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할당제 폐지’와 같은 능력주의 공정론을 주창하고도 버젓이 당권을 잡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최근 그 모습을 그대로 본받고 있는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 공약은 윤 후보의 청년 편 가르기 정치 신호탄이다. 여가부를 “남성혐오부”라고 지칭하며 “한번 깔끔하게 박살을 내놓고 제로베이스에서 출발해야 된다”(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장예찬 청년본부장)는 말을 공연히 뱉는 제1야당에 ‘청년을 위한 정치’는 어떤 의미일까.
젠더 갈등을 야기하는 것만큼 그들에게 쉽고, 무책임한 선거 전략은 없다. 20대 남성 당사자를 위한 ‘새로운’ 공약을 발표하면 호응이 미미하지만, 20대 남성을 위한 ‘여성 몫 폐지’ 공약을 발표하면 호응이 즉각적이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이 대표 당선 과정에서 이를 맛봤고, 이제는 대선판에서 이를 이용하고 있다.
퇴행을 거듭하는 윤 후보의 구시대적 ‘갈라치기’ 정치는 청년층이 갈증을 느끼는 차별적 요인들에 큰 관심이 없다. 차별과 불평등을 야기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외면하고 모든 것을 ‘젠더 갈등’으로 덮어버리겠다는 윤 후보의 태도는 자신에게 우호적이라고 판단되는 20대 남성 표심만 잡고, 비우호적이라고 예단 되는 20대 여성 유권자는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이런 윤 후보의 태도로는 청년이 직면한 사회적 문제를 단 하나도 해결할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최근 최대한 갈등적 언어를 지양하는 방법으로, 언급을 자제하는 방법으로 청년 세대 내 젠더 이슈에 거리를 두고 있다. 윤 후보가 부추기는 쪽을, 부추기지 않는 것만으로도 득점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이러한 이 후보의 행보가 지속된다면 여성이 겪고 있는 오래된 사회적 차별은 결국 또다시 해결되지 못한 채, 양당 후보의 외면 속에 주요 선거 이슈에서 옅어질 수밖에 없다. 이 후보는 사회의 진보를 말하지만, 여성과 성소수자를 위한 뾰족한 메시지가 필요할 때는 정작 목소리를 아낀다. 이 후보의 강점으로 꼽히는 특유의 솔직함과 거침없음은 젠더 이슈 앞에서 주춤한다. 윤 후보가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걸었을 때, 이 후보 지지자들이 젠더 이슈 강점 뉴미디어 채널 ‘닷페이스’와 ‘씨리얼’ 출연에 반발했을 때, 이 후보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보다는 우회적으로 입장을 표명하는 쪽을 택했다. 여성 혐오로 가득한 ‘2030 남초’ 커뮤니티는 연일 순회하며 열심히 글을 올리던 그였다.
대선 국면 초기 ‘청년 정치’에 입을 모으던 거대 양당 후보는 이제 오로지 당선을 목표로 한 이익 중심의 청년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커뮤니티 반응에 일희일비하며 지지율에 이득이 되는 주장을 확산하고, 성차별적 프레임을 쉽게 선택해 이용한다.
20대 여성을 배제하는 윤 후보의 갈라치기식 정치, 20대 여성의 본질적인 고통을 축소하는 이 후보의 ‘중립 기어’ 정치는 청년 모두의 삶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들의 표 계산적인 움직임은 모든 청년 유권자의 고통, 쓰린 삶을 달래는데 역부족이다. 오히려 대선이 끝나면 청년들은 정치권이 심화시킨 젠더 갈등 상황에서 지금보다 더 보호받지 못할 수 있다.
청년, 특히 20대 여성은 일부의 판단처럼 시혜적인 정책을 바라는 게 아니다. 젠더 갈등 대신 성평등 사회를 위해 노력하고 이를 우선순위에 두는 대선 주자의 모습을 기다리며 기대하고 있다. 대선 주자들은 하루빨리 커뮤니티 정치에서 벗어나 성평등을 의제로 한 건설적인 토론에 나서야 한다.
아울러 청년은 20대 남성, 여성으로 분류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성별을 떠나 정치권이 조명하지 않는 소외된 보통 청년들이 여전히 많고, 이들은 청년 전체를 들여다보는 정치를 바라고 있다. 정치권은 청년층을 분류하는 시각조차도 기득권에 갇혀 있다.
그들이 바짝 관심을 두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세대)는 수도권, 대학 졸업자, 중산층에 머물러 있다. 장애인, 성소수자, 비정규직, 지방 거주자 등 사각지대에 가려진 청년이 수도 없이 많다. 정치권은 흔히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삶을 청년층이 지향하는 안정된 가정의 모습으로 상상하지만, 결혼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비혼주의’를 자신의 가치로 말하고, 다양한 가족 구성권을 하나의 권리로 새기는 청년들도 많다. 거대 양당은 이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듣고 있을까. 청년을 상대로 한 갈등 유발 정치가 아닌, 더 정교한 정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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