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차를 기다리지 말고 혼자 다닐 수 있게
“외국인 노동자가 없이는 이제 농사를 짓기 힘들다”,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우리 식탁 위에 오르는 국산 농산물은 사라질 것이다.” 이런 말들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이슈도, 놀랄 일도 아니다. 나처럼 읍에 사는 주민도 농촌에서의 이주노동자 증가를 실감한다. 읍내 슈퍼를 가면 물품 판매대에 동남아의 글자가 새겨진 식품이 내가 이주한 몇 년 전과 비교하여 많이 늘었다. 얼마 전 오일장이 열리는 시장 가까이 태국 상점이 생겼다.
슈퍼와 시장에서 종종 동남아에서 온 듯한 수줍은 표정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지난주, 읍의 시장 부근 거리에서 한 이주자가 슬리퍼를 신고 가는 것을 보았다. 겨울에 슬리퍼라니. 물론 그는 털모자를 쓰고 있었고, 양말을 신고 있었다. 그가 어려운 순간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서성거리고 있었다. 난 주저하다가 말을 걸었다. “어디 찾으세요?” 놀란 표정으로 그는 “아니요. 사장님 차를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예전의 활동 여파인지 모르겠는데, 난 이주자를 보면 반갑기도 하고, 혹시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지 궁금하다. 별로 도움이 될 것도 없으면서. 90년대 말 경에 내가 서울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노동상담을 할 때 “누나, 누나”하며 찾아오던 이주노동자들을 연상하면서 그들을 본다. 당시에 내가 만났던 제조업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남자였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서울 외곽 작은 사업장에서 오는 그들은 반갑기도 하고, 부담이 되기도 했다. 부담스러운 것은 그들 자체라기보다는 그들이 가져오는 문제거리 때문이다.
그들이 상담소를 찾는 이유는 임금이 상당히 체불되거나 사업장에서 재해를 당해서 노동력을 상당히 상실했으나 사업주가 책임지지 않을 때이다. 그런데 그것 외에는 괜찮았을까? 그들의 임금에는 시간당 노동력에 대한 가치일 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비인간적 대우에 대한 수치감과 모욕감도 포함된 무거운 것이었다. 그들과 함께 지방노동청을 찾아가고, 사업장을 찾아가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할 때마다 난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 그 당시 그들은 산업연수생의 자격으로 이 곳에 왔다. 즉 노동법 상 그들은 노동자가 아니었고, 그래서 보호 밖에 있었다. 그들의 문제를 50%라도 해결하면 다행이었다. 그들도 그 사정을 아는지 조금이라도 해결되면 고맙다고 인사하고 떠났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무거운 마음이 들곤 했다. 그런 빚진 마음이 거리에서 이주노동자를 보면 다시 쳐다보게 만들고, 괜히 말을 거는지 모르겠다.
슬리퍼를 신고 사장님 차를 기다리는 노동자를 보면서, 난 노동자의 처지를 그려보았다. 사장님의 도움이 있어야 읍에 나와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살 수 있는 그들의 환경을. 사장님이 고마운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립이 보였다. 그 노동자 곁에 사장님 대신 고향 친구가 있으면 좋았을 텐데. 사장님도 슬리퍼를 신었을까? 노동자의 슬리퍼는 바로 노동자의 이동을 묶어 두는 것이 아니었을까?
홀로 노동자

2020년 속헹씨의 죽음으로, 정부는 2021년 농촌에서 고용허가제(E9)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농장의 주거개선에 대한 지원을 시작했다. 주거지원 사업 당사자인 노동자를 만나 그들의 주거·노동·인권환경을 조사하는 일이 병행되고 있다. 나는 10월부터 그 상담과 조사사업에 참여했다. 사실 주거지원을 받은 농장보다 지원 밖의 농장이 더 많다. 그래서 내가 만날 수 있는 노동자는 극히 일부였다. 방문해서 해야 할 상담지원의 체크리스트에는 아주 기본적인 12개의 항목이 있다. 주거시설의 잠금장치, 냉·난방 여부 그리고 소방시설 등이 들어있고, 근로여건에는 근로장소, 업무내용, 근로시간, 임금 수준 등이다. 그리고 생활 관련에서는 고용주와의 갈등, 성폭력 피해시 도움을 요청할 기관을 알고 있는지, 긴급상황 발생시 외부와 연락이 가능한지를 확인한다.
그런데 내가 이주노동자를 만나면서 눈에 밟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조사항목에도 없고 노동법 상 노동보호내용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농축산업이 집중되어 있는 지역이 만든 조건이었다. 바로 고립이다. 축산업의 장소는 농촌에서도 고립되어 있다. 시골 마을에서 뚝 떨어진 곳에 대부분 있다. 축산업의 오염으로 인한 민원 때문이기도 하다. 방문한 곳 중에는 높은 산 위에 위치하여 전화가 터지지 않는 곳도 있었다. 그리고 시설농장인 경우도 농지를 임차하는 경우가 많은데, 임대자 스스로 접근하기 어려운 외진 농지를 임차한다. 이주노동자들은 일하는 장소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 살게 된다. 자신들이 기르는 농작물, 소와 돼지, 닭에 가까이 거주하면서 그들의 변화에 대응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영화, ‘태일이’에는 작업장이 숙소가 되는 70년대의 청계피복 노동자들이 나온다. 그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 아니지만, 70~80년대 공단의 큰 공장에는 기숙사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지방에서 올라온 나이어린 노동자들을 위한 곳이었다. 그런데 기숙사는 바로 작업장 옆이었고, 노동자들이 잔업과 철야 노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이후 공장내 기숙사에서 공단 노동자들이 함께 기숙하는 기숙사가 작업장 밖에 생겼다. 비록 공단 내에 있었지만, 사업장과 생활공간이 분리되었다. 독립된 공간에서 다른 사회적 관계를 확장할 수 있었다. 그들은 친구와 영화관도 가고, 야학도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 농촌현실을 보니 예전의 모습이 회상되었다. 더 심각한 것은 이주노동자가 동료라도 있으면 조금 나으련만, 혼자 있는 경우이다. 같은 고향사람이라도 함께라면 자신의 언어로 타향의 서러움을 나눠서 외로움을 조금을 덜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만난 노동자 중 한 명은 사장님과 관리자가 일 끝나고 마을로 내려가면 산 위에 홀로 남는다.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핸드폰뿐이다. 그 폰으로 고향집과 화상통화를 한다. 한국에 있는 고향친구를 만나려면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가야 한다. 터미널을 가기 위해서는 우선 마을버스를 타야 한다. 그 버스정류장까지 걸어서 20분이다. 그 버스도 하루에 2~3번 온다. 이주노동자들은 마을 주민이 아니어서, 택시비가 1천원 하는 농어촌 행복택시 이용 혜택도 없다. 그들은 터미널까지 가려면 1만원정도의 택시요금을 부담해야 한다. 휴일에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니 그냥 잔다고 한다.
한 여성노동자는 다른 나라에서 온 노동자와 산다. 같이 숙소를 사용하지만 말이 서로 통하지 않는다. 동료 노동자들은 자신 고향의 말을 쓴다. 그녀는 외톨이다. 그녀는 이곳에서 일한 지 3년 동안 이 지역에 자기 나라 사람이 있는 줄 몰랐다. 읍의 슈퍼마켓에서 고향 사람들을 만났다. 반가웠다. 그 자리에서 인사를 하고 식당에 가서 같이 밥을 먹었다. 거기서 그녀는 처음으로 삼겹살을 쌈을 싸서 먹었다. 자신이 일하는 곳에서는 노동자들이 각자 밥을 해먹는다. 그래서 한국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물론 노동자들의 입맛에 따른 선택이라 하지만 회식으로 한국 음식을 접하게 할 수도 있을 터인데. 사장은 그런 작은 친절도 없는 듯 했다. 그리고 1년 후 처음으로 비빔밥을 먹었다. 나와 통역자를 만난 인터뷰 날이었다. 그 노동자는 특별한 음식도 아닌 비빔밥을 보고 “이게 뭐예요?”하고 물었다. 결혼이주자 통역자도 놀란 얼굴이었다. 그녀의 방 안에는 변변한 옷장도 없고, 입국할 때 가져온 큰 트렁크와 이불만이 있다. 숙소비를 내고 있으나, 오래된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싸구려 여인숙보다 못한 조건이다. 방이 냉골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싶을 정도였다.
지원 사업에 탈고립화 정책도 포함되어야
지난 12월 8일, 국회에서 강은미·윤미향 의원 주최로 열린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안전보건 및 노동권 실태와 과제 토론회’에서 놀라운 조사결과가 발표되었다. “농축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63.6%가 우울군에 해당하고, 제조업은 14.8%였다.” 이는 캄보디아 노동자 63명을 대상으로 한 검사결과였다. 농축산업 종사 노동자들에게 우울감이 높은 것은 열악한 환경이 큰 몫을 차지한다. 장시간 노동과 노동자들의 사회적 관계 단절, 고립감도 크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일하고 사는 곳을 한번이라도 잠시라도 봤다면 이 결과가 놀랍지도 않다.
이제는 이런 고립감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주거지원사업이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그 제도적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공동체와의 연계이다. 70~80년대 공단 기숙사와 같은 형식을 고려해보아야 한다. 정부도 그런 대안을 고려하는 중이다. 정부는 새해부터는 지자체가 중심이 되어 기숙사 등을 짓는 방향으로 지원사업을 전환하려 하고 있다.
물론 이 대안은 노동자들의 요구보다는 사업주의 불편 때문에 등장했다. 사업 개시 1년도 되지 않아서 정부의 주거지원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지원을 포기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고 한다. 건축 허가 및 부지 마련 등을 이유로 대거 중도 포기하면서이다. 내가 상담조사원으로 참가하고 있는 이곳도 마찬가지이다. 벌써 한 농가가 포기했고, 한 곳은 포기를 생각중이라고 한다.
빨리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그들이 한국에 온 목적이 돈을 벌기 위한 것이고, 가족도 없는 외로운 생활을 스스로 선택했지만, 그들에게도 한국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일과 생활이 분리되는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리고 적은 관계라도 확장을 하는 삶이 필요하다. 시장에서, 그들 언어로 쓰여진 책이 있는 도서관에서, 그들과 같은 신을 믿는 종교 시설에서 농장주가 아닌 다른 주민을 만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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