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열아, 엄마 아버지 옆으로 가셨어. 이제 엄마 너한테 못 와, 엄마가 너 못 불러. 아버지 계신 8 묘역 쳐다보고 있으면 엄마가 웃어줄 거야.”
11일 어머니 배은심 선생을 떠나보내며 동생 이한열 열사 묘지에 선 유족들은 끝내 목놓아 울었다. 이날은 배 선생의 여든세 번째 음력 생일(12월 9일). 배 선생이 그토록 사랑하고 그리워했던 아들 이한열 열사를 만나러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 민중들이 함께했다.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이날 오전 10시 10분경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했다. 영정 앞에는 고인을 위한 생일 케이크가 놓여있기도 했다.
영결식이 끝난 뒤 장례위원회는 노제가 열리는 5·18 민주광장으로 유해를 운구했다. 애초 장례식장에서 5·18 민주광장까지 만장과 도보 행렬이 뒤따르는 노제를 계획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됐다.
민주역사 심장부인 옛 전남도청 앞은 ‘민중의 어머니’ 배 선생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하러 온 시민들로 가득했다. 배 선생과 앞선 민주 열사를 위한 묵념 이후 참가자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힘차게 부르며 배 선생을 맞이했다.

유족을 대표해 첫째 이숙례 씨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는 “3일 동안 함께 한 여러분을 뵙고 보니 많은 분의 기억 속에 마음속에 (어머니가) 너무나도 크게 만인의 어머니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며 “어머니 가시는 길 함께 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 씨는 ‘엄마’라고 부르짖으며 애끓는 마음을 드러내자 여기저기서 통곡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들 가슴에 묻고 살아낸 세월이 35년. ‘한열아!’ 애타게 보고 싶어서 가슴 찢어지게 울부짖으려 불러대던 이름도, 피맺힌 절규도 이젠 들을 수 없다. 아들 잃고 62세 한 맺힌 세상을 참으로 일찍이도 하직하신 아버지 이병석. 엄마, 아버지랑 한열이랑 평안하세요…”

배은심 선생의 영정사진과 국민훈장 모란장을 앞세운 장례 행렬은 배 선생이 기거했던 지산동 자택에 도착했다. 배 선생은 이한열 열사가 네 살 때인 1970년부터 살던 이 집을 평생 지켰다. 언제든 대문을 열고 이한열 열사가 들어올 것만 같다고 말해왔던 배 선생이다.
장례 행렬은 이한열 열사가 잠들어 있는 망월동 묘역 6 묘원으로 향했다. 배은심 선생은 평소 1987년 6월 9일 최루탄 피격 당시 이한열 열사 사진을 쓸어내리며 ‘네가 왜 그 자리에 있느냐’고 안타까워했다. 배 선생을 가까이서 모셨던 이들은 “그립고 그립던 아들을 만나 못 다 준 어머니 사랑 다 주라”며 울먹였다.
배 선생 유해는 배우자 이병석 씨 옆인 8 묘원에 안치됐다. 이한열 열사가 잠든 6 묘원보단 조금 위쪽이다. 하관식에 함께한 이들은 ‘한열이가 내려다보였으면…’이라며 아쉬운 마음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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