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DSR 완화는 위기를 키울 뿐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역전세 문제를 이유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추 부총리는 8일 관훈토론회에서 “전세금 반환과 관련해 대출 규제를 완화해주려고 한다”며 “이 목적에 한해 DSR 규제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하락 추세가 계속되는 가운데 전세가격도 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새로 들어오는 전세입자의 보증금으로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확대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역전세 위험 가구’를 102만 가구 이상으로 추산했다. 전세가격이 매매가격보다 높은 ‘깡통전세 위험가구’도 16만 가구에 달한다고 한다. 더 심각한 것은 역전세와 깡통전세 위험 가구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입자가 안전하게 보증금을 돌려받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보증금 반환을 핑계로 임대인에게 대출 지원을 하는 것은 방향도 방법도 모두 잘못된 미봉책이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지원 여력이 있다면 세입자에게 지원해야지 집주인에게 할 일이 아니다.

전셋값도 집값도 오르내리기 마련이고 그 결과 역전세가 되건 깡통전세가 되건 집주인이 이행해야 할 전세계약의 의무는 변함이 없다. 역전세가 발생했는데 보태줄 현금이 없으면 집을 팔아서 보증금을 치르면 된다. 매매가격이 전세가격보다 낮아지면 다른 자산도 팔 생각을 하는 것이 상식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계약이행의 의사가 없는 임대인으로 인해 피해를 당하게 되는 세입자를 찾아서 지원하는 일이지, DSR을 초과하는 대출을 갭 투기꾼에게까지 나눠주는 일이 아니다.

DSR 규제를 완화하면 그만큼 가계부채가 늘어난다. 그런데 지금도 가계부채는 임계치를 넘어서 있다. 가계부채의 한계를 시험하기에 DSR 완화는 너무나 위험하다. 지난 1년 동안 정부는 이미 온갖 부동산 관련 규제를 다 풀었다. 규제라고는 이제 DSR 하나 남았는데, 마지막까지 남은 것 자체가 그것이 함부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반증이다.

추 부총리는 “일정 기간 전세금 반환 목적의 대출에만 한정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역전세난이 단기간에 끝난다고 보기도 어렵고, 지금부터 돌아올 전세보증금의 규모도 간단하지 않다. 마치 제한된 목적의 부분적인 완화인 양 말하는 것은 현실을 호도하는 일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전세대출 한도를 무분별하게 상향하고, 본래 취지를 벗어나서 유주택자에게까지 전세대출제도를 시행한 결과 벌어진 일이 갭 투기의 만연이다. 그 전까지는 별 문제가 없던 전세금 보증사고가 2018년부터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고, 지난해에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대위변제 하게 된 금액이 1조원에 달했다. 올해는 4월에 일찌감치 작년 기록을 넘어섰다. 시장의 예측은 이마저도 시작에 불과하고 그 정점은 내년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주류다. 보증사고 금액이 이 정도일 뿐이고 규제를 풀었을 때 신청하는 수요는 그 몇 배가 될지 알 수 없다. 섣불리 대출로 덮으려는 시도는 자칫 문제를 금융권으로까지 확산시킬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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