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과 전쟁, 그리고 미·중간 갈등은 탈세계화 논쟁을 촉발했다. 이는 지난 40여 년 동안 경제통합을 위해 달려 온 세계경제가 보호 무역주의, 자국 우선주의, 동맹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등으로 인해 그 여정을 멈춘 듯 보이는 데에서 기인한다. 또한 이러한 탈세계화 경향이 특정 블록 중심의 경제체제로의 개편을 촉진함에 따라 한국경제는 그 특정 블록에 적극적으로 편입될 것을 강요받고 있기도 하다.
물론 탈세계화를 반박하는 주장도 있다. 지난 1월 다보스포럼에서 학자들은 현재의 탈세계화 주장은 미디어에서 만든 허상에 불과하며 무역과 서비스 부문에서의 세계화는 아직 정점이 아니라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세계화의 종말이 아닌 자본과 이민, 무역과 서비스 교역 등에서 그 양상만 바뀐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세계경제의 변화에 대한 논쟁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의 반도체 제조업체 울프스피드사를 방문해 일자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입법 성과를 홍보하기 위해 3주간의 ‘인베스팅 인 아메리카’ 투어를 시작했다. 2023.03.29. ⓒ민중의소리
경제통합의 추동력
1987년 일이다. 미 의회 일부의원들은 일본 기업이 주요 군수물자를 당시 소련에 불법적으로 제공했다는 폭로에 의사당 잔디밭에서 도시바 스테레오를 부수었다. 이른바 COCOM(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의 통제품목을 해당국가에 수출하려면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어겼다는 것이다.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수출통제는 이후 유럽의 성장과 동맹국 간의 균열, 무엇보다 그 냉전시대의 종말과 함께 좀 더 유연한 것으로 대체되었지만 국가의 무역통제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가끔 회자되곤 했다. 그리고 지난 40여 년 동안 상품, 자본이동의 자유화 및 경제통합, 글로벌 사회경제질서의 수렴현상을 말하는 세계화는 우리를 지배해왔다.
그런데 이러한 수출통제가 최근 다시 살아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대 중국 기술수출제한이 그것이다. 또한 반도체 등 핵심부품 생산과 공급에 있어서 동맹국 중심의 새로운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다. IMF는 이러한 현상을 지정학적·경제적 분절(geoeconomic fragmentation)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어떤 동기로 그간의 무역, 자본, 지급결제, 국제협력 등에서의 경제통합의 흐름이 일국 단위 혹은 지역블록 단위로 나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동기는 선호나 기술의 변화로 인한 것이 아닌 안보, 일국의 독립성 확보, 경쟁국 견제 등을 목표로 하는 정책이다.
그런데 이는 만약 이러한 정책적, 전략적 동기가 사라진다면 경제는 다시 통합의 길로 가리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반도체 생산네트워크의 분절화가 가져올 비용상승과 비효율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역사적으로 경제적 통합은 빨라지다 느려지기를 반복하였고 위의 COCOM의 예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이러한 인위적 통제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 역사적 경험이다.
<그림1> 무역개방, 1870~2021년(수출입 합계, GDP 대비 백분율) ⓒAiyar, Shekhar, Ilyina, Anna, and others (2023)(1)
누구를 위한 (탈)세계화인가
그렇다면 경제통합은 거스를 수 없는 큰 흐름인가. 그렇지는 않다. 앞서 언급한 정책적 필요가 충분하다면 그 속도와 방향은 제어될 수 있다. 정작 세계화의 종말 논쟁에서 우리가 놓치는 것은 과연 (탈)세계화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세계화 논쟁에서 노동자들은 중심에 있지 않았다. 빨라지거나 느려지고 전략적, 정책적 고려 속에서 분절화되기도 하던 경제적 흐름 속에서 노동자들은 자본에 비해 이동과 전환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유로 세계화를 반대하는 세력으로서, 그리고 그것의 피해자로서만 존재하였다.
역사가 니콜라 들라랑드(Nicolas Delalande)는 최근 그의 책 ‘Struggle and Mutual Aid: The Age of Worker Solidarity’에서 현재 세계화에 관한 논쟁은 노동자계급의 반세계화 경향만을 전제하고 있다고 문제 제기하고 19세기 중반 International Workingmen's Association부터 이어져 온 노동자들의 연대의 역사를 다시 돌아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반목과 분열의 역사로 알려져 온 과거에서 우리는 세계화를 반대하기는커녕 환영하며 다만 그것을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을 위한 연대와 세계화를 주장한 이들의 노력을 지금 시점에서 새겨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탈)세계화를 할 것인가를 다시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2021년 미국에서 약 2천만 명의 노동자들이 직장을 떠나는 대퇴직(Great Resignaion)과 임금상승, 그리고 파업은 그것의 의미와 지속성에 많은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힘과 지위에 대해 새롭게 자각하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팬데믹 기간 동안 일선 보건노동자들의 헌신은 사회에서 그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어떤 학자는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힘의 추가 자본에서 노동으로 기울었다고 진단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자각과 계기가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진정한 (탈)세계화를 위한 연대와 노력의 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주1)Aiyar, Shekhar, Ilyina, Anna, and others (2023). Geoeconomic Fragmentation, and the Future of Multilateralism. Staff Discussion Note SDN/2023/001. International Monetary Fund, Washington, DC.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