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 공약을 분석한 시민사회는 의료민영화를 우려했다. 민중의소리도 이 같은 우려를 보도했다. 대놓고 ‘이 공약은 의료민영화다’라고 홍보하고 있진 않았지만, 의료민영화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공공성 확대라 볼 수 있는 공약은 찾기 힘들었다. 오히려 “공공병원 위탁 운영 확대”처럼 공공성 약화를 우려케 하는 공약이 분산돼 있었다. 또 윤 후보는 틈만 나면 “규제 혁파”를 외쳤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 출범 후 6개월,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의료민영화의 먹구름, 이대로 괜찮을까?
“이게 무슨 내용이죠?” “음” “별로 중요한 게 아닌가요?” “이거는 건강관리서비스 대상으로 비의료기관 서비스입니다. 인증기준에 따라 평가하여 서비스 인증을 부여하는 시범사업입니다.” “중요한 사업이죠?” “네” “근데 왜 (국회에) 보고(도) 안 했어요?” “공교롭게도...사전에 충분히 보고드리고 협의하겠습니다.”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나눈 질의응답이다. 지난 10월 2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남 의원은 의료민영화 논란의 정부 사업을 우려하며, 왜 국회에 보고조차 안 하고 사업을 추진하느냐고 질책했다. 그러자, 조 장관은 그제야 “보고하고 협의하겠다”라고 했다.
“사실상 말장난”
조 장관이 이날에서야 국회에 보고하겠다고 한 시범사업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곧바로 추진되기 시작한 건강관리서비스 사업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6월 20일 제4차 국민건강증진정책심의위원회에서 시범사업 안건 하나를 슬쩍 의결시켰다. 이어 지난 10월 6일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국민건강 증진’과 ‘의료비 절감’을 위하여 만성질환자와 건강한 국민이 일상 속 건강관리를 해나갈 수 있도록 총 12개의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에 대해 시범 인증을 부여하기로 했다”라고 공표했다.
취지만 보자면, ‘의료비 절감’과 ‘국민건강 증진’에 도움이 되는 사업 같다.
그런데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꼭 그렇지 않다. 일차의료기관에서 해야 할 진료행위를,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에서도 할 수 있도록 시범적으로 허용하겠다는 내용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기업처럼 이윤을 남겨 투자자에게 이윤을 분배하는 영리병원이 많아지면, 의료비 폭등과 과잉진료 등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이에, 우리나라는 의료법으로 영리병원을 세울 수 없도록 막고 있다. 그런데 우회적으로 영리기업도 병원이 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고혈압과 당뇨 등 만성질환 관리를, 영리기업도 할 수 있도록 시범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만성질환 관리 등을 시범적으로 허용한 12개 기업을 보면, 대기업 보험사(삼성생명 등) 가입 고객을 대상으로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곳도 보인다. 정부는 이를 두고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라며, 영리기업에 넘겨도 상관없는 영역처럼 치부하고 있다.
보건의료단체는 이 같은 접근이 대단히 위험하다고 우려한다.
의사인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팀장은 “사실상 말장난”이라며 “비의료라고 굳이 이름을 붙인 건강관리서비스 내용을 보면, 만성질환 진료에서 의료진이 제공하는 진료행위의 내용과 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만성질환은 관리가 치료이자 예방”이라고 강조했다.
참여연대·보건의료단체연합도 지난 10월 13일 공동성명을 통해 “건강관리서비스야말로 가장 심각한 의료민영화 정책이라고 보며, 이대로 추진할 경우 의료 시장화는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라며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는 심각한 의료민영화”라고 경고했다. 서울특별시약사회도 10월 17일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서울시약사회는 “비의료라는 단어로 공공보건의료와 관련 없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이는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자를 영리기업이 관리할 수 있도록 인증하는 것”이라며 “영리기업에 보건의료를 허용하는 해묵은 의료민영화, 영리화 정책의 변종”이라고 비판했다. 심지어 보수적인 대한의사협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김이현 의협 홍보이사는 데일리팜과의 인터뷰에서 “보건의료발전협의체 회의에서 의약정협의를 했지만, 당시에는 만성질환 관리 내용이 없었다”라며 “의료 경계선의 불명확함을 이용해 시범사업을 추진한다면 반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의료민영화 논란이 거세지자 보건복지부는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는 의료법상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 비의료 분야에 대한 건강관리서비스이며 의료영리화와는 관계없다”는 설명자료를 배포했다. 그런데도, 의료민영화 논란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 해명에 대해,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무상의료운동본부)는 “궤변”이라고 비판했다. “만성질환 건강관리서비스가 비의료”라는 보건복지부조차 해당 서비스 보도자료에 이를 “일차의료”라고 적고 있기 때문이다. 10월 6일 자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보건복지부,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12개 시범 인증’을 보면, 보건복지부는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사업’의 케어코디네이터 제도를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명시했다. 실제 케어코디네이터 역할은 대체로 간호사가 수행하며, 이는 명백한 일차의료 행위라는 게 보건의료단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국내 의료법에서 영리병원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만큼, 법 개정 없이 이를 추진할 경우 의료법 위반 논란도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명박 때부터 추진된 의료민영화, 윤석열 때 번지나
건강관리서비스 의료민영화 논란의 뿌리는 이명박 정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명박 정부는 민간기업이 건강관리서비스 기관을 설립·운영하며 관련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건강관리서비스법’을 제정하려 했으나, 의료민영화 논란으로 무산됐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때도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관련 산업 육성을 추진했고, 문재인 정부에서도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에 들어서서 건강관리서비스를 시범적으로 영리기업에 허용하는 시범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 법을 만들어서 추진하려 했는데, 가로막히니,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우회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건강관리, 왜 공공으로 끌어들이지 않았나
역설적이게도, 만성질환 건강관리서비스 분야는 일부 지방의료원에서 공공의료로 삼는 사업이다. 시민의 요구가 있는데도, 이를 정부에서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들이지 않고 방치하고, 민간병원들도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나서지 않아, 의료공백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위탁 추진 논란에 휩싸인 성남시의료원은 공공의료사업 중 하나로 만성질환 건강관리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의사진료 → 질환관리 교육 → 지역사회 자원연계 → 모니터링 절차를 통해 만성질환을 관리하는 서비스다. 시 의료원 공공의료본부 관계자는 “보통 당뇨병 교육의 경우, 분당서울대병원에서 하루 한 번 교육할 때마다 5만 원 정도 받는다. 교육별로 과정을 만들어 놓고 돈을 받는데, 저희가 생각하는 것은 무료 형태의 공공서비스”라며 “동일한 정보량으로 내년부터 교육 사업을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공공병원에서 왜 만성질환 건강관리서비스를 공공의료사업으로 추진하려 하느냐’는 질문에, 시 의료원 관계자는 “그동안 민간병원이 역할을 못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어 최근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건강관리서비스 시범사업과 관련해 “시민들의 요구는 있는데, 병원이 이를 충족 못 시키다 보니까 영리기업이 그사이를 뚫고 들어온 셈”이라며 “영리기업은 분명히 수익구조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영리기업의 수익창출은 곧 의료비 상승을 의미한다 할 수 있다.
사실 정부는 뜻만 있다면 만성질환 건강관리서비스 분야를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때 법 개정에 실패한 뒤로도, 영리기업에 내어주는 작업을 야금야금 추진해 왔던 것이다. 김재헌 무상의료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이를테면 주치의 제도 등을 통해서 만성질환을 일차의료기관에서 관리하도록 하여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식이 있다”라며 “그런데 정부는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안 하려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민간보험사가 점점 영역을 넓히는 식으로 가게 되면 종국에는 미국의 의료체계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정부·여당은 공공기관 의료데이터를 민간보험사에 개방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 9월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공공기관이 보유한 의료 등의 데이터를 민간에 개방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10월 6일에는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의료데이터 활용을 촉진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또 최종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심평원은 이미 환자표본자료를 만들어서 민간보험사에 50~300만원의 수수료를 받고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흐름에 대해, 이서영 팀장은 다음과 같이 우려했다. “지금의 건강관리서비스가 일으키는 문제는 기껏해야, 기존 국민건강보험의 적용대상인 만성질환 진료를 받으면 해결할 수 있는 것을 굳이 건강관리서비스를 제공받으며 불필요한 지출을 하게 된 일부 국민들에게 국한되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민간영역에서 제공하는 의료서비스 영역이 더 확장된다면, 악화된 의료보장을 틈타 민간보험 시장 규모가 커지고, 민간보험의 낮은 보장성과 까다로운 진입장벽으로 인해 국민 전체 수준에서 의료비가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