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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쿠팡의 역설 ③ 미국에선 ‘공정화 법’ 불타오르네



지난해, 미국 하원은 ‘반독점행위에 관한 디지털 시장 경쟁 조사 보고서(Investigation of Competition in Digital Markets)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은 아마존을 비롯한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이었다. 조사는 2019년부터 2020년 10월까지 16개월간 이어졌다.

450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 내용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세계 최대 온라인 유통 플랫폼 아마존과 쿠팡의 갑질이 유사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플랫폼 자기우대(self-referencing)
아마존·페이스북 분할도 불사하겠다는 미국


한국에서 그립톡이라고 불리는 스마트폰 뒷면의 액세서리. 미국에선 ‘팝소켓'으로 더 익숙하다. 미국 '팝소켓'사가 처음으로 만든 이 스마트폰 액세서리는 2014년 겨우 3만개가 팔렸지만, 4년 만에(2018년) 총 1억개 판매를 기록하며 관련 제품의 대명사가 됐다.

팝소켓 ⓒ홈페이지 캡쳐


'팝소켓'사는 급격하게 성장했다. 2018년 매출은 2억달러(약 2,400억원)를 기록하며 같은 해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 2위에 올랐다.

하지만 그해, 팝소켓은 아마존닷컴에서 판매가 중단됐다. 아마존 갑질 때문이었다. 아마존은 애초 협의된 납품 가격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물건을 팔았다. 이후 발생한 손해만큼 팝소켓에게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팝소켓은 아마존의 부당한 요구에 계약을 해지하고 납품을 중단했다.

하지만 팝소켓의 반항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마존을 떠난 지 1년 만에 매출이 1/20 토막(1,000만달러, 110억원) 났다. 미국 전자상거래 시장 50%를 장악한 아마존을 대체할 판매처는 없었다. 결국 팝소켓은 1년 만에 항복했다.

미 하원의 '반독점행위에 관한 디지털 시장 경쟁 조사 보고서는 "아마존은 판매업자들에게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대할 수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아마존은 ‘팝소켓 갑질'과 함께, 입점 업체 데이터를 이용해 아마존 PB 상품을 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마존에서 제품관리를 맡았던 전직 직원은 조사에서 "그곳(아마존)에 있을 때 최고의 제품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판매자의 데이터를 사용했다. 그것이 나의 일이었다"고 증언했다. 보고서는 이를 아마존의 '이익충돌 행위'라고 판단했다.

아마존의 알고리즘 조작 정황도 드러났다. 알고리즘을 통해 자사 상품을 경쟁 상품보다 우대하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이 보고서의 판단이다.

보고서는 판매 수치를 근거로 들었다. 아마존 서적 카테고리에 등록된 전체 상품 중 직접 판매 상품 개수는 40% 수준이지만, 판매 비중은 75%에 육박했다. 다른 카테고리에서도 아마존 상품은 10%에 불과했지만 판매 비중은 23%에 가까웠다. 보고서는 아마존 직접 판매 상품 개수가 적은데도 불구하고 판매량이 전체 25%~75%를 차지하는 것이 ‘자사 상품 우대’ 정황이라고 해석했다.

아마존 이용판매자 및 아마존PB 상품 개수(위)와 판매율(아래) ⓒ미 하원의 '반독점행위에 관한 디지털 시장 경쟁 조사 보고서(Investigation of Competition in Digital Markets)


보고서는 아마존의 '이해충돌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플랫폼 기업을 구조적으로 분리하거나(Thorough Structural Separations) 업종을 제한하는(Line of Business Restrictions) 등 강력한 법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정보 이동권(data portability)및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을 보장하는 법안도 제안했다. 플랫폼이 독점하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도록 해 신규 사업자의 시장 진입 문턱을 낮추고, 결과적으로 경쟁과 혁신이 발생할 수 있도록 유도하자는 의도다.

미 하원 의회는 보고서를 바탕으로 지난해 6월, 5개 법안으로 이뤄진 '플랫폼 반독점법'을 발의했다. 반독점법은 그간 심판이면서 선수로 뛰던 플랫폼을 강도 높게 제재하고 처벌하는 규정을 담았다. 아직 초기 수준이지만 글로벌 플랫폼이 공정성을 갖춰야 한다는 정신을 담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자기우대(self-referencing)' 금지 규정이다. '미국 온라인시장의 혁신 및 선택에 관한 법률'은 플랫폼 운영자(CPO, covered platform operator)가 자신의 제품 혹은 서비스만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을 두지 않도록 했다. 독점 사용으로 발생할 수 있는 차별에 제동을 건 것이다.

데이터 사용에도 규제를 가했다. 플랫폼 입점 업체 활동으로 획득한 정보를 자사 제품에 사용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이용업체로부터 얻은 판매 데이터를 자사 PB 상품 개발에 사용할 수 없도록 선을 그었다.

이해충돌 행위가 발생할 경우, 플랫폼 기업에서 문제가 되는 사업을 아예 분리하는 제재가 담겼다. '플랫폼 독점 종식에 관한 법률'이다. 아마존 PB 브랜드 중 하나인 '아마존베이직'이 다른 판매자 이익을 침해한다고 평가될 경우 정부가 플랫폼 운영과 판매를 분리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6월 발의된 5개 ‘플랫폼 반독점’ 법은 미국 내에서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과도한 규제’라는 플랫폼 로비가 작용했다. 하지만 플랫폼 공정성 강화 여론이 더 강했다. 법안은 하원과 상원 상임위원회를 여야 합의로 무난히 통과했다. 국제 사회는 미 상원 본회의에서 어떤 형태로 '반독점 법안'을 통과시킬지 주목하고 있다.

 
리나 칸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자료사진) ⓒ뉴시스


미국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인물은 '아마존 킬러'로 불리는 리나 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1989년생, 올해 33세 리나 칸을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수장으로 임명했다. 한국으로 치면,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에 33세 청년을 앉힌 것이다. 

리나 칸은 지난 2017년, 예일대 로저널에 게재한 논문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Amazon‘s Antitrust Paradox)’을 통해 플랫폼 규제 비전을 제시했다. 그간 공정거래법에 기반한 반독점 정책으로는 아마존 등 대형 플랫폼을 규제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가격이라는 편협한 틀에서 벗어나 시장 전체를 조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플랫폼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은 분석으로 세계적 찬사를 받았다. 리나 칸의 FTC 위원장 임명은 기존의 미국 반독점 정책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 것으로 해석됐다.

리나 칸의 FTC는 플랫폼 반독점 규제에 적극이다.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 등을 분리하자는 반독점 소송을 다시 제소했다. 아마존 클라우드 서비스 'AWS'에 대한 반독점 조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EU(유럽연합) 의회와 이사회도 최근 '디지털 시장법'(Digital Markets Act, DMA)에 합의했다. 미국 ‘플랫폼 반독점법’과 비슷한 정책 의지를 담은 법이다.

디지털 시장법은 글로벌 플랫폼이 이용업체로부터 얻은 정보를 다른 업체와의 경쟁에 사용하는 것을 제한했다. 소비자에게 노출되는 상품 순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플랫폼 자신의 서비스 및 상품을 우대하는 것도 금지한다. 플랫폼이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랭킹, 검색어, 클릭, 뷰 등 데이터를 제3의 업체를 통해 비차별적인 조건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의무화했다. 플랫폼이 ‘공정하고 비차별적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이 지난 2021년 12월 14일 프랑스 동부 스트라스부르 유럽 의회에서 디지털 시장법(Digital Markets Act)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앙꼬 없는 찐빵, 한국 온플법


한국엔 아직 아마존이나 구글 같은 ‘독과점 플랫폼’이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네·카·쿠·배(네이버, 카카오, 쿠팡, 배달의민족)로 대표되는 대형 온라인 플랫폼 부작용은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한국의 플랫폼 규제 논의는 걸음마 단계다. 중소상권침해, 갑질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지만 제도적 뒷받침은 미미하다. ‘데이터 활용’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시작도 못 했다.

국회는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 7개를 논의 중이다. 대부분 기존 규제 법안에 플랫폼 규제 방법을 조금씩 추가하는 방식이다. ‘핵심’이 빠졌다. 미국 플랫폼 규제법과 EU의 디지털 시장법이 핵심으로 두고 있는 '자사 우대 금지' 조항이 없다. 쿠팡과 네이버가 이용업체로부터 얻은 데이터를 경쟁에 사용하는 것을 막을 장치가 없다.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최근 ‘자기 우대’ 금지법 발의를 추진 중이라는 점은 긍정적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차원의 시도는 주목해봐야 한다. 공정위는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 등 심사지침'(예규) 제정을 검토 중이다.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로 문제 기업을 심사할 때 플랫폼 특성을 감안하는 심사지침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심사지침에는 미국과 EU가 추진하는 규제 정신이 일부 담겨 있다. 플랫폼 자사 우대를 금지하고 플랫폼 간 공정경쟁을 유도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공정위는 지난 2월까지 심사지침에 대한 각계 의견을 수렴했다. 현재 수렴된 의견을 검토하고 있다. 변수는 곧 출범할 윤석열 정부다. 윤석열 정부는 플랫폼 규제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정위의 심사지침 개정 확정이 늦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분석도 있다.

권영관 한국공정거래조정원 선임연구위원은 “거대 플랫폼의 영향력 확대와 그에 따른 규제 방안에 대한 고민은 세계적 추세”라면서 “플랫폼의 데이터 특성을 감안한 규제 합리성, 규제 개입의 구체적 타당성 측면에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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