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당시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에게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손해배상 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이세라 부장판사)는 17일 배우 문성근씨와 방송인 김미화씨 등 36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 전 대통령과 원 전 원장이 공동해 각 원고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문씨 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청구는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문씨 등은 2017년 11월 이 전 대통령과 원 전 원장, 국가를 상대로 MB정권 당시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봤다고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여기서 제기된 블랙리스트는 MB정부 당시 국정원이 특정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고 활동을 제약하기 위해 작성하고 관리한 명단을 말한다.
국정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년 9월 MB정부 시절 ‘좌파 연예인 대응 태스크포스’를 만들고 정부 비판 성향의 문화예술계 인사 82명을 관리했다는 내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간 인사는 이외수 조정래 등 문화계 6명과 문성근 김민선 등 배우 8명,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등 영화감독 52명, 김미화 김제동 등 방송인 8명, 윤도현 신해철 등 가수 8명이었다.
재판부는 이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인정하고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가와 이 전 대통령과 원 전 원장이 정부가 표방하는 것과 다른 정치적 견해나 이념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원고들을 포함한 문화예술인들의 신상정보가 기재된 명단을 조직적으로 작성·배포·관리한 행위는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 행위”라며 “불법행위로 원고들이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은 경험칙상 명백하기에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 전 대통령 등의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원고들은 생존에 상당한 위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도 추가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압박감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만 국가가 진상조사위원회를 출범해 진상규명과 피해복구를 위한 노력을 기울인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배상 책임 범위를 설명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소멸 시효가 완성됐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지원배제 명단은 2010년 11월까지 작성됐고 소 제기는 2017년 11월이므로 국가배상법 등에서 규정한 소멸 시효 5년이 지났다”면서 “국가가 시효 완성 전 원고들의 위자료 청구권 행사를 불가능하게 했다는 등의 사유가 있었다기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편 이 소송에는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었던 유인촌 현 문체부 장관이 포함되지 않았지만 문씨 등은 유 장관이 재임하던 2008~2011년 방송프로그램 등에서 하차 압력을 받는 등 부당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유 장관은 지난달 인사청문회에서 MB정부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절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