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일 가까워진 파리바게뜨지회장 단식농성에 의료진의 한숨

청년 여성 노동자가 50일 가까이 곡기를 끊었다. 서울 양재동 SPC그룹 본사 앞에서 13일 기준 47일째 단식농성을 하는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임종린 파리바게뜨지회장의 이야기다.


임 지회장을 검진해온 녹색병원 임상혁 원장은 지난 12일 통화에서 한숨을 내뱉었다. “단식을 중단하라고 계속 권유했다. 사람이 해선 안 될 일이다. 혈액검사도 했는데 증조가 좋지 않다. 문제가 빨리 해결돼야 한다.” 장기간 단식으로 10kg 이상 빠진 임 지회장의 몸무게는 더 이상 줄지 않고 있다. 그만큼 몸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영양분이 적다는 것이다. 단식에서 가장 위험한 탈수, 전해질 불균형 문제도 심각한 상황이다.

임종린 파리바게뜨지회장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임 지회장의 요구는 간단하다. “노조파괴를 중단하라.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라.” 파리바게뜨 제빵사들이 소속된 SPC그룹 파리크라상(파리바게뜨 본사) 자회사 피비파트너즈 임직원들의 노조파괴 혐의는 행정기관에서 인정됐다.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8년 파리크라상과 가맹점주, 노조, 시민사회, 정치권이 만들어낸 사회적 합의안이 있으니, 이를 이행했다는 사 측에서 근거자료를 제시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회사는 꿈쩍 않고 있다. 단식농성이 시작되고 파리바게뜨지회는 회사와 8차례 만나 실무교섭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지회는 사 측에 개별교섭을 제안했다.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지회는 단체교섭권이 없는 소수 노조이기 때문이다. 교섭대표노조는 2019년부터 현장관리자(BMC) 중심의 한국노총 전국식품산업노조연맹 피비파트너즈노조다.

지회 관계자는 “교섭에서 가장 진척되지 않는 사안 중 하나”라고 말했다. 사 측이 복수노조 제도를 악용해 문제를 노노갈등으로 몰아가고 있어 개별교섭 요청에 진척이 없다는 게 지회 측 설명이다. 지회는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서 파리바게뜨 사태의 배경에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권영국 파리바게뜨 시민대책위 상임공동대표와 임영국 화섬식품노조 사무처장이 12일 서울 중구의 카페에서 파리바게뜨 임종린 지회장 단식 46일째 노사 쟁점 및 상황 공유와 문제 해결을 위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2.05.12. ⓒ뉴시스


가장 문제가 되는 노조파괴 의혹이 대표적이다. 피비파트너즈 임직원들의 구체적인 혐의는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을 승진 차별하며 탈퇴를 종용해, 피비파트너즈노조에 가입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혐의로 전국 사업부 대표(이사) 8명 중 6명이 검찰에 송치됐으니 회사의 조직적 개입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며 750여 명이었던 파리바게뜨지회는 현재 250여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반면 피비파트너즈노조의 규모는 4천여 명으로 파악된다.

노조파괴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 사회적 합의 이행 여부 문제도 마찬가지다. 사 측은 지난해 4월 피비파트너즈노조 위원장 등이 참석한 비전 선포식에서 “사회적 합의를 충실히 이행했다”고 밝혔다. 정작 사회적 합의에 참여했던 파리바게뜨지회는 언론보도를 통해 이 소식을 접했다.

‘이행 완료’라는 사 측 주장에 구체적인 근거자료는 없다. 지회는 근거자료가 맞다면 더는 문제제기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사 측은 추상적인 수치만 제시하고 있다. 이는 실무교섭에서 진척되지 않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권영국 변호사는 “파리바게뜨지회가 (사회적 합의 이행 등에 대해) 계속 문제제기하니 (사측이) 와해시키는 방식으로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임 지회장의 단식투쟁 11일째인 7일 오후 정의당 강은미 의원, 권영국 SPC 파리바게뜨 시민대책위 상임공동대표(변호사), 화섬식품노조 조합원들은 서울 서초동 던킨도너츠 라이브강남점에서 양재동 SPC그룹 본사까지 약 2km가량 삼보일배를 진행했다. ⓒ화섬식품노조

사 측이 복수노조를 이용한다는 구체적인 정황이 간담회에서 제시되기도 했다. 임 지회장 단식 26일째인 지난 4월 22일 피비파트너즈 노사는 올해 임금교섭에서 임금인상 외 단체협약 중 노조 전임자 조항 등을 삭제하는 데 합의했다. 노조 활동을 위축하는 방향이었다.

임영국 화섬식품노조 사무처장은 “30년 넘게 노조 활동을 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10월 31일까지로 아직 6개월이 남았고, 2022년 교섭의제로 올라가지 않았던 사항”이라며 파리바게뜨지회와 사 측이 노조 전임자 문제로 대립해왔는데, 이번 임금교섭에서 근거 조항마저 삭제해버렸다고 설명했다.

노조를 위축하는 협약이 처음은 아니라고 임 사무처장은 말했다. 지난해 단체협약 갱신 교섭에서 신입사원 채용 시 노조 소개 조항도 삭제됐다는 것이다. 임 사무처장은 “교섭대표노조와 회사가 진행한 일련의 교섭 과정은 민주노총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한 담합적 행위”라고 질타했다.

파리바게뜨 사태를 ‘노노 갈등’으로 봐선 안 된다고 권영국 변호사는 지적했다. 그는 “소수노조의 권리를 박탈하는 식의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노조를 노조라고 할 수 있나. 노조가 아니라 노무기구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며 “공정대표의무의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없음 ⓒ뉴스1

파리바게뜨지회는 개별교섭을 통해 이 문제를 풀자고 제안하고 있다. 지회와 사 측이 한 합의를 교섭대표노조와 합의를 통해 손바닥 뒤집듯 뒤집는 상황을 막기 위함이다.

실무교섭에 참여한 지회 관계자는 “당사자들이 답답한 건, 약속을 해도 시간이 지나면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 측은) 합의 내용을 왜곡하거나 한국노총과 또다른 합의를 통해 이전 약속을 무력화한다. 합의가 잘 된다고 해도 그 합의를 어떻게 보장받을 것인지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며 “노조법상 사용자가 동의한다면 개별교섭이 가능하다. 개별교섭을 통해 노사간 약속하면 상대 노조가 바꿀 수 없는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고 말했다.

임종린 지회장의 단식농성이 장기화되는 만큼, 시민사회와 소비자들의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SNS를 중심으로 파리바게뜨, 포켓몬빵 등 SPC그룹 불매와 더불어 ‘#동네빵집_챌린지’가 이어지고 있다. ‘파리바게뜨 노동자의 친구들’에는 4천여 명이 가입했다. 오는 16일엔 파리바게뜨 사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권영국 변호사는 “파리바게뜨는 매우 깨끗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빵이 실제로는 노동자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노동권을 위반하며 만들어졌다”며 “단순히 노조의 싸움이 아니라 시민들과 소비자들이 SPC그룹이 자행하는 인권침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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