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철학 거장 하버마스의 '협상을 위한 하나의 변론' 전문

2014년의 위르겐 하버마스 ⓒ사진=뉴시스

편집자주

독일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게파르트 대공자주포 50기를 지원하기로 결정한 다음날인 지난달 28일 페미니즘 잡지 ‘엠마’에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에게 무기 지원을 자제하라고 요구하는 지식인 27명의 공개 편지가 실렸다. 그리고 지난 2월 15일에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중 하나인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에 ‘협상을 위한 하나의 변론’이라는 긴 기고문을 발표했다. 이 두 사건은 발발 1주년을 맞아 뜨거워지고 있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논쟁에 불을 붙였다.   
이 글에서 하버마스는 독일을 포함한 서방의 지원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싸울 수 있는 상황임에도 우크라이나만 협상 가능성, 시기, 목표를 결정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일관성이 없고 무책임하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를 불법 침공한 러시아에게 패배를 안겨줘야 한다며 도덕적인 당위성을 강조하는 주장에 대해,  전쟁의 대가를 치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접근해 러시아에게 패배하지 않는 선에서 전쟁을 빨리 마무리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형성된 현대 국제법에 내재된 윤리에 맞는 도덕적인 입장이라고 주장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및 서방이 서로 체면을 살릴 수 있는 타협안을 찾을 수 있고, 이를 위한 협상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하버마스의 기고문 전문을 소개한다.  

원문:  Ein Plädoyer für Verhandlungen

자국 주력 탱크인 레오파르트2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기로 한 독일의 결정이 ‘역사적’이라고 환영받자마자 그 소식이 전투기, 장거리 미사일, 전함 및 잠수함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우크라이나에 의해 압도되고 상대화됐다. 요란한 만큼 이해도되는 우크라이나의 도움 요청에 대한 서방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도덕적으로 분개한 자가 더 강력한 무기를 요구하고, 지원을 약속한 자가 주저하면서도 지원 무기 유형을 계속 업그레이드하는 익숙한 게임이 진행됐다. 예상을 벗어난 유일한 점은 그 게임이 가속화됐다는 것이다.

독일 사회민주당(사민당) 내부에서는 이제 넘지 못할 ‘레드라인’이 없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총리와 그의 측근을 제외하면 독일 정부와 정계, 언론이 ‘우리는 러시아 패배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는 리투아니아 외무장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듯하다. 다양한 의미를 지닐 수 있는 ‘승리’라는 모호한 전망 때문에 군사적 지원의 목표와 그것을 달성할 방법에 대해 더 이상 논의하지 말자는 식이다. 그리하여 군비 지원 과정이 자체적인 추진력을 얻는 듯하다. 충분히 이해 가능한 우크라이나 정부의 촉구로 촉발 됐지만, 독일의 군사적 지원은 거의 절반의 국민이 주저하며 숙고 하자는 상황에서도 천편일률적인 호전적인 목소리에 끌려가고 있다.  

아니, 그게 완전한 사실은 아니다. 총리의 입장을 옹호하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어려운 협상의 길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는 사려 깊은 목소리도 나온다. 여기에 나까지 목소리를 보탠다면 그건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져서는 안 된다’라는 주장이 옳기 때문이다. 내 관심사는 시기적절한 협상을 통한 예방이다. 장기전이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가고, 더 많은 파괴를 가져오며, 결국 참전이냐 핵보유국 사이의 첫 세계대전을 피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서 손을 완전히 떼느냐 중에서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예방하는 협상 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너무 질질 끌어지고 있다. 파괴 규모가 커지고 사상자가 늘고 있다. 우리가 합당한 이유로 제공한 군사적 지원이 푸틴에 대한 승리가 유일한 목표라는 이유로 방어적인 성격을 버려야 하는가?

미국을 비롯한 NATO 회원국은 처음부터 되돌릴 수 없는 선, 참전 만큼은 하지 말자는 합의가 있었다. 숄츠 독일 총리가 탱크를 지원한다고 했을 때 미국이 기술적, 전략적 이유로 주저한 것을 보면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해도 참전은 않겠다는 게 전제였음을 재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서방이 가장 우려한 것은 서방의 지원 규모가 어느 정도가 돼야 ‘참전’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전적으로 러시아 지도부의 판단에 달려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중국도 핵무기나 생화학무기 사용에 반대한다고 선언하자 이런 우려가 뒷전으로 물러났다. 서방 정권들의 관점이 바뀌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승리해야 한다는 관점 때문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의 수위가 제3차 대전의 문턱을 넘나들 정도로 높아질 추진력을 얻게 된 것이다. 그래서 중요해진 것이 있다. 쿠르트 키스터가 2023년 2월 11일자 쥐트도이체차이퉁에서 강조한 것처럼 “어느 수준부터 (우크라이나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 가담하는 것이 되는지를 논의하는 것조차 러시아에 복무하는 일이라고 주장함으로써 토론을 막아서는 안 된다”.

우크라이나만 향후 협상의 시기와 목표를 정할 수 있다? 그것은 일관성이 없다

심연의 가장자리를 몽유병 환자처럼 걷는 것이 정말 위험해지고 있다. 특히 서방 동맹이 우크라이나를 점점 유리하게 만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필요할 동안’ 우크라이나 정부를 꾸준히 지원할 것이고, 협상이 이뤄질 경우 우크라이나 정부만이 그 시기와 목표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을 끊임없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방이 이렇게 계속 얘기하는 것은 당연히 러시아를 낙담시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얘기는 일관성이 없고 명백한 차이를 모호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 얘기는 협상을 주도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우리 자신을 속이게 만든다. 한편으로는 전쟁 당사자만이 협상의 시기와 목표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반면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가 서방의 지원에 달려 있다.

서방이 자신만의 정당한 이익과 의무가 있는 건 사실이다. 서방은 더 넓은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우크라이나 이외의 이해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서방은 자국민의 안보 요구에 대한 법적 의무가 있고, 우크라이나 국민의 태도와는 별개로 서방 무기로 인한 파괴와 사상자에 대한 도덕적 책임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서방은 자신의 군사적 지원을 통해서만 가능한 적대행위의 장기화로 인한 잔인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우크라이나 정부에게 돌릴 수 없다. 서방은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도,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도 피할 수 없다.

‘패배하지 않는 것’과 ‘이기는 것’이 평화주의자와 비평화주의자를 가르는 기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전쟁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이 고갈 되는 등 더 와닿는 이유 때문에라도 협상이 점점 시급해지고 있다. 시간이 서방 국가 국민의 생각과 성향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쟁점인 협상 시점에 대한 입장을 도덕과 이익의 대립으로 단순화하기 너무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전쟁의 종식을 촉구하는 것은 주로 도덕적인 이유 때문이다.

전쟁 기간은 사람들이 전쟁을 인식하는 관점에 영향을 미친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특히 현대 전쟁의 특징인 폭발적인 폭력이 부각되면서 전쟁과 평화의 관계에 대한 관점을 대체적으로 규정하게 된다. 나는 평화 협상의 의미와 가능성에 대해 독일에서 이뤄지기 시작한 논의 속에서 드러나는 그런 관점에 관심 있다.

독일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두 가지 관점이 전쟁 초기부터 전쟁의 목표를 둘러싸고 가시화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독일의 무기 지원이 우크라이나의 패배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과 러시아에게 승리를 거두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서로 부딪혔던 것이다.

이 모호한 차이와 평화주의는 거의 관련이 없다. 19세기 말에 일어난 평화주의 운동은 전쟁의 폭력성을 정치화했지만, 당시의 초점은 국제분쟁의 해결 방식으로 전쟁을 선택하는 것을 점진적으로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무기 드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이런 면에서 봤을 때 평화주의는 전쟁의 희생자들에게 부여하는 무게로 구분되는 두 관점과 무관하다.

이것은 중요하다. ‘지지 않는 것’을 전쟁 목표로 삼는지, ‘승리한다’는 것을 전쟁 목표로 삼는지가 평화주의자와 비평화주의자를 규정하지 않는다. 이 구분은 현재 한 주권 국가의 존재와 독립을 불법으로 공격한 러시아에 맞서는 우크라이나에게 서방 동맹이 무기, 군수 및 민간 서비스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정당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의무라고 생각하는 진영, 그러니까 비평화주의 진영 내부의 반대파도 규정한다.

지난 몇 달 동안 우크라이나 전선이 얼어붙었다
꼭 1916년 1차 세계대전 당시의 서부전선 같다


전쟁에서 지지 않아야 한다는 관점과 이겨야 한다는 관점 간의 대립은 수세기에 걸쳐 폴란드, 러시아 및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은 후 소련의 몰락으로 겨우 독립 국가를 수립한 민족의 고통에 대한 동정심과 연관 있다. 우크라이나는 가장 최근에 등장한 ‘늦된’ 유럽 민족이다. 우크라이나 민족은 아직 형성 단계에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다수파 비평화주의 진영도 평화협상의 적절한 시기를 두고 분열돼 있다. 한 쪽은 러시아를 물리치고 크림반도까지 회복하기 위해 무제한적으로 커져가는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지원 요청에 동의하고 이를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쪽은 2022년 2월 23일 러시아 침공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협상과 휴전을 추진함으로써 최소한 패배는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 입장의 장단점은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반영한다.

사람들이 마음속에서 끓던 이 갈등을 지금 끄집어내 해소하기를 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23년 1월 25일자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소모전은 러시아에게 유리하다’라는 제목 아래 양측 모두의 막대한 손실에도 불구하고 돈바스 북부지역의 바흐무트 전선에 변화가 없다며 “그곳은 마치 베르됭 같다”는 NATO 고위 간부의 말을 인용했다.

역사상 가장 참혹한 소모전이었던 1차 대전의 전투와 현재를 비교하는 것은 사실 별 의미가 없다. 둘을 비교하는 것은 최전선에 큰 변화가 없는 정적인 장기전이 전쟁의 희생자와 피해자가 겪는 고통을 인식하게 만드는 한에서만 의미가 있다. 실제로 소냐 제크리의 2023년 2월 3일자 쥐트도이체차이퉁 기사는 동정심을 감추지 않지만, 그렇다고 슬쩍 넘어가는 것 없이 전선의 참혹함을 묘사해 1916년 1차 대전 당시 서부 전선의 공포를 떠올리게 했다. 서로 맹렬히 싸우는 군인, 수많은 시체와 부상자, 무너진 집, 병원과 학교, 한마디로 문명화한 삶의 말살은 전쟁의 핵심이 파괴라는 점을 반영한다. 이것은 “우리 무기는 인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독일 외무장관의 발언을 다른 관점으로 보게 한다.

전쟁의 사상자와 파괴 자체가 우리의 주의를 끌면 전쟁의 다른 측면을 볼 수 있게 된다. 즉, 전쟁은 비도덕적인 공격자에 대한 방어 수단만이 아니다. 전쟁의 과정 자체가 가능한 한 빨리 중단해야 할 파괴적인 폭력인 것이다. 전자에서 후자로 가중치가 옮겨갈수록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모든 전쟁에서 적을 이기려는 욕망은 죽음과 파괴를 끝내려는 욕망과 늘 공존했다. 그리고 이번 전쟁에서 사용하는 무기의 위력이 강력해짐에 따라 전쟁의 파괴성도 커져 두 관점의 상대적 비중이 변했다.

서방은 정당한 목표를 위해 어느 정도의 희생자를 용인해야 하는가를 늘 염두에 둬야 한다

지난 100년 동안 야만적인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냉전의 불안한 긴장감을 경험한 사람에게 개념적 변화가 일어났다. 현재까지 국제 분쟁을 전개하고 해결하는 방법으로 이용된 전쟁이 문명화한 공존의 기준과 절대 양립할 수 없다는 결론을 무의식적으로 내릴 때가 많았다. 어떤 의미에서 전쟁의 폭력성이 자연스러움을 상실한 것이다.

이런 광범위한 의식 변화는 법의 변화에도 흔적을 남겼다. 물론 그 전에도 전쟁 범죄를 금지하는 국제인도법이 있었지만, 그것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2차 대전이 끝나면서 전쟁의 폭력 자체가 법으로 순화돼, 국가 간 분쟁의 유일한 해결 방식으로 법이 전쟁을 대체하게 됐다. 1945년 10월 24일 발효된 유엔 헌장과 새로 설립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 때문에 국제법에 혁명이 일어났다.

유엔 헌장 제2조는 모든 국가가 평화적인 방법으로 국제 분쟁을 해결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한다. 전쟁의 폭력적인 과잉의 충격이 이런 혁명을 낳았다. 유엔 헌장의 감동적인 서문은 2차 대전 희생자들의 공포를 반영하고 있다. 서문의 핵심은 ‘우리의 힘을 합해... 공동의 이익을 위한 경우 이외에는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촉구하고 있다. 국제법에 따라 모든 국가와 사회의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무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엔 헌장이 전쟁의 희생자를 고려하는 바, 한편으로는 전쟁을 마음대로 일으킬 수 있는 주권 국가의 ‘권리’인 전쟁권(jus ad bellum)이 폐지됐고, 또 한편으로는 도덕과 윤리에 기반 했던 ‘정의로운 전쟁’ 독트린이 피공격자의 자위권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폐지됐다. 유엔 헌장 제7장에 열거된 침략 행위에 대한 다양한 대응 조치도 전쟁 그 자체를 반대한다는 것이며, 법률 언어로 구성돼 있다. 이를 위해서는 현대 국제법에 내재된 윤리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져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그런 역사적 맥락, 즉 전쟁을 대체한 국제법의 등장 속에서 이해하고 있다. 나는 이 주장이 보이는 자제력이 우크라이나가 국제법을 어긴 공격자에 맞서 계속 싸울 수 있게 해주고 있는 서방에 대한 경고라고 생각한다.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은 서방에게 정당한 목표가 있어도 감내할 수 있는 희생자의 숫자, 희생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노출되는 위험성, 실질적이고 잠재적인 파괴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늘 염두에 둬야 한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아무리 이타적이어도 전쟁을 지지하는 사람은 목표와 피해의 비율을 따질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면 안 된다’는 더 소극적인 주장은 21세기에도 전쟁을 자연스러운 유일한 국제 분쟁의 해결 방법으로 간주하고 ‘적과 아’를 구분하는 관점에 의문을 제기한다. 전쟁, 특히 푸틴이 일으킨 이번 전쟁은 이미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서 교훈을 얻은 강대국이 역사적으로 확립된 문명화한 상호작용 수준에서 퇴행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무력충돌의 발발을 고통스러운 제재, 국제법 옹호 세력 자신에게도 고통스러운 제재를 통해 막을 수 없다면, 점점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는 전쟁을 계속 하기보다는 용인할 수 있는 타협을 모색해야 한다.

서방 동맹의 실수는 처음부터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의 목표를 의도적으로 러시아로부터 숨겼다는 것이다

타협에 대한 반발은 분명히 일어날 것이다. 현재로서는 푸틴이 협상을 할 의사가 있다는 징후가 전혀 없으니, 군사적인 수단을 써서라도 푸틴이 입장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것이다. 더군다나 푸틴은 우크라이나 동부의 돈바스 지역을 병합해 의미 있는 협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우크라이나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우크라이나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을 굳혔기 때문이다.

반면 돈바스 지역의 병합이 (오판일 수는 있지만) 서방이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 지원의 목표를 일부러 숨기는 실수를 저지른 것에 대한 대응일 가능성도 있다. 서방이 러시아의 정권 교체라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푸틴이 생각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서방이 처음부터 2022년 2월 23일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라고 명시했다면 협상으로 가는 길이 열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양측은 타협의 여지가 없는 야심찬 말뚝을 땅에 박음으로써 서로를 낙담시키고 싶어 했다.

현재 상황이 유망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망적인 것도 아니다. 전쟁이 날마다 앗아가는 인간 생명과는 별개로, 대체 불가능한 물질적 자원의 비용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다. 게다가 바이든 정권에게도 시간이 많지 않다. 이 생각 하나만으로도 협상을 시작하고 러시아가 전쟁 이후에 확보한 영토를 포기하고도 체면을 지킬 수 있는 타협안을 찾기 위한 적극적인 시도를 촉구해야 한다.

숄츠 독일 총리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의 서방 정상이 푸틴과 전화 연락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이 문제에 관해 합의에 이르지 못한) 미국은 전쟁과 관련이 없는 제3자로서의 공식적인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의 개입 없이는 광범위한 합의 속에서 설득력 있는 협상 결과를 도출할 수도 없다. 양측 모두의 이해관계상 그렇다. 서방이 우크라이나에게 제공해야 할 안보 보장도 그렇지만, 권위주의 정권의 전복도 그 나라 국민이 추진해 내부의 지지를 받고 있을 때에는 신뢰하고 있고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러시아는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위한 안보 보장 조치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서방은 러시아의 체제 전복은 불가능함을 인정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쟁 당사자의 분쟁 내용을 넘어, 중⋅동유럽 지역 전체를 규제할 절박한 필요성에 집중했다. 독일 베를린 소재 국제안보연구소의 동유럽 전문가인 한스-헤닝 슈레더가 2023년 1월 24일자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에서 전쟁 당사국 간에 안정적인 합의의 필수 요건인 군축과 경제적 틀의 조건을 얘기했다. 푸틴은 미국이 이를 논의할 지정학적 협상에 나선다는 사실 자체를 자기 덕으로 돌릴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더 넓은 이해관계의 네트워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지금은 정반대의 입장에서 대립하고 있는 양측의 체면을 살려줄 타협안을 찾아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부터 배제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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