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4일 방미길에 오른다. 12년만의 국빈 방문이라니 화려한 의전과 행사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조야에서 발언할 기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실익은 이렇다할 것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미국 방문에 앞서 내놓은 대러시아, 대중국 정책은 노태우 정부 이래 30년간 유지되어 온 4강 외교의 근간을 흔들었다.
민주화와 탈냉전 이후 현재의 여야 정당은 여러 차례 정권을 주고 받았지만 외교정책은 대동소이했다. 미국과는 동맹을, 일본·중국·러시아와는 협력 관계를 유지한다는 정책이 그것이었다. 노태우 정부가 북방정책을 시작한 이후, 우리는 지난 30년간 비교적 순조로운 경제·안보 환경을 유지해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대외 정책은 그 맥락을 알기 어려울 정도다. 윤 대통령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갑자기 러시아와 중국을 노골적으로 자극했다. 각각이 가장 핵심적인 현안으로 인식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대만 문제를 들어 불화를 자초했는데, 그리 해야할 어떤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윤 대통령은 자유·민주적 가치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애초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이나 우리의 4강외교는 중국·러시아와의 이념적 공감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지금와서 돌연 '가치'를 앞세우는 이유를 한 번도 설명하지 않았다.
굳이 윤 대통령의 '돌변'을 설명하자면 역시 미국의 이해관계를 감안해야 한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이후 중국, 러시아와의 대결 정책으로 전환해 자신의 동맹을 '다지고' 있다. 윤 대통령의 변화 역시 이에 따른 것일 터이다. 이번 방미에서 핵심 현안이 되고 있는 한미일 삼각동맹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 동안 미국과는 군사동맹을 이어오면서도 일본과는 거리를 두어왔다. 그러나 미국은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하나로 합쳐 '아시아판 나토'를 구축하려 한다. 윤 대통령의 방미가 이런 움직임에 모멘텀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문제는 중국과 러시아에 북한을 포함한 북방 3각을 적대하는 아시아판 나토는 우리 국익과 충돌한다는 점이다. 노태우 정부가 북방정책을 시작할 때 미국은 세계의 유일 패권국이었고, 중국과 러시아는 체제전환에 몸살을 앓는 처지였다. 그러나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는 4강외교를 필요로 했고, 그 결과 역시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을 포함해 다극체제의 출현을 전망하는 견해가 많다. 미국에 '올인'해야 할 이유는 도리어 줄어들었다.
당장의 경제적, 안보적 실익만 따져도 그렇다. 중국과 러시아를 적대하는 것은 현재의 경기침체를 가속화할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 역시 더욱 어려워질 게 뻔하다. 윤석열 정부는 '확장억제'에 '실효적 강화'나 '획기적 혹은 추가적'같은 수식어를 붙이고 있는데, 실제에선 냉전 시대의 핵우산 정책과 크게 다른 것이 없다. 바뀌는 것도 없는데, 그럴듯한 말을 덧붙여 이해하기 어려운 정책 전환을 합리화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중·러와 불화하며 미국과 일본에 올인하는 정부의 외교 정책은 국익에 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