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실상 집회·시위 허가제로 만들겠다는 경찰

경찰청이 21일 국무총리 주재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를 통해 확정된 ‘집회·시위 문화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불법 집회·시위 시 예상되는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문화 개선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집회·시위를 경찰의 입맛대로 통제하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어 보인다.

이 방안은 6월 1일 국무조정실장을 단장으로 경찰청 등 7개 부처로 구성돼 발족된 ‘공공질서 확립 특별팀’에서 논의를 거쳐 마련됐다. 지난 5월 18일 윤희근 경찰청장이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1박 2일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유사 집회에 대해서 엄정대응을 하겠다고 천명한 이후에 그 방안이 구체화된 셈이다.

경찰의 기본 방침은 ‘합법 집회는 보장하되, 불법 집회는 엄정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집회·시위의 자유가 헌법적으로 보장되고 있는 만큼, 합법 집회와 불법 집회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경찰이 집회 주최 측의 사전신고에도 이를 금지 통고하며 ‘불법 집회’라는 딱지를 붙여 왔다. 그러다보니 집회가 열리기 전 소모적인 갈등만 이어지고 있다. 집회 주최 측은 경찰의 집회 금지 통고에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야 했고, 법원은 집회 주최 측의 손을 들어주는 상황이 윤석열 정부 들어 계속 반복되고 있다.

경찰이 집회를 금지할 근거를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서 찾아보기도 힘들다. 집시법 제5조(집회 및 시위의 금지)에 따르면 집회 금지 근거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해산된 정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집회 또는 시위’와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 두 가지뿐이다. 폭력 등도 ‘명백한’ 경우에만 집회가 엄격하게 제한되는 것이다. 그동안 이 조항이 적용된 사례는 거의 없다. 윤석열 정부 들어 경찰이 금지 통고한 집회도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무너뜨릴 정도로 폭력성을 띈 적은 극히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이 뜬금없이 “불법 집회 엄정 대응”을 외치며 법 개정에까지 나서는 것은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경찰은 심야시간대인 새벽 0시부터 6시까지 집회·시위를 일괄 금지하는 한편, 집회 소음 규제를 강화하고 이를 어길 시 처벌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미 국회에 해당 내용의 입법안이 발의돼 있다. 또한 출·퇴근시간대 등 주요 도로에서의 집회·시위를 제한할 수 있는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마련하고, 집회·시위를 통제하는 경찰의 질서유지선을 넘어서는 행위에 대해 처벌 수위를 높이기로 했다.

이대로라면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집회뿐만 아니라 그 어떤 집회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광화문 사거리 교통을 모두 마비시킬 정도로 국민들이 몰려들었던 ‘박근혜 탄핵 촛불’과 같은 역사적인 대규모 촛불집회는 두 번 다시 열리기 힘들어질 수 있다. 설령 국민의 힘으로 열린다고 하더라도 이는 불법이며,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이 오히려 범법자가 될 형국이다. 대중의 집단적인 목소리는 소음 측정 대상이 되고, 일정 기준이 넘으면 처벌하겠다는 경찰의 발상을 과연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고조되고 있는 여론을 공권력이 나서 통제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법 개정이 없더라도 집회 신고를 더욱 엄격하게 관리하겠다는 경찰의 입장은 본심을 그대로 드러낸 격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거나, 공공질서에 직접적 위협이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시위에 대해서는 앞으로 제한·금지 통고를 더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불법 집회로 변질되어 공공안녕에 직접적 위험이 된다고 판단되면 직접해산 조치까지 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서 ‘직접적 위험’이 무엇이냐에 대해선 경찰의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불법집회 전력이 있는 단체의 유사 집회에 대해서는 금지 또는 제한하겠다”는 윤 경찰청장의 지난 말도, 법적 근거는 뚜렷하게 없지만 여전히 유효하다는 게 경찰의 입장이다. 결국 민주주의 국가에서 집회 신고제를 완화해 집회의 자유를 더 보장하기는커녕, 오히려 허가제로 만들겠다는 선언이나 다름 없다.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헌법에도 근본적으로 위배된다. 집회·시위에 평가는 국민의 몫이다. 경찰은 집회·시위를 위축시킬 게 아니라 보장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