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여의도역 승강장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열차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2022.05.10. ⓒ뉴시스
“저는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 … 반드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 말미 이렇게 말했다.
비슷한 시각 중증장애인들은 지하철에서 깡통을 매고 기고 있었다. 이들의 행렬은 윤 대통령 취임식을 향했다. 지난 21년간 외쳤던,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일하고,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를 새 정부는 예산으로 보장하라고 촉구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취임식장에 도착해도 들어갈 수 없다. 시민의 권리가 없는, 평생을 차별받은 이들은 초대받지 못했다.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 등 회원들이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맞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권리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05.10. ⓒ뉴시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이날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맞이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한 행진―초대받지 못한 자들의 행진, 시민의 권리가 없는 자들의 행진, 차별받는 자들의 행진’을 진행했다.
전장연은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취임식으로 출발했다. 오전 11시 취임식 전 국회 인근에 도착하려면 오전 8시부터 나서야 했다.
출발에 앞서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한다. 모든 국민의 권리가 보장되고 인간답게 사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주길 바란다”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이어 윤 대통령이 취임선서에서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한 점을 짚으며 박 대표는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고 누구든 차별받지 아니한다고 하는데, 장애인은 대한민국에서 지속적이고 구조적으로 차별받아왔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은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되고 운영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새 정부는 혐오와 낙인으로 차별하지 않는 정부가 돼달라”고 강조했다.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선서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05.10. ⓒ뉴시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어떤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이 방치된다면 우리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자유마저 위협받게 된다”며 “자유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기초, 그리고 공정한 교육과 문화의 접근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 이런 것 없이 자유 시민이리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는 권리에 기반한다. 다시 말해 장애인의 이동할 자유는 이동할 권리가 보장됐을 때 가능하다. 전장연은 “권리를 권리답게 예산으로 보장하라”며 장애인권리보장 예산을 촉구하고 있다. 법에 이동권 등 권리가 명시됐으나 관련 예산이 반영되지 않아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장애인권리예산제가 아닌 장애인개인예산제를 시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장은 “개인예산제는 개인에게 돈을 지급해 서비스를 구매하는 방식인데, 서비스 자체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시기상조”라며 기만적 공약이라고 질타했다.
‘말로만’ 약속하지 말라고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장은 꼬집었다. 그는 “장애인도 사람이다”라며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공정과 상식을 약속한 윤 대통령은 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예산으로 답하라”고 말했다.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 등 회원들이 시민들에게 나눠줄 꽃을 들어 보이고 있다. 2022.05.07. ⓒ뉴시스
제20대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전국장애인철폐연대 회원들이 장애인권리보장을 촉구하며 초대받지 못하는 자들의 행진을 하고 있다.. 2022.05.10 ⓒ민중의소리
이날 취임식으로 향하는 전장연의 움직임은 힘겨웠다. 박경석 대표, 이형숙 회장 등 8명은 휠체어에서 내려 양 팔만을 이용해 오체투지로 지하철에 올랐다. 팔꿈치와 무릎에 보호대를 착용했지만 바닥을 기어가자 자꾸만 벗겨졌다. 활동보조인과 활동가들은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오르내리는 걸 도왔고, 함께 무릎꿇고 오체투지하는 이들의 허리와 다리를 당겼다.
이들의 움직임을 응원하는 열기는 뜨거웠다. 출발 당시 여의도역으로 향하는 광화문역 출구 1-1부터 2-1까지 전장연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인원은 많았지만 칸 별로 나눠서 승차해 장시간의 열차 지연은 없었다.
제20대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전국장애인철폐연대 회원들이 장애인권리보장을 촉구하며 초대받지 못하는 자들의 행진을 하며 도로로 나오자 경찰이 막아서고 있다.. 2022.05.10 ⓒ민중의소리 제20대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전국장애인철폐연대 회원들이 장애인권리보장을 촉구하며 초대받지 못하는 자들의 행진을 하며 도로로 나오자 경찰이 막아서고 있다.. 2022.05.10 ⓒ민중의소리
경찰과 서울교통공사는 장애인의 존재를 철저히 가렸다. 장애인들이 지하철에 탑승하자 승객들을 다른 칸으로 이동시켰다. 이에 전장연은 시민들에게 나눠주려고 준비했던 장미꽃 100송이를 전달하지 못했고, 이들의 요구안을 알리지 못했다. 여의도역에 도착해 ‘차별 철폐를 위한 권리선언’이 예정된 여의도공원으로 행진할 때도 행진 인원의 세 배가 넘는 경찰이 겹겹이 애워싸 도로에서 행진이 보이지 않았다.
여의도 공원에 도착한 전장연은 “누구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보장을 위해 윤 대통령을 직접 찾아왔다”며 “윤 대통령이 스스로 말한 공정과 상식, 그리고 헌법 수호 대상에서 더는 장애인을 배제하지 않길 기대한다. 윤 대통령은 그 말과 책임을 가볍게 여기지 마시고 무거운 책임으로 지켜달라”고 촉구했다.
제20대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전국장애인철폐연대 회원들이 장애인권리보장을 촉구하며 초대받지 못하는 자들의 행진 진행 중 여의도대로에서 취임 축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05.10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