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국 경제의 미래를 저당 잡힌 한미정상회담

현지시간 26일 한미 정상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경제분야에서는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에 대해서 어떤 언급이 나올지가 관심사였다. 미국이 자국중심주의를 강화하는 가운데 우리 이해관계를 얼마나 챙길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지만 우려는 고스란히 현실화됐다.

공동성명은 “양 정상은 동 법이 기업활동에 있어 예측 가능성이 있는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상호 호혜적인 미국 내 기업 투자를 독려하도록 보장하기 위하여 긴밀한 협의를 계속해 나가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상호 간의 투자 활성화도 아니고 ‘미국 내’ 투자다. ‘미국 내 투자’를 미국 정부가 독려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고 한국 정부도 독려한다는 일방적인 내용에 붙여놓은 상호 호혜적이라는 수사가 생뚱맞아 보일 정도다.

IRA로 보조금 지급대상에서 차별 받게 된 한국 완성차 기업은 그동안 보조금 대상에 포함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결과적으로 무산됐다. 미국과 FTA를 체결했거나 안 했거나 동맹국 대부분이 보조금 대상에서 빠진 가운데 다른 산업분야에서 FTA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한국의 피해는 그만큼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공동성명에는 “최첨단 반도체, 첨단 패키징, 첨단 소재분야 연구개발 협력 기회를 식별해 나가기로 했다”는 대목도 들어있다. 반도체법의 독소조항인 ‘생산 기술 정보 공유’를 양국 정상이 확인한 것으로 들리는 대목이다. 미국 반도체법은 한국 반도체 기업이 미국 보조금을 받을 경우 국가안보기관의 접근을 허용하도록 하고 있으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기밀인 생산시설을 내보여줘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기술유출 우려를 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기정사실로 만들어 줬다.

“국가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성을 인식하면서, 양국의 해외투자 심사·수출통제 당국 간 협력 심화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는 대목도 있다. 미국의 관심사인 중국에 대한 반도체 봉쇄를 위해서 한국 반도체 기업의 중국 투자에 대해 족쇄를 채우겠다는 뜻이다. 미국은 자기 이해관계를 100% 실현하는 것이고 중국 수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한국은 일방적인 희생을 감내하는 합의를 하면서 반대급부조차 없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반도체 분야의 기업정보 제공 등 보조금 지급 세부 조건에 대해서 “미국 상무부가 이행 과정에서 유연성을 발휘할 의향을 이미 표명했다”고 말했다. 얼마나 어떻게 유연성을 발휘할지 정상 간에 합의한 것이 아니라 미국 상무부가 잘 봐주기를 바란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치른 비용은 성대한 환영행사밖에 없다. 한국이 앞으로 치러야 할 대가는 한국 경제의 미래다. 대부분 수사에 그친 다른 분야 경제협력 방안에 비해서 우리가 내어주는 반도체와 전기차 분야의 피해는 구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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