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에 대응하기 위한 운동본부가 23일 출범했다.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운동본부에서 활동하는 노동전문가와 법률가, 시민사회 등이 공동 대응에 나서고, 이를 통해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과 제대로 된 진상규명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촉구하는 게 운동본부의 주된 활동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 없는 세상 만들기 운동본부(운동본부)'의 출범을 선언했다. 운동본부에는 민주노총 외에도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전국민중행동,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참여연대, 김용균재단, 인권운동네트워크바람 등이 참여했다. 모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제정에 앞장선 단체들이다.
민주노총 이태의 노동안전보건위원장(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금 오히려 법이 무력화되고 있다"며 운동본부 출범 배경을 설명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지난 1월 27일 시행됐지만 중대재해는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특히 중대재해 사건 중 고용노동부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건은 8월 1일 기준으로 17건에 불과하다. 이중 검찰이 기소한 건 단 한 건뿐이다.
운동본부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가 노동 현장과 고용노동부, 검찰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유일하게 기소된 사건과 동일한 중대재해가 발생한 대흥알앤티 최고 책임자에 대해서는 서류상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갖췄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며 "법 적용 1호 사건으로 고용노동부 수사, 특별근로감독 결과, 언론보도를 통해 법 위반 정황이 명백하게 드러난 삼표산업 최고책임자가 여전히 기소되지 않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민변 조영선 회장도 "고용노동부에 대한 검사 파견과 검찰 지휘가 늘어나면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지나치게 신중한 쪽으로 전환되는 게 아닌지, 윤석열 정부의 친기업 정책으로 인해 수사 그리고 기소마저 머뭇거리는 게 아닌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법 시행 반년 만에 다시 나선 산재 유족들 "참담한 심정으로 다시 신발 끈 동여매"
운동본부의 중대재해 대응은 ▲법률 대응 ▲피해자 지원 ▲안전보건 지원 ▲시민사회 연대 등으로 이뤄진다. 중대재해 사건에 대한 법률 지원은 물론 유족 간담회 및 정부 면담에 도움을 주거나 중대재해 대응 시 현장 지원, 시민사회와의 연대 투쟁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을 강화하기 위한 법 개정 운동도 병행한다.
이를 위해 공동 대표단과 집행위원회, 집행팀, 지역별 중대재해 대응 기구 등의 조직도 구성했다. 공동 대표단으로는 민주노총 양경수 위워장(노동)과 참여연대 한상희 공동대표(시민사회), 민변 조영선 회장(법률),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이용관 씨(산재피해자) 등이 이름을 올렸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반년 만에 이같은 운동본부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현실이 참담하다고 호소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위해 단식농성까지 했던 고 이한빛 PD의 부친 이용관 씨는 "중대재해는 연일 계속되지만 기업의 경영책임자는 제대로 된 처벌이 안 되고 있으며 미적거리고 있어 참담한 심정으로 또다시 신발 끈을 동여매고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한 투쟁을 결의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이 씨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는 데도 재계와 정권은 1도 바뀌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 획책하고 있는 윤석열 정권은 누구를 위한 정권인가"라며 "참으로 분노가 치솟아 우리는 투쟁을 위한 발걸음을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씨는 "운동본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취지에 맞게 일터와 사회에서 사람이 죽지 않고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중대재해가 일어나는 현장에 달려가 신속하게 피해자와 가족을 지원하고, 기업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맞서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이 씨는 "법 제정 과정에서 눈물을 삼키며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모든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과 경영책임자 처벌을 강화하는 법 개정 투쟁에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