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일 고공농성’ 택시기사의 꿈 월급제, “함께하자” 희망버스 출발한다

택시기사 명재형 씨가 ‘주 40시간 택시월급제’ 시행을 촉구하며 두 평 남짓 ‘하늘 감옥’에 스스로를 가둔 지 벌써 300일이 가까워졌다. 시민들은 목숨을 걸어야만 처지를 바꿀 수 있는 택시노동자들의 현실을 함께 바꾸자며 15일 희망버스 출발을 알렸다.

명재형 씨는 이날 〈민중의소리〉에 “완전월급제가 제 숙명이자 업보”라며 “시민들의 연대로 우리 투쟁이 빛난다. 항상 감사하다”고 전했다.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101일째 고공농성 중인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명재형 동원택시분회장이 14일 오후 택시발전법 11조의2 즉각 시행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1.09.14. ⓒ뉴시스

서울 외 지역은 제외된 ‘주 40시간 월급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동원택시분회장 명재형 씨는 지난해 6월 6일 세종시 국토교통부 앞 20여 미터의 망루에 올라 이날 기준 283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정부에게 ‘법대로 하라’고 촉구하기 위해서다.

2019년 8월 개정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이하 여객법)은 택시기사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주범으로 꼽혀온 사납금제를 2020년 1월 1일 자로 폐지했다. 국토부 지침이던 전액관리제를 법제화해 월급제가 도입된 것이다. 택시업계 대표적 임금제도였던 사납금제는 하루 수입 중 일정 부분을 회사에 내고 나머지 수입을 가져가는 제도다. 반면 월급제는 당일 수입 전액을 내면, 회사는 납입금에 상관 없이 정해진 급여를 주는 제도다.

사납금제가 폐지되면서 택시기사의 노동시간 주 40시간 이상 월급제도 택시운송사업발전법(이하 택시발전법)에 명시됐다. 최저임금을 보장해 택시기사의 생존권을 지키자는 취지다.

문제는 택시발전법에 붙은 단서다. 택시발전법 제11조의2는 서울시에 한해 지난해 1월 1일부터 주 40시간 이상 노동시간을 적용했고, 서울 외 지역 시행일에 대해 ‘공포 후 5년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서울시의 성과, 사업구역별 매출액 및 근로시간의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날’이라고 정했다.

관련 시행령은 여전히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에 지역에선 현행법이 금지하는 사납금제가 사실상 활개친다는 게 택시노조 설명이다. 김재주 택시지부 전북지회장이 510일간 고공농성을 통해 법 개정을 이뤄낸 뒤, 명재형 씨가 또다시 고공농성에 돌입한 이유다.

택시 사납금제도의 철폐와 택시전액관리제 도입 등을 주장하며 2017년 9월 4일 고공농성을 시작한 김재주 민주노총 택시노조 전북지회장이 고공농성 510일만인 2019년 1월 26일 전액관리제 협상이 타결된 소식을 듣고 고공농성장에 내려와 지인들과 포옹을 나누고 있다. 2019.01.26. ⓒ뉴시스

“이름만 바꾼 사납급 여전하다”

김재주 지회장은 통화에서 사납금이 ‘기준금’이란 이름으로 겉모습만 바뀌었을 뿐 그대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법이 바뀌었으니 당일 수입 전액을 내면 회사가 정해진 급여를 주는 외형은 갖춰졌다. 하지만 소정근로시간을 평균 2.5~3.5시간으로 정해 월급이 5~60만 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소정근로시간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근로시간을 계산하기 어려운 경우 사용자와 노동자가 실제 근로한 시간이 아닌 임의의 시간을 합의한 시간이다.

게다가 기준금을 높여 성과금을 벌 수 없는 구조를 만들고, 기준금보다 부족한 금액은 임금에서 공제한다고 김 지회장은 지적했다. 김 지회장은 “일정 시간동안 벌 수 있는 기준금은 성과금을 위한 것이다. 매달 기준금에 추가 시간을 더해서 버는 금액을 배분하는 게 성과금”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하루 8시간 운전해서 벌 수 있는 돈이 8만 원이라고 한다면, 8시간에 대한 기준금은 16만 원으로 정해져있는 식이다. 기준금을 채우기 위해 택시기사들은 8시간 이상 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10시간을 일해도 10만 원밖에 벌지 못했을 경우 회사는 나머지 6만 원을 월급에서 제한다. ‘가짜 월급제’라는 반발이 나오는 이유다.

4.2택시 희망버스 기획단 소속 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인근에서 '뛰뛰빵빵 4.2택시 희망버스 계획발표 기자회견'을 위해 택시조형물을 옮기는 중 경찰들과 대치하고 있다. 2022.03.15. ⓒ뉴시스

김 지회장은 “개정 법령에 따라 지자체에서 단속해야 하지만 두 손 놓고 있다. 노조가 있는 사업장이야 임금체불로 고소하면 되지만, 노조가 없는 곳은 아야 소리도 못하고 그대로 당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주 40시간이 시행된) 서울도 지켜지지 않는 곳들이 있지만, 대부분 하루 6시간 40분씩 정해 최저임금을 받도록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의 성과 및 매출액 등을 고려하겠다는 단서에 대해 “택시회사가 모빌리티에 가입하고, 택시 수가 줄면서 코로나로 인해 손님이 감소했음에도 매출이 늘었다. 얼마든지 임금을 주고도 사업주 이윤이 창출된다”고 강조했다.

“지역 제외는 지역 차별…당장 시행령 만들어라”

이날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열린 ‘고공농성 300일 사태해결 촉구! 주40시간 택시월급제 당장시행!’ 기자회견에서도 정부를 향한 비판이 거셌다.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정병욱 변호사는 “시행령 제정은 국가의 의무”라며 “시행령 제정이 안 된 건 입법부작위로서 헌법재판소 심판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미 1998년 헌재에서 사납금제가 택시노동자들의 생활기반을 불안정하게 만들뿐 아니라 난폭 운전 등 일반 국민의 안전을 저해한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한 게 없다”고 말했다.

서울 외 지역을 제외한 단서조항에 대해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조혜인 변호사는 ‘지역 차별’이라고 꼬집었다.

조 변호사는 “서울과 서울 아닌 지역을 구분하는 데 정당한 이유가 없다. 우린 그걸 차별이라고 한다. 서울 아닌 지역의 법적 안정성이 필요했다고 해도 서로 다른 대우를 무제한으로 정당화할 수 없다. 부득이한 격차라면 시행일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고, 시행일을 유예시킨 사유가 명백하지 않다면 유예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4.2택시 희망버스 기획단 소속 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인근에서 '뛰뛰빵빵 4.2택시 희망버스 계획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03.15. ⓒ뉴시스

“문 정부, 결자해지 마음으로 월급제 완전 도입해야”

이날 기자회견에서 명재형 씨의 건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길벗한의사모임 오춘상 한의사는 “건강을 유지하려면 잘 자고 잘 먹고 잘 소화시키고 잘 배설하는 걸 기본으로 일정량 이상의 근육이 있어야 한다. 우리 근육의 50%가 하체에 있어 하체 활동이 원활하지 않으면 심장까지 무리가 온다”며 “명재형의 건강이 너무나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명재형 씨는 통화에서 “염려해주신 덕분에 괜찮다”며 기운 찬 목소리를 전했다.

명 씨는 “(고공농성 때문에) 코로나 백신을 맞은 적 없는데 생각보다 이래저래 잘 지나갔다”면서도 “겨울철에 춥다보니 거의 담요에 파묻혀있었다. (망루 위는) 움직일 수 없는 공간이다. 일상 자체가 사람 사는 인생이라 할 수 없다. 투쟁으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30년 차 택시기사인 명 씨는 ‘완전월급제’가 자신의 숙명이고 업보라고 말했다. 부산 최초 민주노총 사업장이었던 성도운수에서 운전을 시작한 그는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임금 교섭 위원으로 월급제를 위한 투쟁을 해왔다.

명 씨는 “완전월급제만 생각하면 가슴에 사무친다. 제 꿈인데 30년 가까이 못하고 있으니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이를 악물고 올라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선거 때마다 월급제를 정착하겠다고 우리를 농락한 세월이 30년이다. 이번에 법이 개정되면서 강제조항이 생겼는데도 또 안 지킨다. 정책결정자 입만 보다가는 안 되겠더라”고 말했다.

현 정부를 향해 “택시발전법을 개정했으니 결자해지 마음으로 정권 내 신속히 월급제를 대통령령으로 완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4.2택시 희망버스 기획단 소속 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인근에서 '뛰뛰빵빵 4.2택시 희망버스 계획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03.15. ⓒ뉴시스

명재형 씨와 연대하기 위해 고공농성 300일 차가 되는 4월 2일 시민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달려간다. 이날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50개 노동·시민단체가 ‘뛰뛰빵빵 4.2 택시 희망버스’ 참가하겠다고 연명했다. 400리길 희망뚜벅이도 나선다. 오는 23일 세종시 국토부 앞 고공농성장에서 출발해 31일 청와대 도착이 목표다.

박승렬 NCCK인권센터 소장은 “사람이 500일간 고공에 매달려서 월급제라는 변화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정부가 약속을 안 지켜서 지금도 300일간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며 “명재형 동지가 땅으로 내려올 수 있는 힘 모을 예정”이라고 희망버스가 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명재형 씨는 시민들의 연대에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는 “기존 정권이나 새 정권이나 민주노총 투쟁을 악마화해 어려움이 많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동력도 많이 떨어져 힘이 든다. 시민들의 연대와 후원이 그런 부분을 많이 메꿔준다. 그들 덕분에 우리 투쟁이 더 빛나기도 한다. 굉장히 중요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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