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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세상읽기] 3개월만에 20배 폭등 후 폭락, 네덜란드 뒤흔든 욕심의 꽃 튤립

장 레옹 제롬, 튤립 바보 The Tulip Folly, 1882, oil on canvas, 65.4cm x 100cm ⓒWalters Art Museum

자신이 애써 가꿔 놓은 튤립밭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그의 몸은 분노로 경직되어 있습니다. 조금만 더 가까이 오면 칼로 상대를 찌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상대해야 할 적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화려한 밭 위를 껑충껑충 뛰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니 그들의 적은 이 남자가 아니라 그들이 짓밟고 있는 튤립같아 보입니다. 꽃을 밟고 있는 군인들의 발바닥에도, 말발굽에도 튤립 향이 묻었을까요?

남자 발 앞에 있는 화분이 마지막 남은 자존심처럼 보이는 이곳은 1637년 무렵의 네덜란드 하를렘입니다. 멀리 실루엣으로 떠서 이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는 교회는 하를렘의 수호 성인인 성 바보 (St. Bavo)를 기리는 곳인데, 이 모습을 보고 바보 성인은 어떤 말씀을 했을까요? .

튤립은 1554년 오스만 제국에서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전달되었습니다. 그리고 네덜란드 안트워프를 거쳐 암스테르담까지 들어오게 됩니다. 처음 튤립은 다른 대륙에서 들어온 감자나 후추, 토마토와 같은 새로운 상품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동인도 회사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네덜란드의 갑부들이 아름다운 튤립을 자신들의 부의 상징으로 여긴 후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단색이었던 튤립의 돌연변이로 인해 다양한 색이 한 꽃에서 등장했고, 튤립 구근(球根) 가격은 계속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최초로 주식회사를 만들고 주식을 거래했던 네덜란드 상인들은 앞으로 나올 튤립 구근까지 거래를 하는, 소위 선물 거래 기법까지 고안해 냈습니다. 천정부지로 뛰는 구근 가격에 너나 나나 구근에 투자하기에 바빴고, 재배 면적은 갈수록 늘어났습니다. 결국 수요에 비해 공급 과잉 현상이 일어났고 튤립 가격은 순식간에 폭락했습니다. 1636년 11월 2일 튤립 구근 1개의 가격이 10이라고 하면 11월 25일에는 100이 넘었고, 두 달 뒤인 1637년 2월 3일에는 거의 200에 가까웠습니다. 3개월 만에 20배가 뛴 것이지요. 그리고 이날이 튤립 가격의 정점이었습니다. 3개월 뒤, 튤립 가격은 다시 10 수준으로 돌아갑니다. 투자한 사람들은 투자액의 95% 이상을 날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당시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지만 1841년, 아일랜드의 저널리스트 찰스 맥케이가 ‘특이한 대중의 환상과 집단 광기(Extraordinary Popular Delusions and the Madness of Crowds)’라는 책에서 이런 내용을 소개하며 사람들에게 알려졌다고 합니다. 이 책이 고전이기는 하지만 당시 상황을 입증할 만큼 가격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더구나 당시 최고의 황금시대를 누렸던 네덜란드 경제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상투를 잡았던 개인들만 쪽박을 차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저러나 지금 우리는 얼마나 ‘환상과 광기’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일까요? 혹시 그 때보다 더 심하게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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