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엄청나의 먹어야 산다] 논 갈아엎으며 울던 농민들, 서울행 트랙터 시동 건다

편집자주

충남 예산에서 농사를 지으며 농민운동을 하고 있는 엄청나 (사)쌀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이 새로운 필진으로 합류합니다. 매달 전해지는 생생한 농민, 농촌, 농업 이야기에 굶으면 죽고 먹으면 사는 독자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9월 21일 오전, 충남 예산의 논에서 머리 희끗한 농민이 체면도 없이 꺽꺽대며 펑펑 울었다. 눈시울이 시뻘개질 때까지 참았지만 눈물은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도 서러운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벼를 키우기 위해서 이른 봄 논을 갈고, 볍씨를 준비하고, 모를 키워 심고, 제초를 하고, 비료를 주고, 물고를 보며 애지중지 키웠던 날이 떠올랐을 것이다. 유독 심한 봄가뭄으로 논에 물댈 걱정으로 잠 못 이룬 시간, 모를 심은 이후 잦은 비로 곰팡이 걱정 병충해 걱정에 노심초사하고 역대급 태풍 소식에 가슴 졸였던 시간이 떠올랐을 것이다.

“다 여문 벼 갈아엎는 거 보니 마음이 진짜 아프데. 내 논이면 못 갈아엎게 했을껴” 논갈이에 참여한 다른 농민이 펑펑 우는 논 주인에 대한 동감어린 말 한마디를 보탰다.

논 갈아엎는 것을 바라보는 농민(저작권:필자 제공)

농민들이 쌀정책에 항의하며 논을 갈아엎는 것이 한두 해는 아니지만 올해처럼 전국에서 하루상간으로 진행된 건 드물다. 전북 김제에서 시작된 논 갈아엎기는 영암 등 전남 전역은 물론 충남 예산, 천안, 당진, 논산, 부여, 서천, 청양, 아산, 보령, 전북 고창, 그리고 경남까지 전국으로 번졌다. 앞으로도 계속 투쟁이 예고돼 있다. 통계청 관측 이후 45년만의 최대폭으로 떨어지는 쌀값은 자식 같은 벼를 갈아엎는 저항으로 농민들을 이끌었다. 논을 갈아엎는다는 것이 농민에게는 어떤 심정인지 정부와 국민들이 알아줄지도 걱정이다.

국민들은 농민들이 왜 유독 쌀값에만 민감하게 반응하냐고 의아할 수도 있다. 27일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은 “쌀만 먹고 사냐”며 민주당의 소위 쌀값정상화법을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쌀은 누가 뭐라 해도 민족의 근본이요 식량주권을 지키는 기둥이다. 수입식품에 의한 식생활의 다양화로 쌀 소비량이 과거보다 줄어들었지만 그렇다고 우리 식탁에서 밥이 빠질 수는 없다. 민족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 식문화이고, 그 중심에는 당연히 밥이 있다. 몸이 아플 때 흰쌀죽을 찾는 것은 우리의 DNA가 온몸으로 기억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갈아엎는 논에서 피눈물을 흘린 농민들은
벼를 수확하기 위해 콤바인의 시동을 거는 것이 아니라
정권을 갈아엎을 서울행 트랙터에 시동을 건다


신자유주의는 식문화마저 흔들고 정치권의 쌀에 대한 망발을 용인하고 있다. 이 근저에는 돈에 눈이 먼 천박한 자본주의가 있다. 온통 세계를 휘감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이야 죽든 말든, 지구 환경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잘 살고 잘 먹으면 된다는 극히 이기적이고 비인간적 인식을 낳았다.

ABCD로 일컬어지는 세계 곡물메이저 기업들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천정부지로 오르는 국제곡물가로 어마어마한 흑자를 남겼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결국 제3세계 국가의 농업은 사라지거나 축소되지만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기업들의 수익은 날로 높아지는 것이다. 그 결과 기아와 빈곤의 문제가 전 지구를 뒤덮고 있다.

쌀값 폭락과 정부 농업정책에 항의해 논을 갈아엎는 농민들. 뒤로 “나락에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현수막이 보인다.(저작권:필자 제공)

혹자는 쌀도 수요와 공급에 의한 시장논리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쌀 생산과정의 공익성에 대한 사회적 이익과 충돌한다. 우리는 농지를 공적인 것으로 보고 농업진흥지역 등을 두고 농지의 매매와 개발을 제한해 왔다. 쌀의 생산기반인 농지에 대해서 자유로운 거래를 제한하면서 생산물인 쌀에 대해 시장 논리를 앞세우는 것은 결코 논리적이지 못하다.

식량주권을 든든히 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농업정책은 예산 삭감으로 시작했다. 비료지원비 삭감. 추경을 한다고 하면 으레 예산을 추가로 세운다고만 생각했지 예산이 삭감될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한 농민들은 윤석열 정부의 첫 추경에 어안이 벙벙했다. 생활물가가 급속도로 오르는 것처럼 농자재값도 함께 올랐다. 자영업자에게 긴급생활안정자금이 필요했던 것처럼 농민들에게도 농자재값에 대한 지원이 절실했다. 하지만 취임 직후 대통령의 행보는 기대와 달랐다. 농업직불금 2배 인상, 5조원을 약속했던 대통령의 눈에 농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진 밥상물가를 잡겠다는 국정운영은 농산물을 물가폭등의 범인으로 지목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농산물 시장은 생산자 농민들에게 폭리를 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양파와 마늘가격이 오르는 듯 싶으니 정부는 발빠르게 TRQ저율관세를 적용해 마늘, 양파 수입에 열을 올렸다. 여름부터 이어지는 채소 가격 상승으로 농민들이 큰 이익을 봤을 것 같으나 현실은 생산량이 워낙 적어 투입비용조차 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쌀값이 작년 수확기보다 25% 하락했다고 하는데 농민들의 벼값은 45%이상 하락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밥상물가가 소비자 물가의 상승을 야기한다고 말하기 주저하지 않는다.

국민의 밥상을 농민의 피눈물로 채우겠다는 것인가. 농민들은 정부와의 대항쟁을 준비하고 있다. 벼를 갈아엎는 논에서 피눈물을 흘린 농민들은 벼를 수확하기 위해 콤바인의 시동을 거는 것이 아니라 정권을 갈아엎을 서울행 트랙터에 시동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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