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의 가장 핫한 키워드는 ‘커피’다. 이 두 글자로 인해 여당 대표가 현직 기자와 언론사를 향해 ‘사형에 처할 국가반역죄’라고 할 정도로 거친 언사들이 오간다. 대통령이 커피를 타 줬느냐 아니냐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하지만 정작 커피보다 더 중요한 문제, ‘사건 무마’ 여부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시간은 2011년으로 돌아간다.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부산저축은행 부실대출 수사를 하고 있었다. 이 때 대출 브로커로 수사 대상이었던 조우형이라는 사람이 있다. 훗날 대장동 게이트의 자금줄 역할을 한 사람인데, 조씨가 2011년 검찰에 불려 갔을 때 그의 앞에 놓였던 한 잔의 ‘커피’가 지금 한국의 정치권과 언론계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커피 사태의 본질은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
이 ‘커피 사태’를 이해하려면 부산저축은행 부실대출 사건과 대장동 게이트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사실 ‘커피’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이 두 사건의 관계다.
부산저축은행 부실대출 사건은 2011년 대검 중수부가 8개월간 수사인력 133명을 투입, 수사해 부산저축은행그룹 전현직 임원과 청와대 관계자를 비롯한 정관계 인사, 금융브로커 등 42명을 구속하고 76명을 재판에 넘긴 사건이다. 당시 중수부는 단일 금융 비리 사건으로 최대규모 사건이자 각종 비리의 종합판이라고 발표했다. 중수부에서 파악한 부산저축은행의 불법 대출 규모는 무려 6조315억원에 달했다.
검찰의 수사는 매우 꼼꼼했던 것으로 평가됐다. 수천억원대 ‘묻지마 대출’을 해준 경영진과 정관계 고위급 인사들은 물론 알선하거나 로비를 명목으로 몇 억원을 챙긴 브로커와 관계된 공무원들까지 구속기소됐다.
일례로 아파트 건설 사업 관련 도시계획심의 승인을 청탁해준다는 명목으로 부동산 사업자에게 1억원을 받은 건축사 사무소 직원이 구속기소됐고, 아파트 시행 사업 관련 분양 승인 로비를 명목으로 부동산 사업자에게 3억원을 받은 이들도 구속기소됐다.
대장동 일당들도 부산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대장동 개발을 추진한 대장프로젝트금융투자가 2009년에서 2010년 부산저축은행 등 11개 저축은행에서 1805억원 PF 대출을 받았는데, 이 중 1155억원이 부산저축은행그룹 계열사로부터 이뤄졌다. 이 대출금은 대장동 개발의 종자돈이 되었다. 즉 대장동 게이트의 ‘씨앗’이었던 것이다.
이 대출도 부산저축은행에서 문제가 됐던 다른 대출과 마찬가지로 대출심사가 부실했다. 통상 제출해야하는 증빙자료도 제대로 제출되지 않았고, 관련 자료들도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는데 대출금이 지급됐다. 대출 브로커도 있었다. 바로 부산저축은행 박연호 회장의 친인척인 조우형이다. 그는 이 대출을 알선한 대가로 대장프로젝트금융투자 대표로부터 10억3천만원을 받았다.
그런데 이 대출은 검찰 수사에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검찰은 이 대출과 비슷한 1000억원대의 다른 대출들과 관련해 박연호 회장 등에게 특경법상 배임 혐의를 적용했지만, 이 대출에 대해서는 입건하지 않았다. 조우형보다 훨씬 적은 돈을 받은 브로커들이 구속기소됐지만 조우형은 참고인 조사만 받고 끝났다.
조우형은 이후 다른 수사를 통해 이 대출 관련 범죄혐의가 입증돼 징역 2년6개월의 형을 받았다. 예금보험공사가 대장동 사업 관련자들을 검찰에 수사의뢰하면서 수원지검에서 수사가 진행됐고, 2014년 수원지검은 조우형에 대해 대장동 사업 대출을 알선한 대가로 금품을 받았다고 보고 알선수재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했다.
대장동 게이트가 드러나면서 2011년 수사에서 대장동 대출을 봐주기 수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졌다. 훗날 수원지검 수사로 실형을 받은 인물이 어떻게 역대급 수사인력이 투입된 대검 중수부의 수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당시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관계자들이 처벌되고 종자돈도 사라지면서 대장동 게이트도 없었을 것이라는 ‘책임론’까지 등장했다. 대검 중수부에서 이 수사를 맡았던 중수2과장이 ‘검사 윤석열’이었다.
‘커피’가 ‘수사 무마 의혹’의 핵심 키워드가 된 이유
2011년 조우형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는 박영수 전 특별검사다. 대검 중수부장을 지냈던 박영수가 윤 대통령과 중수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특수통 계열 직계 선후배로 매우 각별한 사이라는 점은 유명하다. 특히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를 맡았을 때 한직에 있었던 윤석열 검사를 수사팀장으로 발탁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수사대상의 변호사와 수사를 담당한 검사의 관계’가 얽히면서 ‘봐주기 수사 의혹’은 더욱 커져갔다.
대장동 게이트가 한창 떠들썩 했던 2021년 11월, 검찰은 2011년 부산저축은행 수사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진술이 나온다. 대장동 일당 중 한 명인 남욱 변호사가 검찰에서 2011년 대검 중수부의 조사과정에 대해 진술했는데, 문제의 ‘커피’가 이 때 등장한다.
그리고 다음달인 2022년 3월 뉴스타파는 김만배가 신학림 뉴스타파 전문위원과 2021년에 만나 2011년의 후일담을 말하는 내용을 보도한다. ([김만배 음성파일]“박영수-윤석열 통해 부산저축은행 사건 해결” https://newstapa.org/article/ybGav) 이 보도는 김만배가 2011년 조우형에게 ‘수사하고 있는 검찰에 통할 만한 사람’으로 박영수 변호사를 소개시켜줬고 사건이 무마됐다는 내용이었다. 이 보도에서도 반복적으로 ‘커피’가 등장하면서 앞선 JTBC 보도에서 등장한 ‘윤석열 커피’ 서사가 힘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다 끝난 것일까? 윤 대통령이 커피를 타 준 것이 아니라고 밝혀진다고, 부산저축은행 수사에서 부실수사 혹은 봐주기 수사 의혹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지난 7일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부산저축은행과 관련해 대장동 자금 수사를 진행했던 게 아니다. 조우형씨는 본류 수사 차원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그 부분(수사 무마 의혹)은 허위로 확인됐다.”
요약하면, 수사를 안 했으니까 수사 무마는 없었다는 말이다. 수사를 했느냐 안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왜 안 했는가’가 의혹의 핵심이다. 불법대출 혐의와 알선 수재 혐의가 뻔히 보이는데도 수사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의도’가 있었던지 아니면 ‘무능’한 것인지 둘 중 하나다. 어느 것이어도 문제가 된다.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검찰의 주장도 신빙성이 높지 않다. 조우형은 2011년에 대검 중수부에서 회사와 가족까지 계좌추적을 당했다고 말한 바 있다. 2014년 수원지검 수사 과정에서 2011년 대검 중수부가 적어도 대장동 대출의 불법성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었다.
대장동 관련 수사가 벌써 몇 년 째 진행되고 있지만,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에 대한 수사는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커피’ 보도가 오보라는 것이 모든 의혹을 덮을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