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기념 촬영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2022.05.26. ⓒ뉴시스
윤석열 정부 시행령 통치
“법치주의”를 외치며 집권한 정권에서 “법치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른바 ‘시행령 통치’ 때문이다. 시행령은 헌법과 법률의 하위 개념으로, 국회의 영역인 헌법·법률과 다르게 시행령은 대통령의 영역이다. 하지만 시행령은 국회가 만든 법률의 취지를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게 중·고등학교 사회교과서에도 나오는 법치주의의 기본 원리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법률의 취지와 다른 시행령 개정을 통해 국가를 운영하려는 모습을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시행령 통치, 이대로 괜찮은 걸까?
수사는 경찰이 하고, 기소는 검찰이 한다. 이는 ‘검경 수사권 조정’의 골자다. 수사·기소를 둘 다 하면서 영장청구권까지 독점하고 있어, 견제할 기관이 없던 검찰의 권한을 다른 기관으로 배분하기 위해 지난 정부에서 추진됐다.
수사권 조정은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우선 국회는 검사가 수사할 수 있는 범죄 범위를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축소하는 법 개정을 추진했다. 이후 국회는 한 차례 더 법을 개정해서 검사의 수사 범위를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축소했다. 이는 국회 고유권한인 입법권을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검사가 직접 수사할 수 있는 주요 범죄 영역을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6대 범죄’에서 ‘부패·경제 등 2대 범죄’로 제한한다는 취지였다.
윤석열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이를 무위로 돌리고 있다. 그것도 법을 개정하는 방법이 아니라, 그 하위법령인 시행령 개정을 통해서다. 시행령은 모법의 취지 안에서만 제·개정이 가능한데, 여권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아 개정이 비교적 손쉬운 시행령(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의 관한 규정) 개정으로 검사의 수사 범위를 마음대로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방식은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있지만, 한동훈 장관은 “법률대로 하고 있다”면서 강행 추진하고 있다.
법무부 차관회의에서 의결된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안' ⓒ법무부
범죄 재분류, 오남용 방지 규정 삭제 검찰 수사 개시 범죄 범위, 확대 김종철 교수 “위임입법 한계 일탈”
먼저 법무부는 손쉬운 시행령 개정을 통해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부패·경제 범죄 분류를 바꿨다.
공직자·선거 범죄로 분류되던 직권남용·직무유기와 금권선거 등을 부패 범죄로, 방위산업기술보호법상 기술유출 등 방위사업 범죄로 분류되던 것을 경제 범죄로 재분류했다. 더불어 ‘마약’도 경제범죄로 재분류했다. 검사가 수사할 수 있는 범죄 범위를 6대 범죄에서 2대 범죄로 축소하면서 제외된 일부 공직자·선거·방위사업 범죄가 시행령 개정으로 수사 가능 범죄로 탈바꿈한 것이다.
특히, 법무부는 검찰청법 제4조의 문구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에서 ‘등’이란 표현을 법 개정 취지와는 반대로 “다른 중요 범죄도 수사할 수 있도록 한 것”(8월 11일 법무부 보도자료)이라고 해석한 뒤, 수사 가능 범죄에 ‘사법질서를 저해하는 범죄’와 ‘국가기관이 검사에게 고발·수사 의뢰하도록 규정한 범죄’ 등도 포함토록 시행령을 손봤다.
또 이달 1일 차관회의에서, 법무부는 경찰이 송치한 사건 중 ‘직접 관련성’이 있는 범죄에 대해서만 검사가 직접 수사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통째로’ 삭제하기로 의결했다. 송치된 사건의 혐의와 무관한 먼지털기식 수사를 막기 위해 규정된 시행령 조항을 삭제하면서, 수사 범위를 유동적으로 무한정 확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대상 범죄를 6대 범죄에서 2대 범죄로 축소한 입법 취지와 부딪히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법률의 시행령은 모법인 법률에 의하여 위임받은 사항이나, 법률이 규정한 범위 내에서 법률을 현실적으로 집행하는 데 필요한 세부적인 사항만을 규정할 수 있을 뿐”이라는 1999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선고 98도2816)과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법규명령이 개정된 법률에 규정된 내용을 함부로 유추·확장하는 내용의 해석규정이어서, 위임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인정될 경우에는 법규명령은 여전히 무효이다”라는 2017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선고 2015두45700) 등을 고려하면, 위법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9월 2일 박범계·기동민 의원실 등 주최로 열린 ‘시행령 통치의 문제점 토론회’에서 “시행령에서 추가된 수사범위는 예측 가능한 범위에 있지 않기 때문에 위임입법의 한계를 일탈했다”며 위헌적이고 위법한 시행령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8월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적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답변하는 모습. ⓒ이탄희TV 영상화면 갈무리
고무줄처럼 바뀌는 법해석 모법 취지 유추·확장했나?
‘법무부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당시 개정 검찰청법 해석’과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할 때 내세운 법 해석’을 비교해보면, 같은 법령을 두고 법무부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법무부 장관은 올해 6월 27일 자 권한쟁의청구서에 “2020년 법 개정을 통해 이른바 ‘6대 범죄’ 이외의 영역에 있어서는 검사의 직접 수사개시가 금지됐고, 검찰이 송치한 사건에 있어서도 ‘직접 관련’ 성이 인정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수사개시가 금지됐다. 이로 인해 검사의 직접 수사 범위는 대폭 줄어들게 됐는데, 이러한 직접수사 범위 축소는 2022년 법 개정을 통해 더욱 심화됐다”라며 법 개정으로 검사의 수사 범위가 대폭 축소됐다고 적시했다. 반면, 검사의 수사 대상 범죄 범위를 확대하는 시행령 개정안 발표 당시 법무부는 “부패·경제 범죄 외에(도), 정부가 구체적 범위를 정한 중요 범죄가 수사개시 범위에 포함된다는 점이 법문언상 명백하다”라는 해석을 내놨다. 똑같은 법을 해석하는데, 사안에 따라 다르게 해석한 것이다.
이 같은 모순은 지난 8월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적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답변에서도 나타난다.
전체회의에서 이탄희 의원은 “이 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청구서에는 두 가지 경제·부패 범죄 외 범죄에 대해서는 직접수사 개시가 금지된다는 취지의 표현이 70차례 정도 등장한다”라며 “금지 18번, 불가능 12번, 축소 10번, 제한 30번”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한동훈 장관에게 “그 당시 한 장관도 기자들 앞에서, 이 법은 법률의 한계를 넘었다고 하면서 그 취지를 똑같이 설명했다. 그런데 8월 11일 시행령을 만들면서는 똑같은 법인데 금지되는 게 아니라 허용된 범위라고 말했다. 행정도 일관성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이에, 한 장관은 “법이 위헌이라는 싸움을 함과 동시에 국민피해를 최소화하는 시행령을 그 법이 위임한 (범위) 내에서 정확히 만든 것”이라면서도, 개정된 법에 대한 해석이 권한쟁의심판 때와 시행령 개정 때 왜 다른지 설명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