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정권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단극적 세계 질서를 붙들고 있다

다극화된 세계 ⓒ사진=뉴시스

편집자주

지난 몇 년 간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국제사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많이 변했다. 팬데믹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미국과 유럽에 대한 환상이 많이 깨졌고, 군사대국이라 믿었던 러시아에 대한 환상도 깨졌다. 그리고 러시아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 서방 이외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미국의 단일 헤게모니가 지배하는 세계 질서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물론 미국의 바이든 정권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미국이 돌아왔다'는 선언과 함께 미국이 다시 민주주의의 세계적 수호자 역할을 자처하며 '가치'에 기반을 둔 외교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당 정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급속히 다극화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서방 학자, 전문가, 언론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미국 주류의 이해를 대변하는 이들이 다극화를 인정하는 이유, 단일 헤게모니를 복구하려는 세력을 다독이며 변화를 촉구하는 논지를 잘 보여주는 스티븐 월트의 포린폴리시 칼럼을 소개한다. 스티븐 월트(68)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로 꼽힌다.  

원문:  America Is Too Scared of the Multipolar World

미국이 냉전의 암흑에서 소위 단극의 순간이라는 빛을 맞이했지만, 지금은 여러 학자, 전문가 및 세계 지도자들이 다극적 세계 질서로의 복귀를 예측하거나 열망하며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인도나 브라질 등의 신흥 강대국은 오랫동안 더 다극적인 세계 질서에 대한 열망을 비쳐왔다. 이는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지금 미국의 주요 동맹국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미국 일방주의의 ‘부인할 수 없는 위험’을 경고했고, 위베르 베드린 전 프랑스 외무장관은 “미래의 세계 질서를 다극화하는 것이 프랑스 외교 정책의 전부”라고 못박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유럽 통합과 전략적 자율성을 지지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미국은 동의하지 않는다. 미국은 세계 최강 권력에서 오는 수많은 기회와 만족스러운 지위를 선호하고, 도전받지 않는 우위의 위치를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1991년에 조지 H.W. 부시 정권은 세계적으로 경쟁자의 출현을 방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자는 국방 지침 문서를 준비했고, 이후 공화당과 민주당이 발행한 여러 국가안보전략 문서들은 경쟁 강대국의 등장을 인정하면서도 미국의 우위를 유지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저명한 미국 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부는 미국의 우위가 ‘자유 미래에 필수적’이라며 미국과 세계 모두에게 유익하다고 주장했다. 자 자신도 2005년에 ‘미국의 대전략의 중심 목표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절대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얘기하며 그런 입장을 취했다.

조 바이든 정권은 세상이 여러 강대국의 세계로 돌아갔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미국에게 경쟁 상대가 없었던 짧았던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리더십’을 열심히 외치고, 군사적 패배를 안겨줘 러시아가 앞으로 문제를 일으킬 수 없을 정도로 약화시키려 하고 있으며, 미국 반도체 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중국이 핵심 기술을 얻는 것을 막는 등 중국의 부상을 억누르려 하는 것이다.

(그런다는 보장은 없지만) 미국의 이런 노력이 성공하더라도 단일 강대국이 있는 단극적인 세계 질서를 회복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앞으로는 1)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양극화된 세계 질서, 또는 2) 가진 힘은 각각 다르지만 여전히 중요한 강대국으로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를 중심으로 브라질이나 재무장화된 일본과 독일의 합류도 가능한 다극화한 세계 질서가 등장할 것이다.

그런 세계는 어떤 모습을 띨까? 국제관계 이론가들은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한스 모겐소와 같은 고전적 현실주의자는 위험한 침략자와 전쟁을 막을 수 있도록 국가들이 동맹을 새로 맺기 때문에 다극체제에서 전쟁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믿는다. 그들에게는 시시각각으로 새로운 동맹이 등장할 수 있는 세계 질서의 유연성은 미덕이다.

케네스 월츠나 존 미어샤이머와 같은 구조적 현실주의자는 의견이 정반대다. 그들은 오판 가능성의 위험이 줄어드는 양극체제가 더 안정적이라고 믿는다. 두 강대국은 상대가 현 상태를 정말 바꿀만한 어떤 시도도 자동적으로 반대할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두 강대국은 동맹국의 지지에게 덜 의존적이기 때문에 필요할 때는 동맹국에게 말을 듣게 만들 수 있다. 구조적 현실주의자에게는 다극체제에 내재된 유연성 때문에 더 큰 불확실성이 만들어지고, 수정주의 국가의 현상타파 세력이 다른 국가가 자기를 막기 위해 힘을 합치기 전에 현 상태를 바꿀 수 있다고 믿을 가능성이 커진다.

미래 세계 질서가 다극체제이고, 그런 체제에서 전쟁 가능성이 더 높다면 걱정할 이유가 있다. 그러나 미국이 이를 인식하고 외교정책을 적절하게 조정하면 다극체제가 미국에게 그렇게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우선, 다극체제가 미국과 특히 최근 수십 년 간 미국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은 불행한 국가들에게 그다지 좋지 않았다. 단극체제 아래 9·11 테러,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궁극적으로 실패한 미국의 침공, 국가기능의 마비로 이어진 몇 번의 정권 전복, 부분적으로는 미국이 촉발한 점점 더 야심찬 중국의 부상 등이 이뤄졌다. 그러나 미국이 워싱턴의 냉전 승리를 낭비하고 단극체제의 종식을 앞당신 전략가들의 말을 여전히 듣고 있는 걸 보면, 미국은 그 경험에서 많은 것을 배우지 못했다. 단극 강대국의 행동을 제한할 만한 것은 자제하는 것뿐인데, 자제는 미국과 같은 성전을 벌이는 국가가 잘 하는 것이 아니다.

다극체제가 부활하면 국력 수준이 다양한 여러 유라시아 강대국이 있는 세계가 재등장할 것이다. 이들 강대국은 특히 지리적으로 가까울 경우 서로를 조심스럽게 주시할 것이다. 그럴 경우 미국에게는 필요에 따라 다양한 동맹을 맺을 유연성을 줄 수 있다. 2차 대전 때 스탈린의 소련과 동맹을 맺고, 냉전 때 마오의 중국과 관계를 개선했던 것처럼 말이다.

적절한 동맹을 고를 수 있는 것은 미국의 외교정책 성공의 비법이었다. 서방의 유일한 강대국이라는 지위로 미국은 다른 강대국과는 다르게 무상 안보를 제공할 능력을 갖게 됐고,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미국은 다른 국가에게 아주 매력 있는 동맹 후보가 됐다. 내가 1980년대에 지적했듯, “유럽과 아시아의 중견국에게 미국은 완벽한 동맹 상대이다. 미국은 총체적인 힘이 워낙 커서 목소리도 크고, 자국에 영향을 미칠만한 행동을 하겠지만, 자국에게 중대한 위협이 되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떨어져 있다.

다극화한 세계에서 다른 주요 강대국은 점차 자기 안보에 대해 더 큰 책은 떠맡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미국의 글로벌 부담은 줄어들 것이다. 인도는 경제가 성장하면서 군비 증강도 추진하고 있고, 평화주의였던 일본도 2027년까지 국방비 지출을 두 배로 늘린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지역적 군비 경쟁은 고유한 리스크를 안고 있고, 군비 경쟁 중인 국가의 일부가 결국은 위험하거나 도발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미국도 최근 수십 년 동안 중동, 유럽, 심지어 아시아에서 질서 유지에 성공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지역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면 미국이 권력을 가지고 있었을 때보다 상황이 나빠진다고 100% 확신할 수 있겠는가? 또, 설혹 상황이 나빠진다 해도 그것이 미국 국민에게 문제가 될까?

다극화한 세계 질서가 단점이 있더라도 이를 막으려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고,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겪을 수도 있지만, 광대한 크기, 핵무기, 풍부한 천연 자원 때문에 러시아아는 전쟁의 결과에 상관없이 강대국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 수출 통제와 내부 ㅜ문제로 부상이 둔화될 수 있고, 상대적 힘이 10년 내에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감소할 수는 있지만, 중국 또한 여전히 주요 국가로 남을 것이며, 군사력은 계속해서 커질 것이다. 일본은 여전히 세계 3위 경제대국이고, 재무장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원한다면 빠른 시일 내에 핵무기를 보유할 수도 있다. 인도의 궤적은 예측하기가 좀 더 어렵지만, 앞으로 과거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은 거의 확실하다. 미국은 이것을 막을 의지도, 능력도 없다. 미국은 시계를 되돌리려는 헛된 노력을을 하는 대신 다극화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힘이 제각각인 여러 주요 국가가 있는 세계가 등장할 경우 미국이 군사력과 강압에 의존하려는 본능에서 벗어나 진심어린 외교에 더 많은 비중을 두게 되는 것이 이상적일 것이다. 세계 유일의 강대국이었던 동안 미국은 요구, 최후통첩, 제재, 무력을 쓰겠다는 위협에 의존하다가 이런 완곡한 강압 조치가 효과 없으면 충격, 공포 및 정권 전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실망으로 점철해 왔다.

다극화한 세계에서는 아무리 강력한 강대국이어도 다른 국가가 원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상호이익에 맞는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일부 국가를 설득하려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미국은 ‘싫으면 그만둬라’라는 식으로 교섭의 여지도 없던 태도를 버리고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가 이뤄지는 더 세심한 접근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주먹에 주로 의존한다면 다른 국가는 점점 미국과 거리를 두려고 할 것이고, 최악의 경우 반대편에 줄을 서기 시작할 것이다.

물론 다극화 질서가 미국에게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강대국이 경쟁하는 세계에서 약소국은 서로의 장단점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몇몇 약소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작아질 가능성이 있다. 또 다극화한 질서가 세계 전체에도 심각한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라시아에서의 경쟁으로 오판과 전쟁의 가능성이 1945년 이전처럼 커질 수 있고, 기술발전으로 인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판단도 나오는 시대에 더 많은 국가가 핵무기 개발에 착수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다극화 세계 질서 속에서 여전히 1 순위를 유지한다면 미국 지도자들도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미국은 다른 강대국이 서로 경쟁하게 만들 수 있는 이상적인 상황에 처할 것이고, 유라시아의 파트너들에게 자기 안보에 대한 부담을 더 많이 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이상주의적인 수사로 현실주의적인 성향을 숨겨왔지만, 과거에는 세력의 균형 정치를 꽤 잘 했다. 다극화한 세계가 도래하면 선조가 그것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하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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