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최고 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측근인 알리 샴카니 최고국가안보회의(NSC) 의장이 16일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한다. 사진은 지난 11일 중국 베이징에서 무사드 빈 무함마드 알아이반 사우디이라비아 국가안보 보좌관(왼쪽)이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을 가운데 두고 샴카니 의장(오른쪽)과 악수하는 모습. 2023.03.16 ⓒ사진=뉴시스
편집자주
중동 질서를 좌우하는 두 앙숙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10일(현지시각) 외교관계를 복원하고 2개월 안에 양국 대사관을 다시 여는 등의 내용을 담은 관계 정상화 안을 깜짝 발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란과 사우디는 6~10일 비밀 회담을 통해 국교를 정상화하기로 하고, 양국의 합의가 “주권을 존중하고 국내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포함한다”고 밝히고, 과거 체결한 안보협력협정과 무역·경제·투자에 관한 협정도 되살리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세계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이 합의를 중재한 것이 중국이었다는 점, 그리고 협상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이 확정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열린 베이징에서 이뤄졌다는 점이었다. 중동 아랍 국가와의 관계가 예전만 못한 미국은 공식적으로 무심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속으로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바이든의 공개적인 요청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원유 생산량을 줄였던 사우디가 다시 한 번 미국의 뺨을 때린 격이라는 것이다. 이번 합의가 중국과 미국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짚어보는 폴리티코의 기사를 소개한다.
중국의 중재로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7년 만에 국교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하자 중동의 패러다임 전환과 심지어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의 부상에 대한 얘기가 여기저기서 숨 가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볼 거 없다’는 반응이다. 미국이 공식 발표한 짤막한 성명들은 이번 일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고 있다. 자세한 입장을 묻는 언론인들에게 정부 인사들은 ‘예외적인 일이다’, ‘중국이 두 국가를 중재한 것은 자기의 경제적 이익 때문일 뿐이다’, ‘이번 합의가 장기적인 동맹으로 이어지지지 않을 것이다’, ‘중동 지역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 등의 주장을 한다.
미국이 이렇게 무심한 듯 대응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이든 정권이 ‘규범에 기반한 세계 질서’를 위협하는 중국에 맞선다며 파트너 국가 및 동맹국과의 연대를 강화하려는 시점에서 중국이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잠식한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다. 한 미국 고위 관리는 중국이 사우디와 이란의 국교정상화를 중재했다는 금요일 발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는 중동의 긴장완화를 바라고, 그것을 위해 노력해 왔다. 이것을 해낸 것이 중국이었다는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4명의 다른 관리들 역시 비슷한 발언으로 이번 협상의 중요성을 축소했다.
미국 관리들의 두 번째 반응 전략은 최근의 군사합동훈련, 미국 외교관들의 중동 방문, 3월 초에 이뤄진 바이든과 오만 술탄과의 전화 통화 등을 지적하며 미국이 여전히 중동에 매우 밀접하게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미중 냉전에 대한 얘기가 늘어나고 있음을 감안할 때, 미국이 패닉에 빠졌다는 인식을 피하려는 것이 이해된다. 미국이 약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글로벌 에너지 공급의 중심이기도 한 중동의 안정은 미국과 중국 모두의 국익에 부합한다. 미국은 안보에, 중국은 경제에 관심이 더 많지만 말이다. 오바마 정권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중국 담당관을 지낸 라이언 하스는 “미국이 흥분해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큰 그림을 보면, 미국과 중국은 중동과 관련해 근본적인 갈등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미국과 중국이 경제나 다른 분야에서 경쟁하고 있다는 바이든의 주장과 배치된다. 바이든은 갈등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도록 압박을 가하고 있다.
중국은 사우디-이란 협상에 자국의 이해관계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이번의 성공적인 중재에 탄력 받아 중국이 올해 말에 걸프만의 GCC 6개국과 이란의 정상회의를 주최한다고 한다. 그리고 시진핑 중국 주석이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난 후 다음 주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얘기를 나줄 예정이다. 여기서 시진핑은 최근 발표한 중국의 종전 제안 수용을 촉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합의에 따라 사우디와 이란은 7년 전에 단절된 외교 관계를 복원하고, 2달 내에 서로의 대사관을 다시 열기로 했으며, 중동 지역 전반에서 서로의 국익을 직⋅간접적으로 공격하는 일을 줄이기 위해 안보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미국은 특히 (휴전 중이기는 하지만) 사우디와 이란이 대리전을 벌이고 있는 예멘의 상황이 나아지기를 바라고 있다.
전 NSC 중동 담당 선임국장 마이클 싱은 베이징 이니셔티브 때문에 바이든 정권의 분열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는 “한쪽은 중동의 긴장완화가 미국에게도 좋은 일이다. 중국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일시적인 일일 뿐”이라고 할 것이고, 다른 쪽은 “걸프만 국가들을 포기하자. 그들이 중국의 편에 서지는 않더라도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안보 합의를 들고 그들을 쫓아다닐 가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내다 봤다. 싱은 그래도 미국이 패닉에 빠질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사우디-이란의 긴장완화만 보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번 일은 세계적인 영향력 확대를 꾀하는 중국에게 틀림없는 분수령이다. 중국은 불안정성이 지배하는 미국 주도의 국제체제를 대신할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중국이 중동에서 의미 있는 움직임을 보인 것은 미국에게 눈엣가시이겠지만, 이번 경우는 중국이 미국에 비해 몇 가지 이점이 있었다. 최근 들어 인권, 원유 생산량 등의 문제로 미국과 사우디의 사이가 좋지 않고, 중국은 미국과 달리 이란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어 이란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 어쨌든 (미국의 지지 아래) 지난 몇 년 동안 사우디가 이란과의 긴장완화를 추진하고 있던 와중에 중국이 이 일을 마무리하게 된 것이다.
일부 관측통들은 미국이 이란의 핵개발 계획에 대한 세계적인 우려와 이란의 약속 불이행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장기적인 시각으로 때를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란이 분명히 약속을 위반하면 중국이 사우디의 안보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사우디와 미국의 안보 협력 필요성이 더 부각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몇몇 미국 관리는 이번 합의가 이란,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사우디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우디는 이란이 배후에 있을지도 모르는 2019년 사우디 석유시설에 대한 공습 이후 이란과의 긴장완화를 위한 노력을 가속화했기 때문에 이란의 압력에 굴복한다는 인상을 주고, 러시아에 대한 무기 공급을 고려 중인 중국에게 마지막 협상의 중재를 맡겼기 때문에 미국이 이끄는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을 위협하는 권위주의 국가들과 사우디가 더 친해지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우디가 악의 축과 가까워지면서, 실제적인 이득은 챙기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 국가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란과 핵 협상을 했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군사적 지원에 소극적인 것처럼 보였다며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을 믿을 수 없다고 불평해 왔다. 이에 대해 미국 관리들은 중동 국가들이 늘 더 적은 조건으로 더 빨리 더 많은 안보 보장과 첨단 무기들을 얻으려 하는데다가, 걸프만 아랍 국가의 군 시스템이 미국 모델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동일한 수준의 무기를 얻을 수 없다며 이런 불평은 일축했다.
이번 합의가 가져온 실제적인 이익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중동에서 중국에게 밀렸다는 목소리가 미국에서 나오는 것은 중국이 미국의 ‘냉전적 사고방식’을 또다시 비판할 수 있는 빌미가 될 수 있다. 로버트 포드 전 시리아 주재 미국 대사는 ‘적의 득은 우리의 실‘이라는 제로섬 사고방식이라며 중국이 이란-사우디 긴장완화에 성공했다고 해서 걸프만 국가들이 미국을 쫓아내는 것은 아니라고, 아니, 오히려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카타르는 여전히 미국과의 군사적 관계를 유지하기를 강력히 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다른 관리들은 미국이 외교적인 유지·보수에 나설 필요는 있다는 의견이다. 로버트 조르단 전 사우디 주재 미국 대사가 지적한대로 2021년 바이든 정권이 들어선 후 사우디 주재 미국 대사 자리는 계속 공석으로 남아있을 정도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