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농성장 찾아다녔던 배은심 선생 빈소는 ‘민중들’로 가득했다

10일 오전 고(故)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빈소가 마련된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병원장례식장에서 시민들이 추모를 하고 있다. 배 여사는 지난 3일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하려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상태가 호전돼 퇴원했으나 하루 만에 다시 쓰러져 전날 소생하지 못했다. 2022.1.10.ⓒ뉴스1

“우리가 최루탄을 많이 마시면 젊은 학생들이 덜 마실 거다, 그렇게 생각했어. 바보 같은 짓이었지. 근데 애미 심정이란 게 그래. 그런 마음으로 30년을 했어.”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고 배은심 선생과 30년 넘게 거리에서 국가 폭력에 맞서 투쟁해온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김정숙 선생이 말했다.

10일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 병원 배은심 선생의 빈소에서 만난 그는 배 선생과 같은 82세다. 지난해 말까지 국회 앞에서 민주 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며 1인 시위·천막농성을 함께 했던 배은심 선생이 전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 모두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30여 년을 함께 한 김정숙 선생만은 이렇게 말했다.

“연세로 봐서는 이제 팔십이 넘었지만, 거리에서 30년 가까이 고생을 많이 했잖아. 우린 집이 있어도 없는 사람처럼 맨날 떠돌아다녔어. 경찰한테 맞고 터지고… 김대중 대통령부터 최루탄이 없어졌지, 그 전에는 아침에 나갈 때마다 치약을 발랐어. 밤인지 낮인지도 몰랐다니까. 잠옷 한 번 못 입고, 옷 입은 채로 자다가 아무 때나 부르면 나와서 싸웠지.”

김정숙 선생은 30여 년을 함께한 동지가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했다며 이날도 몇 번이고 눈물을 훔쳤다.

고(故)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의 빈소ⓒ뉴시스

배은심 선생은 1987년 6월 9일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같은 해 7월 5일 사망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길 위에서 노동자·농민·도시 빈민 등 힘들고 어려운 이들과 함께했다. 이한열 열사가 살아있다면 있었을 곳에 대신하겠다는 의지다.

유가협 장남수 회장은 “참 의지가 강한 분”이라고 고인을 기억했다. “한열이는 학교를 2년 다녔지만, 어머니는 그 후 35년 동안 경찰서고 국방부고 불의한 곳이라면 다 다니셨지.”

배은심 선생과 유가협 부모들은 언제나 최전방에 서 있었다. “방패막이 역할도 많이 했지. 2000년 이전에는 거리에 나오면 다 불법이었잖아. 부모들이 맨 앞에 서서 한동안 실랑이하면 애들은 그사이 주장하고 싶은 거 다 외치는 거야.”

‘민중의 어머니’로 불렸던 배은심 선생의 삶을 대변하듯 수많은 이들이 빈소를 가득 채웠다. 월요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정사진 앞에 긴 줄이 끊이지 않았고, 100석 가까운 장례식장은 종일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

30여 년간 노동운동을 해온 원풍모방 박순희 전 부지부장은 “항상 어머니는 ‘난 아무것도 모르는데 여러분들이 애쓴다’고 손잡아주시고 등 두들겨주시고 했다. 그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고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진보당 김재연 대선 후보는 고문을 맡아줬던 배은심 선생에 감사함을 전하며 “30여 년 전 본인께서 먼저 국가 폭력을 뚫고 싸워오셨던 힘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지켜주셨다. 힘든 사람들에게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돼주셨던 어머니로 늘 그 자리에 계실 줄만 알았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10일 오전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병원장례식장에 고(故)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뉴스1

“배은심 선생 마지막 소원은 민주유공자법 제정”

배은심 선생은 삶의 마지막 순간을 국회 앞 농성장에서 보냈다. 민주 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유가협은 지난해 10월부터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민주 유공자법은 그의 못다 이룬 꿈이다. 1998년 유가협 회장이었던 그는 422일간 국회 농성 등을 통해 민주화보상법 등을 끌어냈다. 당시에도 민주 유공자법 제정에 힘을 쏟았지만, 대상자의 범위가 넓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는 게 장남수 회장 설명이다. 이에 이한열 열사는 여전히 ‘민주 유공자’가 아니라 ‘민주화 운동 관련 사망자’로 남아있다.

장 회장은 “민주화 관련자들은 불순분자로 여겨졌다. 내 아들의 경우 학생 운동하다가 분신자살을 했는데 김영삼 정부까지 나를 감시했다. 학생 운동하다가 죽었다면 내 가족 형제들도 나를 피했다. 유공자가 되면 이런 문제를 불식시킬 수 있다”고 제정 이유를 설명했다.

민주 유공자법 제정이 미뤄지는 원인으로 장 회장은 국민의힘을 지목했다. 그는 “20대 국회부터 사망자와 상해자만 우선으로 해달라고 올렸기 때문에 누구도 반대할 수 없다. 그런데 국민의힘 측의 반대로 계류 중”이라며 “당리당략에 치우쳐 유공자가 될 사람들을 그대로 둔다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고 따져 물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0일 오후 광주 동구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뉴시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0일 오후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배은심 여사 빈소 조문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대학생단체 회원 등으로부터 항의를 받고 있다.ⓒ뉴시스

이날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배은심 선생의 빈소를 방문하기도 했다. 윤 후보는 민주 유공자법 제정에 대한 입장을 묻자 “제가 내용을 모르는 법안에 대해 의원 신분도, 원내 지도부도 아닌데 약속을 하라고 (한다)”라며 발끈했고, 서울에 올라가서 원내 지도부에 검토를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과 이낙연 전 의원, 이인영 통일부 장관,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 후보, 국민의당 권은희 원내대표, 임종석 전 비서실장, 손학규 전 대표, 천주교 광주대교구 김희중 대주교, 전태일 열사 동생 전태삼 씨, 영화 1987 장준환 감독 등이 빈소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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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강석영 기자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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