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급식실 폐암산업재해 피해자 정태경 씨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4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열린 학교급식노동자 폐암산업재해 피해자 국가책임 요구 및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학교급식실 폐암사태 국가가 책임져라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2023.07.04 ⓒ민중의소리
학교 급식노동자와 학부모, 노동계와 시민사회, 진보정당이 4일 '죽음의 급식실'을 막기 위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학교에서 급식을 만들다 폐에 이상이 생긴 학교 급식노동자의 충격적인 실태가 드러났음에도, 정부와 교육 당국이 책임 있는 대책을 내놓지 않아서다. 대책위는 "정부가 가해자"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며, 위험한 일터인 급식실을 개선하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과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전국교육공무직본부를 비롯한 32개 단체는 이날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 급식노동자 폐암 산업재해 피해자 국가책임 요구 및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위원회(대책위)' 출범을 선언했다. 대책위에는 민주노총 등 노동조합과 참교육학부모회 등 학부모 단체, 시민단체, 진보당·노동당·정의당·녹색당 등 진보 정당들이 참여했다.
경기도 초등학교에서 18년간 급식노동자로 일하다 폐암에 걸려 퇴직한 '산재 피해자' 정태경 씨는 "아이들에게 급식을 만들어 주는 즐거움으로 18년간 열심히 일했지만, 어느 날 다리에 이상이 와서 병원에 갔더니 급성폐암말기 진단을 받았다"며 "지금까지 햇수로 7년을 치료받고 있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정 씨는 "폐암약이 너무 독해 매일 얼굴은 울긋불긋해졌고,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아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한다. 손발은 다 갈라져서 피가 나오고 있다"며 "그래도 다른 학교 급식노동자들이 더 이상 폐암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 저는 오늘도 이 자리에 나왔다. 학교 급식노동자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져서 자부심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지난 2021년 4월 학교 급식노동자의 폐암이 처음으로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후,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은 학교 급식노동자 일부를 대상으로 폐CT검진을 실시했다. 검진 결과는 충격적인 수준이었다. 검진 대상자 4만 2천여명 중 이상소견이 있는 노동자가 1만3천여명(32.4%)이었고, 폐암 의심자만 341명에 달했다. 학교 급식노동자들이 일반인보다 적게는 2.8배, 많게는 16.4배 폐암 발생률이 높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학교 급식노동자들이 폐 질환에 노출되는 이유는 부족한 인력으로 인한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튀김, 볶음, 구이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발암물질인 조리흄에 장시간 노출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간 노동조합은 다른 공공기관에 비해 2~3배에 달하는 식수 인원을 줄이기 위한 인력 충원과 환기시설 개선을 위한 빠른 예산 집행, 조리흄 다량 발생 메뉴 축소 등을 요구했지만, 교육부가 제시한 대책은 턱없이 부족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이윤근 소장은 "교육부와 교육청, 고용노동부에서 여러 대책이 쏟아졌지만, 문제를 막기에만 급급한 대책들이라 너무 아쉽다"며 "적정 인력 문제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적정 인력을 어떻게 산정하고, 배치 기준을 과학적으로 어떻게 조정할지에 대한 대책은 다 빠져있다. 제대로 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대책위에 참여하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오민애 변호사는 법·제도의 개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 변호사는 "조리흄은 산업안전보건법률상 유해 물질로 분류되지 않아서 급식실에서 노동자들이 조리흄에 얼마나 노출되는지 살펴보거나 이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할 조치를 취할 의무는 분류되지 않았다"며 "학교급식법도 오래전부터 운영돼 왔지만, 급식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운영하기 위한 내용을 담은 법에 급식 노동자의 건강, 안전과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오 변호사는 "단순히 예산만 추가 배치하고, 조리를 덜 할 수 있도록 식단과 조리법을 개선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조리시설과 환기 시설을 실질적으로 정비하고, 조리흄을 비롯해 유해 물질을 확인하고 법령에 담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지속적으로 급식실 환경과 노동자의 건강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대책위의 주요 요구는 ▲급식실 폐암 확진자에 대한 국가 책임 인정(국가 배상, 치료 대책, 생계 대책)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표준 배치기준 마련, 급식실 인력난 해결, 환기시설 개선, 정기검진) ▲법·제도 마련(학교급식법, 산안법 개정, 지자체 조례 제정) 등이다.
이를 위해 대책위는 대국회, 대교육청 사업은 물론 국가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진행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박은경 대표는 "이 자리가 너무 많이 미안하고 무겁게 느껴진다"며 "심각한 급식실 상황에서 교육청은 너무나 태평하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 학교 급식이 무너지지 않도록 시급히 대책 마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오늘 우리는 너무나 슬픈 대책위, 만들어지지 않았어야 할 대책위를 결성하고 있다"며 "학교 급식 현장은 공장보다 공공기관보다 심지어 군대보다 2~3배 이상 많은 식수 인원을 감내해야 한다. 친환경 급식이라는 이름으로 2~3배 더 많은 노동량을 (다른 기관 급식실의) 절반 또는 3분의 1에 불과한 노동자들이 감내하고 있고, 그 결과가 노동자들을 아프고 병들게 했다"고 지적했다.
양 위원장은 "이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와 교육부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노동자 수를 늘려 노동 강도를 낮춰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정부와 교육 당국은 학교 급식노동자들의 집단 폐암 산업재해에 대한 가장 일선의 책임자이며, 최종 책임자다. 그러나 책임을 지고 적극 예방해야 할 위치에 있는 정부와 교육 당국은 오히려 책임을 방기하며 노동자들을 죽음의 급식실 속으로 방치해 산업재해의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이것이 기업 살인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대책위는 "아이들의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는 한마디에 보람을 느끼며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는 학교급식 노동자들의 한스러운 외침에 국가는 대답해야 한다"며 "정부가 정부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학교 급식노동자와 노동계 전체, 학부모와 시민사회단체가 하나의 힘으로 죽음의 급식실을 막아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교급싟실 폐암산업재해 피해자 정태경 씨(오른쪽)와 양경수 민주놏 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4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열린 학교급식노동자 폐암산업재해 피해자 국가책임 요구 및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상징의식을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07.04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