해는 SUV형 프로토타입 비전-S 02 실물을 들고 왔다.
비전-S 02는 일반 도로에서 테스트 중인 비전-S와 동일한 전기차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다.
자율주행은 레벨2 이상 수준을 목표로 한다.
소니는 완성차 출시를 본격화하고 있다. 올해 봄 소니모빌리티를 설립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새 회사는 비전-S 개발을 진행하는 한편, 로봇 개발도 추진할 계획이다.
키움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CES는 더 이상 IT·가전 박람회가 아니다”라며 관전 포인트로 자동차와 로봇을 꼽았다. 자동차와 관련해서는 “차내 경험을 강조한 자율주행 솔루션 등 미래형 모빌리티 기술이 진화할 것”이라고 짚었다. 로봇에 대해서는 “5G와 AI 기술을 접목해 상용 영역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며 “로봇은 인공지능 기반 개인화 서비스의 정점”이라고 강조했다.
민중의소리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후원회원이 되어주세요.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정기후원은 모든 기자들에게 전달되고, 기자후원은 해당 기자에게 전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