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적이 있나요?” 건설노동자들의 반문

건설노조 “정부와 검찰은 딴청 말고 중대재해처벌법 엄중히 적용하라”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이 25일 서울 강남구 대한건설협회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주년을 맞아 열린 건설현장 중대재해처벌법 엄중 적용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01.25 ⓒ민중의소리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적이 있나요?”

지난해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벌써 1년이 흘렀지만, 건설현장에선 이런 반문이 나오고 있다. 중대재해로 인한 건설노동자들의 산재사망은 여전히 잇따르고 있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이 제대로 적용된 적은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건설업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잇따르고 있지만, 실제론 처벌조차 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라 오히려 중대재해처벌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건설노동자들의 지적이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은 25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대한건설협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건설현장 위험 상황 실태를 폭로하고, 법·제도의 엄정한 적용을 촉구했다.

건설현장 사망사고 잇따라도 처벌은 0건

건설노조가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3일간 건설노동자 7천543명을 대상으로 노동안전보건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에도 건설현장이 달라졌다’고 밝힌 응답자는 21.6%(1천629명)에 불과했다. 반면 ‘달라지지 않았다’고 밝힌 응답자는 과반인 52%(3천924명)에 달했다.

‘달라졌다’고 응답한 이유로는 안전을 중시하는 분위기(72.9%, 1천187명), 안전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41.9%, 682명), 안전발판 등 위험방지시설 확충(34.6%, 563명) 등이 꼽혔다. 작업중지권이 보장되는 경우가 늘어난 것도 이런 긍정적인 평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 포스코, 현대건설 등 대형 건설현장에서 일해봤다는 55.5%(4천186명) 응답자 중 ‘작업중지권을 보장받은 적이 있다’는 답변은 24.1%로 나타났다.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획기적으로 높아진 수준이다. 전재희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건설현장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과반의 응답자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건설현장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응답했는데, 이는 여전히 산재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 19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산업재해 현황 부가통계-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현장에서 숨진 노동자는 모두 341명에 달했다. 전체 산재 사망자 644명 중 건설업이 여전히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 중 10대 건설사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사망자는 25명에 달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만 놓고보면 DL이앤씨(옛 대림산업·e편한세상)가 5명으로 가장 많았다.

DL이앤씨 건설현장에선 지난해 4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3월에는 서울 종로구에서 전선드럼에 의한 사고가, 4월에는 경기 과천시에서 굴착기에 의한 사고가, 8월에는 경기 안양시에서 콘크리트펌프카에 의한 사고가, 10월에는 경기 광주시에서 이동식크레인에 의한 사고가 발생했다.

건설노조 설문조사 결과, DL이앤씨에서 중대재해가 반복되는 이유로 ‘무력한 중대재해처벌법(사업주가 기소 및 처벌받지 않음)’을 꼽은 응답자는 과반인 60.6%(4천570명)에 달했다. 뒤이어 ‘건설사 관리감독 부실(타 건설사에 비해 유독 대림이 부실)’이 20.3%(1천530명)로 높은 응답률을 기록했다.

실제로 DL이앤씨는 현재까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2월 28일 DL이앤씨 주요 현장 감독 결과, 전체 67개 현장 중 65개소에서 459건의 위반 사항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그 중 안전보건관리시스템 위반 사항이 301건에 달한다. 건설노조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을 구축했는지 여부에 따라 과실을 묻는다”며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DL이엔씨는 유죄다. 하지만 DL이엔씨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DL이엔씨뿐만이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부터 지난해 12월 8일까지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조사한 사건은 211건이라고 법률신문이 보도했다. 이 가운데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사건은 모두 31건이다. 모두 대표이사가 그 대상이다. 하지만 사업주가 구속수사를 받거나 처벌된 사례는 아직 한 건도 없다고 건설노조는 지적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건설현장 곳곳에 나타난 ‘무사고’ 확인 절차. ⓒ건설노조

안전의 책임도 건설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시스템 강화

반면 건설현장에선 건설노동자들에게 안전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비판이 현장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게 ‘무사고 서명’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건설현장에서는 ‘안전 수칙을 준수히 아무런 사고 없이 작업을 종료했다’, ‘사고 발생시 보고 의무사항 위반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다하겠다’는 등의 내용이 적힌 서류에 서명을 하거나 홍채 인식 등으로 자기 확인을 하는 시스템이 다수 등장했다. 건설노조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30.6%(2천311명)이 이런 요구를 받았다고 답했다.

1년 전에 비해 건설현장에 CCTV가 늘었다는 응답이 57.9%(4천368명)에 달하는 점도 눈에 띈다. 이에 대해 응답자들은 안전사항 관리감독 및 미비한 안전시설 개선(43.9%, 3천315명)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노동자 감시 및 안전 책임 떠넘기기(56.1%, 4천228명)를 위한 것이라고 인식했다.

건설노동자들은 설문 조사를 통해 “CCTV 설치 등으로 불필요한 현장 감시가 심해지고, 계도보단 실적 위주 안전 점검, 사진찍기용 형식적 안전 점검을 하며, 노동자 참여를 보장하지 않는 안전협의체를 운영하고 있다”며 “눈과 비가 와도 일을 시키면서 말로만 ‘안전’을 이야기하고 ‘빨리빨리’ 강요가 여전하다”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건설사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이 CEO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위한 법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엄살을 부리며 중대재해처벌법 완화를 요구하고 있고, 정부도 이에 응답하고 있다는 게 건설노조의 비판이다.

건설노조는 “고용노동부를 위시한 정부 당국은 중대재해처벌법 지우기에 혈안이 돼 있다. 제대로 시행한 적도 없으면서 온갖 통계에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해 법 제도의 취지를 폄훼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은 “건설노조는 더이상 건설현장에서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매년 요구해왔다. 그럼에도 건설사와 정부는 자기들 이익과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사람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다”며 “이런 나라와 이런 건설사를 더이상 두고 볼 수가 없다”고 일갈했다.

나아가 건설노조는 “최근 일련의 민주노총 건설노조에 대한 탄압은 중대재해처벌법을 주장해왔던 진보세력에 대한 재갈물리기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건설노조의 불법행위를 뿌리 뽑겠다며 경찰을 중심으로 한 공권력이 총동원돼 먼지털이식 강제수사를 하고 있는 데 대한 비판이다.

건설노조는 “고용노동부를 위시한 정부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이니 빈 수레만 요란하게 흔들어댈 게 아니다. 엉뚱하게 노조를 잡아 여론 몰이에 혈안이 될 게 아니다”라며 “정부와 검찰은 딴청 말고 중대재해처벌법을 엄중히 적용하라”고 촉구했다.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이 25일 서울 강남구 대한건설협회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주년을 맞아 열린 건설현장 중대재해처벌법 엄중 적용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01.25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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