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민족·쿠팡 등 배달플랫폼 노동자들 2명 중 1명이 지난 1년간 사고를 경험했다는 실태조사가 나왔다. 안전 운전은 단속 강화가 아니라 적정 배달료를 전제로 시간당 배달 건수를 제한할 때 가능하다는 데 현장 노동자들이 공감대를 형성했다.
26일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조연맹은 진보당과 공동 주최한 ‘배달플랫폼 안전배달제 도입을 위한 토론회’에서 배달플랫폼 노동자 안전의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배달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속도경쟁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제시된 ‘안전배달제’를 검토하기 위해 지난 12월 배달플랫폼 노동자 614명에게 설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서비스연맹 배달플랫폼노조는 출범을 앞두고 지난 18일 안전배달제 도입을 제안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①적정한 배달료를 전제로 시간당 배달건수 제한 ②종합보험 가입 의무화 ③안전교육 의무화 ④오토바이 보험 공제조합 등이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절반 이상인 53.3%가 지난 1년간 오토바이 사고를 경험했다. 게다가 사고를 경험한 노동자 중 절반 가까이는 1년에 2번 이상 사고를 경험했다.
일상적으로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유상종합보험에 가입한 경우는 48.77%로 절반이 안 됐다. 유상종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이유로 89.4%가 보험료 부담을 꼽았다. 산재보험 가입률은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22.59%가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거나 가입 여부를 모르고 있었다.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장은 이번 조사가 배달 노동자들이 처한 ‘위험의 악순환 구조’를 잘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노동자 2명 중 1명이 사고를 당할 정도로 위험이 높으니, 민간보험 시장에서 보험료는 오르기 마련이고, 보험료 부담으로 노동자들은 보험에 가입할 수 없어 사고에 따른 물적·신체적 손해와 손상으로 인한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다.
응답자들은 안전 운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배달이 집중되는 시간대’(4점 만점 중 3.36점), ‘운전자의 안전인식’(3.16), ‘업체의 프로모션 진행’(3.09), ‘도로 및 고통신호 체계’(2.98), ‘경찰의 단속 여부’(2.91), ‘업무교육·안전교육 여부’(2.64) 순으로 꼽았다.
안전배달제에 현장 노동자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수수료가 인상되면 과속·신호위반이 줄어들 것인가’란 질문에 69.35%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적절한 수수료를 전제로 시간당 배달건수가 제한되면 과속·신호위반이 줄어들 것인가’란 질문에 74.75%가 그렇다고 답했다.
시간당 적당한 배달건수는 3~4건이라는 응답이 73.9%로 가장 많았다. 배달앱을 통해 배민 노동자 2명, 쿠팡 노동자 2명의 일주일간 노동실태를 심층 조사하니 주문이 몰리는 점심 11~2시, 저녁 6~10시 배달 건수는 평균 3~4건이었다. 5건 이상인 시간대는 일주일에 한 두 번이었다.
조사를 진행한 이희종 서비스연맹 정책실장은 “배달 수수료만 올린다고 안전사고가 해결되는 건 아니”라고 짚었다.
시간당 배달 건수 제한, 유효할까?
이날 토론회에서 가장 쟁점이 됐던 건 시간당 배달 건수 제한이었다. 홍창의 배달플랫폼노조 준비위원장은 노조에서도 다루기 민감한 부분이었다면서도 무리한 운전을 막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제안 배경을 설명했다.
‘배달료만 올리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되는가’란 질문에서 시작됐다고 홍 위원장은 말했다. 그는 “배달 노동자는 건당 배달료를 받기 때문에 시급을 최대한 많이 올리기 위해 많은 건수를 배달해야 한다. 배달물량이 많은 점심·저녁에 무리한 운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소 받아야 하는 시급인 2만5천 원을 기준으로 건당 배달비가 평균 4천 원이면 한 시간에 6건 이상 배달해야 한다. 배달량이 적은 시간대가 있으니 피크 시간인 점심·저녁에 7~8건은 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안전배달을 위해 무리한 운전을 못 하도록 시간당 배달 건수를 제한하고 적정 배달료를 지급해 최소시급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김영규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실장은 배달노동자가 3~4개 플랫폼을 이용할 경우 건수 제한이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홍창의 위원장은 한 번에 한 건을 배달하는 단건 배달이 도입되면서 더 높은 수익을 위해 여러 계정을 사용하거나 타 업체 계정을 동시에 사용하는 경우가 일부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희종 실장은 “시간당 배달건수 제한은 (배민·쿠팡 등이 시행 중인) 단건 배달 중심이 아닐 수 있다. 배달대행사 묶음 배송(한 번에 여러 건을 배송하는 시스템)을 어느 정도 해야 하냐는 것도 쟁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도 피크 타임엔 라이더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김영규 실장은 “배달 건수를 제한하면 기업은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또다시 속도전이 이어져 배달 노동자들의 안전을 더 위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달 건수 제한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배달경쟁을 부추기는 알고리즘을 개선하는 등 플랫폼기업의 책임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다.
류현철 소장은 “안전 배달료와 배달 건수 산정은 단순한 공식이나 협의만으로 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결국 플랫폼 노동을 매개하는 플랫폼 자체의 알고리즘을 활용하고 개입해야 한다”며 “이윤을 위해 배달 기간의 상한 관리만 이뤄졌다면 안전을 위해 배달 시간의 하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현재는 15분까지 배달해야 한다는 등 상한선만 있지만, 15분이 소요되는 거리라면 15분 이후부터 다른 배달을 할 수 있도록 알고리즘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의견이 있었지만 전문가들은 ‘노동자의 안전은 결국 노동조건과 비용의 문제’라는 점에서 단속이 아니라 노동환경 개선을 통해 안전사고를 줄여야 한다는 점에 모두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