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경협 사업을 하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IT 사업가 김호 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고 무죄가 선고됐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로 확정 판결이 되길 기대한다.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이원범·한기수·남우현)는 23일 국가보안법 위반(자진지원, 금품수수) 등 혐의로 기소된 IT 회사 대표 김호 씨에게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1심에서 징역 4년과 업무정지 4년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김 씨에 대한 판결이 뒤집힌 것이다. 함께 기소된 같은 회사 부회장 이 모 씨는 원심과 같이 무죄가 선고됐다.
김호씨는 2007년께부터 남북이 함께 안면인식 프로그램을 개발해 이를 세계에 영업하자는 포부를 갖고 경협 사업을 벌였다. 당시 상대적으로 앞선 북한의 안면인식 기술을 활용하자는 구상이었다. 김씨는 2002년부터 경협 사업을 해왔고, 2008년에는 통일부에 정식으로 북한주민접촉 허가를 받았다. 그가 북과 손잡고 만든 안면인식 기술은 사업성도 높았다.
그러나 2018년 뒤늦게 국정원은 김씨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했고, 김씨는 1심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국정원은 김씨가 들여온 북한 프로그램이 사이버 테러에 쓰여 국가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김씨가 북한 기술자와 주고받은 이메일을 통해 군사기밀이 누출됐다는 혐의도 씌웠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국정원이 주장한 사이버테러 위협은 프로그램에서 발견된 바이러스를 빌미로 강변한 것이고, 북한 기술자와 주고받은 이메일에 군사기밀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이 드러났다. 국정원이 이미 2008년부터 김씨의 사업 내용을 자세히 인지했으면서 10년이 지나서 문제 삼고 나온 의도도 불순하다.
2심 법원은 기소 내용에 대해 “명백히 위험한 행위로 판단하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국가보안법은 1조 2항에 “이 법 해석적용함에 있어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며, 이를 확대해석하거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못박고 있다. 그만큼 악용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법문 자체도 추상적일 뿐더러 국정원과 공안기관의 정치적 목적이 맞물려 수시로 공안사건이 조작, 과장되고 있다. 남북의 어떤 접촉, 대화, 협력도 권력의 입맛에 맞춰 국가보안법의 그물망에 갇힐 위험이 상존한다는 점을 김호씨 사건이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존립과 안전이 그렇게 허약하지도 않으며, 남북이 언제까지 대립과 대결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법 논리와 국민 상식에 맞는 항소심 판결이 확정되길 바라며, 상시적 흉기인 국가보안법의 폐지가 앞당겨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