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 공약을 분석한 시민사회는 의료민영화를 우려했다. 민중의소리도 이 같은 우려를 보도했다. 대놓고 ‘이 공약은 의료민영화다’라고 홍보하고 있진 않았지만, 의료민영화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공공성 확대라 볼 수 있는 공약은 찾기 힘들었다. 오히려 “공공병원 위탁 운영 확대”처럼 공공성 약화를 우려케 하는 공약이 분산돼 있었다. 또 윤 후보는 틈만 나면 “규제 혁파”를 외쳤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 출범 후 6개월,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의료민영화의 먹구름, 이대로 괜찮을까?
지난 10월 14일 대구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 회의에서 국민의힘 박우근 시의원은 대구시 보건의료정책관을 꾸짖었다. 공공병원이자 지방의료원인 대구의료원의 적자 문제를 두고, 그는 “전부 빚내서 잔치하는 것 아니냐, 좀 줄여야지! 경영개선해서 대구시 부담 덜어주고, 뼈를 깎는 자구책을 마련하는 이런 태도가 중요하다”라며 이같이 타박했다.
코로나19 사태 때는 “덕분에”라며 적자를 무릅쓴 공공병원의 역할을 인정하다가, 사태가 끝나기 무섭게 “적자 문제를 개선하라”고 질타한 것이다.
공공병원에 뼈를 깎는 자구책을 마련하라니, 무슨 말일까.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도와 ‘비급여 진료’(건강보험 대상이 아니어서 환자가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진료)를 절제하는 지방의료원 특성상 취약계층이 많이 몰린다. 또 지방의료원은 돈이 안 돼 민간병원이 하지 않는 취약계층 환자 지원 등의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아 항상 적자에 허덕인다. 이런 사업을 하지 말고, 민간병원처럼 수익이 괜찮은 사업에 집중하거나 과잉진료를 하라는 말일까.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기획팀장은 박우근 시의원의 질타를 “무지한 발언”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대구 시민이 봉이냐”라는 말을 단순히 ‘무지한 발언’이라고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최근 이 적자 문제를 이유로 공공병원을 위탁운영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대구의료원과 성남시의료원이다.
위탁운영이 만병통치약?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시절 공공병원 위탁운영 확대를 공약한 바 있다. 공약집 297쪽 ‘지역의 부족한 응급의료, 필수의료, 의료인력을 확보하겠습니다’를 보면, ‘지역 국립대병원·상급종합병원의 공공성을 강화해 지역 필수의료 부족 문제 해결’ 방안으로 “공공병원 위탁운영 확대”를 제시하고 있다. 공공병원 위탁운영을 확대하면 공공성이 강화되고 지역 필수의료 부족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발상이다. 민중의소리는 올해 3월 <감염병 대책 대신 ‘의료민영화 먹구름’ 잔뜩...윤석열 공약> 기사에서 이 공약을 소개하며 우려의 목소리를 전한 바 있다.
공공병원 위탁운영 확대 공약은 취임 5개월 만에 이행되기 시작했다. 정부·여당이 다수의 의석수를 확보하고 지자체장이 바뀐 대구시와 성남시가 필두가 됐다.
국민의힘 전용한 시의원은 지난 10월 7일 성남시의회 개회를 앞두고 성남시의료원 개정조례안을 발의했다. 의료원 운영 위탁을 ‘의무화’하고, 위탁 주체를 민간의료법인으로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구체적인 조례안 내용을 보자면 “운영의 전부 또는 일부를 ‘대학병원 등’에 위탁할 수 있다”는 기존 조례안 내용을 “운영을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법인에게 위탁하여야 한다”로 수정했다. 그리고 ‘각호의 법인’으로는 “의료법에 따라 설립된 의료법인”, “다른 법률에 따라 의학·약학 등에 관한 교육·연구와 진료를 위해 설립된 법인”, “병원을 운영할 능력이 있는 비영리법인” 등을 명시해 민간도 위탁이 가능하도록 했다.
지역 시민사회와 의료원 직원들이 반발하며 논란이 되자, 국민의힘은 의견수렴 등 공론화 절차를 밟겠다고 한발 물러서는 듯했다. 그러다 지난 11월 4일 이태원 참사로 정신없는 와중에 ‘성남시의료원 경영진·이사진 및 임원 사퇴 촉구 결의안’을 발의하면서, 결의안에 “대학병원에 위탁해야 한다”고 명시하여 또 논란이 됐다.
대구시도 7월 13일 시설공간 확충 및 의료진 확보를 위한 예산 투입 계획을 발표하며 “대구의료원의 운영 체계 개선 방안으로 올 하반기부터 경북대병원의 공공 임상 교수 2명을 파견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후 단계별로 위탁운영을 확대 추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두 사례에서 공통으로 제시하는 공공병원 위탁운영의 필요성은 ‘경영 적자’와 ‘의료진 부족’이다. 마치 공공병원을 위탁하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한다. “안과 의사가 없다. 구해도 안 온다. 연봉 몇억 줘도 안 온다. 심장내과 의사는 연봉 4억까지 걸었는데 안 온다. 그래서 이러한 직영했을 때 의사수급에 아주 결정적인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대학병원이 있다고 하면 대학교에서 전공의까지 교수들까지 와서 진료를 하니까…”(국민의힘 소속 신상진 성남시장, 10월 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대학병원에 위탁했더니, 가중된 취약계층·지역주민 진료비
대구의료원과 성남시의료원이 지역사회에서 해온 역할 등을 보면 이 같은 지적이 적절한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전담병원(대구의료원·성남시의료원) 저소득층 본인부담금 감면수술 사업(대구의료원), 가정간호사업·취약환자지원사업(성남시의료원) 등 지역 공공병원이 벌여온 사업은 돈을 벌기 위한 사업이 아니다. 공공병원이기에 적자를 감수해서라도 민간병원이 채우지 못한 의료공백을 채워왔다.
예컨대 성남시의료원에서 하는 취약환자지원사업은 이렇다. 지방의료원을 찾는 환자 중에는 진료·치료 외에도 다른 지원이 필요한 경우가 꽤 있다. 일단 의료비 지원이 필요하다, 홀로 살 경우 돌볼 사람이 필요하니 간병사를 지원해줄 수 있어야 한다. 퇴원 후 집에 가서도 살아야 하는데 직접 밥을 해 먹을 수 없으면 도시락을 지원해주는 기관과 연계해줘야 한다. 가정이 어려운데 의료수급에 관한 정보가 부족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면 찾아줄 수도 있어야 한다. 이 같은 지원 사업을 민간병원은 돈이 안 되기에 하지 않는다. 돈을 떠나 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성남시의료원 공공의료 분야 관계자는 “의료원은 시 산하기관이고 다 연관되다 보니까 그런 게 가능하다. 보건소와 주민센터 등으로부터 환자 정보를 받기도 쉽고, 거기서 의료원에 환자를 의뢰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지방의료원에서 주로 하는 취약계층 등을 위한 가정간호사업은 수익이 안 남는 사업이다. 지방의료원의 한 관계자는 “애초에 수익이 불가능한 사업”이라며 “보통 가정간호사는 전문 간호사이고 경력도 필요하다 보니 인건비가 보통 인건비보다는 높고, 여러 활동비까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간호사에게 위험부담까지 따르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좀처럼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업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이런 사업을 하는 곳이 지방의료원인데, 적자경영을 문제 삼는 게 과연 적절한 접근일까?
이서영 인의협 팀장은 “전제부터 잘못된 주장”이라고 말했다. 이 팀장은 “국립경상대병원이 마산의료원을 위탁운영 하면서 경영수지는 개선됐지만, 시민들의 의료비가 증가한 전례가 있다”라며 “주민들의 주머니를 털어서 경영수지가 개선된다면 개선이라고 볼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2007년 5월 한국보건산업진행원이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지방의료원 운영혁신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1996~1998년 사이에 대학병원에 위탁된 마산의료원·이천의료원·군산의료원은 위탁되지 않은 지방의료원에 비해 저소득층과 지역주민의 진료비 부담을 가중했을 뿐만 아니라 민간의료기관과 다름없는 진료 행태를 보였다. 만약 대구의료원과 성남시의료원을 대학병원에 위탁하여 경영수지가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이를 개선이라 보기 어려운 지점이다.
의사·간호사 부족 허덕이는 대학병원에 위탁하면 인력부족 해결?
지방의료원의 의료진 부족 문제도 대학병원에 위탁한다고 해결될지 미지수다. 대구시·성남시 그리고 국민의힘이 대학병원에 위탁하면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정작 대학병원들도 의료진 부족으로 허덕이고 있기 때문이다.
10월 14일 대구시교육청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는 경북대병원의 의사·간호사 인력 부족으로 인한 의료질 저하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경북대병원은 대구시가 대구의료원 운영을 맡기기로 한 대학병원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날 의사 부족 문제를 제기한 국회의원은 국민의심 소속 서병수 의원이었다. 대구시·성남시 시의회에서는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대학병원이 지방의료원을 위탁운영하면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정작 국민의힘 의원은 지역 대학병원에 의사가 부족한 현실을 드러낸 것이다.
이서영 팀장은 “의료진 부족, 비단 경북대병원 문제만이 아니다”라며, 당초 의사가 너무 적게 배출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한 해 배출되는 의사 수도 부족하고,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사 수는 더더욱 부족하다. 대구의료원 같은 지방의료원에 의사가 부족한 것은 경북대병원 같은 대학병원이나 여타 민간병원에 의사가 몰려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의사가 너무 적게 배출되고 공공의료인력 양성과정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성남시의료원 의료진과 직원들이 만든 비상대책위원회도 ‘대학병원에 위탁하면 성남시의료원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국민의힘 측 주장에 대해 “무지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비대위는 11월 21일 성명을 통해 “대학병원에 위탁한다고 (대학병원) 교수들이 의료원에서 진료할 수 있을까?”라며 “대학병원조차 의료인력이 부족한 현실이다. 분당서울대병원이 예전부터 위탁을 거부한 핵심 이유가 바로 의료원에 보낼 인력이 없어서였다”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