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정민갑의 수요뮤직] 2023년 한국 록의 최전선, 이승윤의 두번째 정규음반 ‘꿈의 거처’

가수 이승윤 ⓒ마름모 제공

음악 평론을 퍽 오래 하고 있지만 음악 평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갈수록 모르겠다. 음악 평론의 기본은 음반 리뷰라고 생각하는데, 꾸준히 음반 리뷰를 쓰는 이들은 적다. 음반 리뷰를 찾아 읽는 이들도 소수다. 어쩌면 이제 음반 리뷰는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내놓은 음반을 평론가 역시 호평한다는 인증이 필요할 때만 유효한 게 아닌가 싶다.

사람들이 음악평론가에게 원하는 건 음반이 도달한 성취와 예술적·사회적 의미에 대한 상세한 평가가 아니라, 그 음반을 들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지 아닌지 별점 같은 방식으로 한 눈에 선별해주는 일이거나, 음반 수록곡 중에서 들어볼 만한 곡을 뽑아주는 DJ 역할처럼 보인다. 아쉽지만 라이프 스타일이 달라지고 음악 듣는 방식이 바뀌면 평론가에게 원하는 역할 역시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승윤의 정규 음반 [꿈의 거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개인 블로그에만 적어두는 음반 별점에는 별 넷을 매겼다. 별 다섯 개 만점 기준이니 별 네 개는 매우 높은 점수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이승윤의 팬들은 ‘역시 우리 이승윤은 평론가도 인정하는 뮤지션’이라며 흐뭇해할까. 그리고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승윤의 노래를 들었던 이들은 음반을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까. 이승윤의 노래를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던 이들조차 이승윤의 음반을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될까.

그렇게 마음먹는 이들은 극소수이고, 그렇다 해도 이 음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플레이할 사람은 드물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대부분 유튜브에서 인기 있는 영상 몇 개를 찾아보고 말 것이다.

이승윤의 이번 음반이 케이팝 아이돌의 음반처럼 화려한 이유는 이처럼 진짜 팬이 아니면 정규음반을 듣지 않기 때문일지 모른다. 록 뮤지션 중에서 박스세트에 음반을 담고 포토카드까지 만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이승윤의 방송 출연과 그 이후의 인기 덕분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승윤의 '꿈의 거처' ⓒ마름모 제공

하지만 음반에 담은 12곡의 음악은 음악과 평론만으로 돌파하기 힘든 무관심과 한정된 시간의 장벽을 뚫어보고 싶게 만든다. 그것이 이 음반을 듣고 별점 네 개를 준 이유이며, 많은 이들이 읽지 않을 게 뻔한 리뷰를 쓰는 이유이다. 이 음반은 TV에서 보았던 이승윤이 이승윤의 전부가 아니고, 이승윤이 얼마나 오랫동안 성실하게 음악을 해왔는지 증명하는 역작이다. 그의 곁에 얼마나 좋은 뮤지션들이 함께 있는지 증거하는 작품집이며, 그들이 이 음반을 위해 얼마나 혼신의 힘을 쏟아부었는지 깨닫게 하는 음반이다. 음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면 싱글 몇 개만 찾아 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인정할 것이다.

오래 전에 그의 전작을 들었지만, 그가 이렇게 용맹스럽고 화려한 정규음반을 내놓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꿈의 거처] 음반에서 이승윤은 LED 무빙 조명과 롱 핀을 비롯한 모든 조명을 한 몸에 받은 서커스 곡예사처럼 자신의 재능을 거침없이 뽐낸다. 자유롭고 역동적인 록커의 기운이 음반 내내 무한대로 펼쳐지는 음반이다. 밴드 연주와 신시사이저를 충분히 활용하면서 스트링 연주까지 더해 사운드 스케이프를 확장했기 때문이고, 그에 맞춰 이승윤의 보컬 레코딩에도 공간감을 극대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승윤이 그렇게 편곡하고 풀어낼 수 있는 곡을 쓸 수 없고, 드라마틱한 보컬의 스토리텔링을 감당할 수 있는 보컬이 아니었다면, 자신 안에 담대하고 자유로운 에너지를 축적하지 않았다면 완성해 낼 수 없었을 음반이다.

이승윤 2nd Full Length Album '꿈의 거처'

이번 음반을 관통하는 주제나 서사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이승윤은 쉽게 영웅을 만들었다 버리는 세태를 비판하기도 하고, 말의 부정적인 효과를 적시하기도 한다. 너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고백하고, 예술가의 자의식을 노래하는 곡도 있다. 최지인의 시를 노래로 만들기도 했다. 이승윤이 이만큼 다채로운 관심을 껴안고 살아간다는 이야기로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그의 삶, 예술가 정신, 감정을 아우르는 다종다기한 표현이 모두 이승윤의 현재를 구성한다.

이승윤은 이렇게 다른 이야기를 생동감 넘치는 편곡과 연주로 버무렸다. 업템포 곡이건 아니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음반은 소규모 라이브 클럽 버전의 이승윤 대신 스타디움 록커로서의 이승윤을 보여주는데 승부를 건 것처럼 들린다. 사실 음반을 끝까지 들었을 때, 조금 물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새로운 록스타의 출현을 만방에 떨치는 역할은 충분히 해낸다. 듣는 이를 단숨에 장악해 들뜨게 하고 끝까지 현란하게 밀어붙인다. 2023년 한국 록의 최전선 가운데 하나는 이승윤의 몫이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