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로 해결하자” 그토록 강조했던 노조 간부는 왜 7m 망루에 올랐나

경찰의 폭력 진압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처장. ⓒ한국노총 이지현 대변인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 도로에서 높이 7m의 철제 구조물(망루)에서 고공농성을 하다 경찰로부터 '곤봉 진압'을 당한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처장은 지난 20일 전남 광양으로 내려왔다. 1년이 넘는 천막 농성에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던 포스코 하청업체(포운) 조합원의 싸움을 어떻게든 매듭짓기 위해서다.

천막 농성장에 합류하면서도 그는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히며 교섭을 시도했다. 그랬던 그가 10일 만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하청 노동자에게는 불법인 줄 알지만 그 투쟁을 선택하든가, 질기게 버티든가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이 글을 남긴 직후 그는 망루를 설치했다.

사회적 합의조차 지키지 않는 사측,
노조 반발 400일 넘게 이어지는데도 '묵묵부답'
노조 파업하자, 원청은 사실상 대체 인력 투입
"김준영 처장의 고공농성은 최후의 수단"


한국노총 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처장이 고공농성을 하는 모습. 망루에는 '하청노동자 쟁의권 쟁취를 위한 농성장', '하청노동자 노동3권을 보장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다. ⓒ김준영 사무처장 페이스북


금속노련 이효원 홍보차장은 5일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김 사무처장의 고공농성에 대해 "최후의 수단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20년 포운이 설립된 뒤 70차례가 넘는 교섭을 해왔지만 단 한 번도 단체협약이 체결된 적도, 임금 협약이 체결된 적도 없다"며 "사측이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노조를 혐오하는 태도가 강하게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발단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스코의 운송 협력업체였던 성암산업이 5개 업체로 분할 매각을 시도했고, 당시 노조의 반발로 1년여 만에 광양시장과 사측이 참여한 가운데 분할 매각은 하지 않는다는 협약서를 체결했다.

그런데 2020년 포스코 주도로 성암산업 작업권을 매각하는 절차가 진행되면서 갈등이 커졌다. 금속노련은 국회 앞에서 '고용·근로조건 승계, 노조 활동 보장'을 요구하며 천막 농성을 시작했고, 성암산업의 전 조합원도 상경해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사태가 장기화되자 대통령 직속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중재에 나섰다. 경사노위가 개입한 지 17일 만인 2020년 7월 18일, 노사 양측은 성암산업 전 조합원을 또 다른 협력사인 포운으로 고용 승계한다는 내용으로 합의했다.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던 노사 갈등은 이후 포운과의 교섭 과정에서 또다시 불거졌다.

이효원 홍보차장은 "사회적 합의의 핵심은 포운이 기존 성암산업에서 노사가 체결했던 단협을 승계하기로 한 것"이라며 "이 의미는 노조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단협을 체결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사측이 승인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측은 '사회적 합의가 임금 협약을 체결한 것이라면서 노조의 새로운 임금교섭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했다. 이 외에도 기존 단협 사항이 다 승계가 안 됐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포운 조합원들이 받는 임금은 성암산업 시절인 2018년 받았던 임금을 그대로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노사 교섭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노조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왔다. 여수지방고용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하거나 파업을 벌였고, 동시에 교섭도 이어갔다. 하지만 해결되는 건 없었다. 결국 노조는 지난해 4월 24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에 천막 농성장을 차렸다.

노조를 부정하는 사측의 태도는 갈수록 노골화됐다. 포운은 교섭 과정에서 조합원은 물론 교섭위원을 멸시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포운 조합원들이 지난달 27일에는 2시간 파업을, 28일에는 4시간 파업을, 30일에는 전 조합원 전면 파업에 돌입했는데, 원청인 포스코는 또 다른 운송 협력업체의 인력을 대체 근로에 투입시켰다. 이 과정에서 포운의 장비까지 투입됐다며 노조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김준영 사무처장은 망루를 설치하기 30여분 전, 현 상황의 핵심을 짚는 글을 페이스북에 남겼다.

"사내 하청 노동자들에게는 노동3권 중 쟁의권은 보장되지 않는다. 노조를 만들고 교섭할 수는 있지만, 원청의 하청사 바꿔치기로 대체근로가 합법이기 때문에 쟁의권을 행사할 의미가 없다. 그래서 포스코 보고 이 분쟁을 해결하자고 하면, 하청사 노사 문제에 공식적으로 개입하기 어렵다 한다. 그러면 하청사 쟁의에도 개입하지 말라고 하면 조업 차질을 그냥 지켜볼 수는 없다고 한다. 사내하청 노동자의 온전하지 않은 노동3권이 이 투쟁을 400일 넘게 만든 근원적 이유다."

대화로 해결하려던 노조 간부, 폭력 진압한 경찰
결국 사회적 대화 중단 위기 자초한 윤석열 정부

31일 새벽 5시 30분경 전남 광양시 광양제철소 앞에 설치된 포스코 하청노동자 농성장에서 경찰관들이 사다리차 두 대를 타고 올라가 고공농성중이던 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의 머리를 경찰봉으로 내려쳐 강제로 연행하고 있는 모습. ⓒ영상 캡처


김 사무처장과 가까운 이들은 그에 대해 합리적이며, 사회적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사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는 3년 전 성암산업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노사 간 극렬한 대립까지 가선 안 된다"며 사회적 합의를 통한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앞장선 바 있다. 김 사무처장은 지난해 7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유최안 씨가 스스로 만든 철장에 몸을 가두는 투쟁을 벌일 당시에도 언론 기고를 통해 '하청노동자의 극한 투쟁이 사라지려면, 노동3권부터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사무처장은 망루에 오르기 전에도 끝까지 노사 교섭을 위해 노력했다. 포스코는 시간만 끌 뿐 사태 해결을 위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이를 알면서도 사측과 협상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이 홍보차장은 "김 처장이 사측과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수차례 만났지만 포스코는 '만나는 주겠지만 해결해 주지는 않겠다'는 태도였다. 그래도 김 처장은 혹시라도 합의의 지점이 하나라도 있을까 봐 희망을 가지고 계속 나갔었다"고 전했다.

원청의 파업 무력화와 잇따른 교섭 파행에 김 사무처장은 지난달 29일 23시경, 7m 높이의 망루에 올랐다. 경찰과 소방은 반나절 뒤인 30일 오전부터 망루 주위에 에어매트를 설치했다. 이에 반발하던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을 5~6명의 경찰이 달려들어 땅바닥에 넘어트렸고, 뒷덜미를 누른 뒤 뒷수갑을 채워 연행해 갔다.

경찰과 소방은 4차례 현장 회의를 진행하더니 31일 오전 사다리차 2대를 동원해, 망루에 위태롭게 서 있던 김 사무처장을 진압하기 시작했다. 김 사무처장은 31일 오전 5시 15분에 "진압이 시작"된다는 페이스북 글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당시 김 사무처장은 가지고 있던 쇠 파이프를 허공에 휘두르거나 사다리차 난간을 치는 방식으로 저항했지만, 경찰은 경찰봉으로 김 사무처장의 신체를 가격하더니 이내 머리를 수차례 가격했다. 김 사무처장이 쓰러진 뒤에도 경찰은 경찰봉으로 계속해서 때려 제압했다.

이후 김 사무처장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응급실로 이송됐다. 김 사무처장은 이후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연행됐으며 2일 재판부는 도주 우려 등을 이유로 김 사무처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김 사무처장은 "망루에 오를 때 가장 두려웠던 건 구속이 아니라 우리의 투쟁이 패배하는 것이었다"며 "저는 들어와 있어 투쟁을 이어가지 못하지만, 바깥에 계신 동지들께서는 승리하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국노총 이지현 대변인이 전했다.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머리와 다리에 큰 부상을 입은 그는 병원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김 사무처장은 연행된 이후부터 물만 마시면서 단식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노사 교섭이 타결되기 전까진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는 입장이라고 이 홍보차장은 말했다.

한국노총은 김 사무처장에 대한 경찰의 폭력 진압에 반발하며 윤석열 정권 심판 투쟁을 선포한 상태다. 오는 7일에는 전남 광양에서 한국노총 광약지역지부에서 긴급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사회적 대화와 관련한 입장과 향후 투쟁 계획을 결정할 예정이다. 같은 날 오후에는 광양 현장 농성장 앞에서 '노동운동 탄압 분쇄! 경찰 폭력만행 규탄! 한국노총 긴급 투쟁결의대회'를 연다.

한국노총 류기섭 사무총장은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6월 1일 경사노위에서 사회적 대화를 진행하려고 예정하고 있었으나, 김준영 사무처장의 강제진압 사건으로 인해 그것조차도 물 건너간 상황"이라며 "지금 상황에서 더 이상 사회적 대화를 유지해 가는 것이 어렵지 않나라는 게 지도부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결국 대화를 중시했던 노조 간부마저 경찰이 폭력적으로 진압함으로써 이름만 남았던 사회적 대화도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2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열린 '노동자 폭력진압 경찰 규탄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포스코 하청노조의 농성 과정에서 발생한 경찰의 과잉 폭력 진압과 무차별한 공권력 남용을 규탄하고 책임자인 윤희근 경찰청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2023.06.02.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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