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탈미국화, 과연 완성될 수 있을까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을 맞이하는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사진=뉴시스

편집자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은 지난 40년 동안 이슬람 세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서로 경쟁했다. 사우디가 수니파, 이란이 시아파 수장인데다가 이란이 성스러운 이슬람 세계를 지배하려는 사우디의 도덕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던 양국이 드디어 관계를 정상화했는데, 그 합의만큼이나 충격적인 것은 그 합의가 이뤄지고 발표된 국가였다. 그것이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었기 때문이다. (양국과 정치·경제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 외에는 서로 인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국가가 없었다고 한다).
이 일로 사우디, 나아가 중동 지역 전체가 미국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인지를 둘러싸고 전문가들이 열띤 논의를 벌이고 있다. 미국이 이스라엘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중동의 동맹국인 사우디로부터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사우디-미국 사이에 일어난 일련의 일을 살펴보면서 중동 및 아프리카 지역의 '탈미국화' 가능성을 타진한 웨즐리언 대학교 교수 알랑 가봉의 미들이스트아이 칼럼을 소개한다.    

원문: Saudi-Iran deal: Towards the de-Americanisation of the Middle East?

중국-사우디아라비아-이란의 3월 10일 외교적 합의에 대해 이슬람 전문가 무크테다르 칸 미국 델라웨어 교수는 최근 ‘이 돌파구가 사우디의 탈미국화’로 이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했다. 이것은 사우디뿐만 아니라 중동 및 북아프리카(MENA) 지역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현재 상황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이다.

사우디의 경우에는 이미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사우디가 미국과의 긴밀한 동맹관계를 청산하려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우디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년의 일련의 사건을 한번 살펴보자. 우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에 대해 사우디 왕세자 모하메드 빈살만을 세계적으로 ‘왕따’시킬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여 여러 번 공개적으로 다짐했다. 하지만 바이든이 빈살만을 방문했을 때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바이든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예의를 한껏 갖췄고, 빈살만과 주먹 인사를 하는 악명 높은 장면이 전 세계 카메라에 잡혔다.

7월 방문 기간 동안 바이든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러시아 제재로 인한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완화를 위해 석유 생산량을 늘려 달라고 빈살만에게 사실상 애걸했다. 그러나 빈살만은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정반대로 석유 생산량을 2% 줄여버렸다. 바이든은 다시 한 번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한 채 자기 능력 훨씬 밖의 일에 도전한 듯한 바보 같은 무력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바이든은 10월에 OPEC 회원국의 주권면책권을 해제하겠다는 위협과 함께 OPEC+가 석유 생산량을 줄일 경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빈살만에게 경고하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더군다나 러시아가 OPEC+ 회원국이기 때문에 빈살만은 사실상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 미국의 경제제재의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더 많은 원유 수익을 얻도록 도운 것이다.

마음이 점점 더 상한 바이든은 이후 계속 위협의 수위를 높여 나갔지만, 사우디는 (적대적이지는 않지만) 단호하고 강력한 보도 자료를 통해 항상 자국의 국익을 최우선시하고 미국을 비롯한 그 누구의 압력과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국의 굴욕적인 패배

바이든은 계속 자존심을 억누를 수 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3월 10일 베이징에서 사우디와 이란의 합의가 발표된 것이다. 이것이 미국에게 얼마나 굴욕적이고 큰 패배인지 충분히 강조되지 않았다.

첫째, 미국은 중국, 사우디, 이란의 3자 협상에서 분명히 제외됐고,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둘째, 칸 교수가 자기 팟캐스트에서 지적했듯, 이번 합의로 미국이 1979년 이란 혁명과 인질 위기 이후 애써 유지해 온 이란의 금수 조치가 더 무너지고 이란의 고립이 끝날 수도 있다. 이 사실을 더 아프게 하는 것은 그것을 끝낸 두 세력이 1)온갖 말과 무능하고 무모한 외교 정책으로 보여주듯 미국이 현재 제1의 적으로 삼고 있는 중국과 2)중동에서 이스라엘 다음으로 미국 최고의 동맹국이 사우디였다는 점이다.

셋째, 아직 거기에 도달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이 세계의 주된 평화 중개자로서 미국을 대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고, 그 무대는 미국의 뒷마당인 중동이었다. 넷째, 사우디-이란 합의가 중국 베이징에서 발표된 것은 중동마저 외교정책의 중심축을 서방에서 아시아로 이동시키는 세계적인 트렌드를 따르게 됐음을 상징하는 모양새다.

마지막으로 이번 합의는 홍보, 글로벌 이미지, 그리고 실제적인 소프트 파워의 관점에서 볼 때 미국에게 재앙 수준의 악재다. 중국이 평화 외교로 앙숙이던 사우디와 이란 사이의 돌파구를 마련하는데 성공한 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끝없이 이어진 미국의 해외 개입이 굉장히 잔인했고, 수많은 실패와 패배를 겪었음을 더 부각시킨다. 예상치 못한 세계적 평화 중개인으로 등장한 중국은 새로운 아우라를 갖게 됐고, 미국의 무능과 영향력 상실을 더욱 강조할 뿐이다.

평화를 만들어내는 중국

설상가상으로 중국은 이번 협상을 주도함으로써 평화, 데탕트, 국교정상화 및 긴장완화에 관심이 있고 이를 가져올 수 있는 국가라는 인식을 세계에 심어줬다. 중국은 기교, 끈기, 지략과 민첩성으로 이런 놀라운 외교적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음을 입증한 반면, 미국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속시키기 위해 무기를 쏟아 붓고, 미국이 선택한 끝없는 전쟁에 세계 전체를 끌어들이는 것뿐이다. (이런 영원한 전쟁은 애플파이만큼이나 ‘미국스러운’ 것이 돼 버렸다). 이제 중국은 멋진 평화주의자처럼 보이고, 미국은 전쟁광처럼 보일 뿐이다. (실제로 미국은 북미 원주민의 대량 학살부터 베트남과 이라크에 이르기까지 피로 얼룩진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미국의 공식적인 언사에서 세계가 두려워해야 할 문제로 늘 묘사된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중동이나 세계 다른 곳에서 누가 진짜 문제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시진핑의 최근 연설과 중국의 전략 문서는 이번 외교 작전이 중국을 주요 국제 브로커로 만들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의 시작일 뿐임을 분명히 한다. 시진핑의 최근 러시아 방문에서 볼 수 있듯 중국은 아프리카를 포함한 저개발 지역을 시작으로 현재 유럽과 우크라이나 전쟁에까지 그 영향력을 확장시키고 있다. 이번 방문에서 시진핑은 푸틴에게 “100년 동안 일어나지 않았던 변화가 현재 진행되고 있다”며 “우리가 이런 변화를 함께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은 장기적인 시각으로 이번 협상을 중재했고, 시진핑은 다른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나 자신의 서비스를 제공할 의향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미국의 통제에서 탈출하는 MENA 지역

‘사우디가 탈미국화를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MENA 지역 전체로 확대될 수 있다. 유럽연합(EU)을 제외한 나머지 세계와 마찬가지로 이들 국가는 마침내 미국의 통제와 지배에서 벗어나고 있다. 중동은 대체로 탈미국화 시대에 이미 접어들었다. 변동적, 현실주의적, 실용적, 유동적이며 근본적으로 개방적이고 필요에 따라 다양한 동맹을 맺을 수 있는 시대에 말이다.

MENA 지역의 탈미국화의 다음 단계에 대한 계획이 이미 수립돼 있고, 그 실행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예를 들어 사우디와 이란 모두 BRICS 그룹에 가입하기를 원하고 있고, 사우디는 이미 옵서버 국가로 참여 중인 상하이협력기구에 가입 신청을 했다.

그러나 ‘탈미국화’는 사우디와 다른 석유 생산국이 달러가 아닌 다른 통화로 거래할 때 완성될 것이다. 그것은 진정으로 혁명적인 일이 될 것이다. 중국 등의 설득으로 사우디는 이것을 이미 검토하고 있다. 미국이 세계 경제를 지배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달러가 세계 에너지 시장의 기축 통화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석유 생산국이 달러가 아닌 통화로 거래를 하면 그것은 핵폭발급 사건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시간문제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몇 년에 불과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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