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노동자는 대화 상대 아님’을 행동으로 보여준 윤석열 정부

 최근 경찰이 소속 불문, 분야 불문 노동자들에게 물리적으로 강경 대응하며 압박하는 모습을 보여줘 주목된다. 지난달 23일 윤 대통령이 민주노총 건설노조 1박 2일 투쟁을 ‘공공질서를 무너뜨린 불법 집회·시위’로 규정하고 “경찰과 관계 공무원들은 불법 행위에 엄정한 법 집행을 해줄 것을 당부한다”고 강조한 이후부터 시작된 흐름이다. 취임 1년 만에 이럴 줄은 상상도 못했다. 경찰이 집회하는 노동자들에게 캡사이신을 겨누며 곤봉을 휘두를 줄 말이다.


지난 5월 31일 오전 6시 전남 광양제철소 앞 철탑에서 포스코 하청업체 ‘포운’(옛 성암산업) 노동자들의 노동 3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하던 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이 사다리차를 동원한 경찰에 폭력적으로 연행됐다. 김 처장은 농성 3일째였고, 혼자 7m 높이 철탑에 올라가 있었을 뿐이었다. 통행을 가로막거나 누구를 위협한 것도 아니었는데, 경찰은 그를 힘으로 제압한 뒤 강제 연행했다. 김 사무처장은 경찰 곤봉에 맞아 머리에서 새빨간 피를 흘리며 끌려 내려왔다.

경찰의 폭력 진압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처장. ⓒ한국노총 이지현 대변인


이후 그는 경찰서로 이송됐다 병원으로 옮겨져 머리를 세 바늘 꼬맸다. 그리고 팔과 다리가 퉁퉁 부었는데도 병원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2일 김 사무처장은 경찰의 진압 방해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로 구속됐다.

그 전날엔 같은 이유로 광양제철소 앞에서 천막농성 중이던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이 강제 연행됐다. 금속노련에 따르면, 당시엔 경찰관 6~7명이 위원장을 둘러싼 채 머리를 바닥으로 짓누르고 무릎으로 목을 누른 후 뒷수갑을 채워 연행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금속노련 소속 ‘포운’ 노조가 임금협상과 부당노동행위 중단을 요구하며 지난해 4월부터 해당 장소에서 400일 넘게 천막 농성중인 것을 보다 못해 힘을 보태러 농성에 합류했다가, 상상치도 못한 경찰 폭력을 경험하게 됐다.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조합원들이 3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열린 노동개악·노조파괴 분쇄! 윤석열 정권 퇴진! 금속노조 총파업대회에서 윤석열 정권 퇴진 손피켓을 들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캡사이신을 메고 있다. 2023.05.31 ⓒ민중의소리

이것뿐일까. 지난달 31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민주노총이 ‘노동, 민생, 민주, 평화 파괴 윤석열 정권 퇴진’ 총력투쟁대회를 열자 대규모 경비 경찰이 주위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에워쌌다. 모자를 눌러쓰고 검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경찰들은 등에 캡사이신 통을 메고 집회하는 노동자들을 내내 지켜봤다. 경찰이 집회 현장에 캡사이신과 같은 최루제를 들고나온 건 6년만의 일이었다.

또 이날 저녁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 노조 탄압에 항거하며 스스로 세상을 등진 고 양회동 강원건설지부 지대장의 추모문화제를 열고 시민분향소를 세우려 할 때도 경찰은 강경대응했다. 경비 경력을 대거 동원해 천막을 빼앗고 반항하는 노동자 4명을 연행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 3명이 다쳐 병원에 실려갔다.

경찰은 노동자들이 소속된 노조의 상급단체가 한국노총인지, 민주노총인지도 상관없었고, 중공업 현장의 노동자인지 건설 현장의 노동자인지도 상관없었다. 이들이 노조 이름 아래 모여, 목소리를 내기만 하면 엄히 감시하고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세운 기준을 넘으면 압박하고 폭력으로 해산시켰다. 이게 1970년대나 80년대가 아니라 2020년대 한국의 상황이라는 것이 충격적인데, 앞으로도 이 같은 흐름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31일 양회동 지대장 시민 분향소 철거를 온 몸으로 막고 있다. ⓒ민주노총


현재 경찰청은 특진을 내걸고 일선 경찰들이 노동 관련 사건 수사, 집회 경비 시 강경 대처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지난달 31일엔 내부망에 ‘집회 시위 대응에 공적을 세운 경비 경찰 13명을 특별승진 시키겠다’고 공지했고, 1일엔 사측에게 수수료 인하 합의서 작성을 강요한 혐의가 있다며 화물연대 노조간부 9명을 검거한 경찰을 1계급 특진시켰다. 이렇게 조직 분위기를 만들어 가면, 아무래도 일선 경찰들은 그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경찰은 앞세운 정부의 행보는 노동자들을 대화상대로 보지 않는다는 인식의 반영일 것이다. 어느 누구도 얼굴 마주 보고 대화해 협조를 구해야 할 상대에게, 곤봉을 휘두르거나 캡사이신을 겨냥하지는 않는다.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희박해지면, 노동자들은 저항하며 전면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실제 민주노총은 지난 달 31일 총력투쟁 집회에서 ‘윤석열 정권 퇴진’을 천명했다. 한국노총도 금속노련 간부들의 사건 이후 정부와의 대화 중단 및 정권 심판 투쟁을 예고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5월 3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과잉진압을 규탄하며 “윤석열 정권의 폭력 연행과 진압을 보며 정권이 노동계와 대화할 생각도, 의지도 없음을 분명히 확인했다”라며 “이 시간 이후 윤석열 정권 심판 투쟁을 시작한다”라고 밝혔다.

사실 윤 대통령 임기 1년 간 주69시간제를 필두로,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노랑봉투법안 국회 처리 반대 등 반노동 정책에만 힘써서, 노-정 간 대화는 이뤄지지도 않았다. 지난 1일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과 이정식 노동부장관,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손경식 경총 회장이 참여한 노사정 대표자 간담회가 열릴 예정이었지만, 현 상황에 분노한 한국노총이 불참을 선언해 무산됐다.

또 한국노총은 오는 7일 긴급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경사노위 탈퇴를 논의키로 했다. 한국노총의 경사노위 탈퇴가 이뤄지면, 노-정 간 공식 대화의 문이 완전 폐쇄되는 셈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도 대통령실은 “노사관계를 정확하게 확립하고, 불법적 관행을 없애고 법치를 바로 세우는 게 더 중요하다”라고 했단다.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조합원들이 3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열린 노동개악·노조파괴 분쇄! 윤석열 정권 퇴진! 금속노조 총파업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05.31 ⓒ민중의소리

이쯤 되면 윤 대통령이 애초부터 노동자들과 대화하려는 생각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임기 중 주요 과제로 3대 개혁을 천명하고, 첫째로 ‘노동 개혁’을 꼽으며 ‘노조 불법 근절’, ‘법치 확립’을 외칠 때부터, 혹은 노사정이 모이는 사회적 대화기구 경사노위 수장에 30년도 더 된 노동운동 경력 외엔 해당분야 전문성이라곤 없는 극우인사 김문수를 앉힐 때부터 였을 수도 있겠다. 그보다 더 전 후보시절 때부터 였을 수도 있고 말이다.

새삼 ‘내 정책을 비판하는 상대는 제압하면 되지, 말을 섞을 필요 없다’는 폭력적 인식에 공포스러워진다. 정부의 제압 대상이 오늘은 노동자들이지만, 내일은 누가 될지 모르겠다. 민생 경제 파탄을 비판하는 시민일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어민일지. 그래서 오늘 현 정부를 비판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이들은 힘을 모아 서로를 지킬 수 밖에 없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