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건강한 노동이야기] 또 하나의 그럴싸한 이름, 데이터 라벨러

플랫폼 노동자들과 마친가지로 대다수가 ‘불안정 노동자’인 데이터 라벨러

어떻게 의미 짓든 배달, 운송, 심부름 등 플랫폼 기반 호출 노동의 핵심은 건 별로 파편화 된 노동이란 점이다. 일관되게 발견되는 문제 중 하나는 ‘노동의 격하’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용자의 책임 회피’와 ‘불안정성의 증가’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각종 근사한 언어들이 플랫폼 호출 노동을 휘감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
“내가 원할 때 달리고 싶은 만큼만 함께해요.”
“아이가 학교 간 시간 틈틈이 일할 수 있어요.”
“걸으니까 운동도 되고 걸은 만큼 용돈도 벌 수 있으니까요”
“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 한두 시간 가볍게”
“내가 정하는 자유로운 스케줄: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추어 근무 날짜와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변경할 수 있어요.”
“근무 지역 내 어디서든: 근처에 다른 볼일이나 일정이 있어도 부담 없이 일할 수 있어요.”
“일한 만큼 돌아오는 수입: 내가 일한 만큼 늘어나는 금액을 보여 보람을 느낄 수 있어요”
“가장 큰 강점은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해서 일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원하는 시간에 일하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4차 산업혁명 발 기술주의 담론은 플랫폼 노동을 각종 미사여구로 채색했다. 혹자는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디지털 노마드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다. 독립 계약자도 마찬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이 새로운 형태의 노동은 노동자성을 제거한 채 노동자의 시간 조각만을 값싸게 쓰는 방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새로운 방식의 극단적 유연화다. 유토피아적 전망의 신조어는 노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개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그럴싸하게 가려버린다.

『프레카리아트』의 저자 가이 스탠딩은 이런 이름들이 ‘직함 뻥튀기’에 불과하다고 일갈한다. 방문 고객 코디네이터, 매체 배포 담당 이사(소식지 배달원), 재활용 담당 이사(쓰레기통 비우는 사람), 위생 컨설턴트(공중화장실 청소부), 표면 기술자(청소 노동자) 같은 화려한 직함들은 프레카리아트화의 구조적 문제들을 은폐한다고! 『플랫폼 자본주의』의 저자 닉 서르닉 또한 새로운 용어들의 거대한 증식에 대해 이름만 달리해 등장하는 파편 노동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쿠팡플렉스의 일자리 공고, 일의 유연성을 주된 홍보 문구로 삼는다. ⓒ쿠팡

한동안 플랫폼 노동자를 휘감았던 근사한 언어들이 이제 데이터 라벨러에 복붙 수준으로 달라붙고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언제 어디서든 작업이 가능하다.’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직업’, ‘손쉽게 수익을 만들 수 있다.’ ‘누구나 간단한 교육만으로도 진입할 수 있다.’ ‘자투리 시간 활용’ 등의 장밋빛 언어들이 이 새로운 노동을 휘감으며 괜찮은 일자리인 것 마냥 포장하고 있다.


플랫폼 호출 노동이 확산되던 상황과 달리, 달리 지금은 공공 부문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시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코로나19 초기부터다. 당시 정부는 고용 안정 특별 대책의 일환으로 언택트 일자리를 발표했다. 물론 여기에는 디지털 라벨링만이 아닌 여러 형태의 일자리가 포함됐다.

특히 디지털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발표된 ‘데이터댐’ 정책이 이런 우려스러운 일자리를 대대적으로 양산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몇십만, 몇백만 개의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하는 정책들 가운데 데이터 라벨링이 차지하는 부분이 압도적으로 컸다. 데이터댐은 인공지능(AI) 학습용 데이터를 수집·표준화·가공·결합하는 사업을 말한다. 데이터를 모으는 과정에서 AI가 인식할 수 있게 텍스트, 이미지, 동영상, 소리 등의 수많은 데이터에 라벨을 붙여 구분하는 작업이 일명 ‘데이터 라벨링’이다.

데이터 라벨링은 플랫폼 노동으로 분류되는 크라우드 워크의 하나다. 데이터댐이란 표현에서 보듯이 데이터 공급 관점에서 데이터 경제, 인프라, 공급망, 관리, 경쟁력, (인공지능의 기계학습을 최적화하기 위한 데이터의) 품질(정확성, 타당성, 활용성 등)이 강조된다. 그런데 그 어디에서도 데이터 라벨링을 하는 사람(데이터 라벨러)의 노동(조건)과 권리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없다. 데이터 클리닝과 라벨링이 AI 기계학습이라는 전체 프로세스 가운데 가장 많은 시간(60% 이상)을 차지하고, 클리닝과 라벨링의 처리에 있어서 데이터 라벨러가 직접 작업해야 하는 비중(70~80%)이 높은데도 말이다.

데이터 라벨링, A.I (자료 사진) ⓒpixabay


최근 지자체들은 데이터 라벨러 양성을 일자리 정책으로 삼고, 추진하는데 혈안이 된 모습이다. 서울 서초구는 50~60대 대상의 ‘AI 데이터 라벨러 양성과정’을 운영 중이다. ‘장애인 AI 데이터 라벨러 양성 사업’도 있다. 대전 유성구는 청년 디지털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광주광역시는 ‘광주형 디지털 일자리’란 이름을 붙여가며 인력 양성 목표를 제시하고 일자리 창출로 홍보한다. 이외에 서울, 공주, 춘천 등도 지역 맞춤형 일자리 창출 모델로 디지털 라벨러를 앞세우는 모습이다.

문제는 이렇게 늘어나는 일자리 대다수가 불안정 노동이라는 사실이다. ‘질 좋은’ 일자리가 되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플랫폼 호출 노동처럼 노동권, 건강권, 시간권, 일-생활균형권 등의 사회적 권리가 약화된, 사실상 배제된 일자리임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국제노동기구(ILO)가 제안한 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나 국제노총(ITUC)이 제안한 정의로운 일자리(just jobs) 기준에도 부합하지 못한다. ‘언택트 알바’, ‘디지털 노가다’, ‘인형 눈알 붙이기’라고 비판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지금 되짚어봐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란 자본의 교묘한 언어에 기대, 노동법의 사각지대를 제도적으로 양산하고 있는 게 아닌지 말이다. 심지어 ‘공공 일자리’로 둔갑시킨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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