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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음악 하는 이유

기타 연주 장면 ⓒpixabay

음악을 하는 이유는 뭘까. 물론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음악인들은 삶의 어느 막다른 길목에서 음악에 사로잡혔다. 어떤 음악인, 어떤 장르, 어떤 곡인지는 다르겠지만 그 순간 삶은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음악을 듣는 일이 가장 중요해지고, 연주하고 쓰는 일이 삶의 중심이 되었다.

물론 음악에 빠져들었다 해도 평생 음악을 하려면 음악을 통해 충분한 수입을 올려야 한다. 노래하고 연주하고 곡을 쓰고 녹음하고 가르치면서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엔 다른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음악인들 중에는 음악 외의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그 수입으로 음악을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 경우 음악은 생계가 아니라 생계를 압박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음악을 하는 이유는 뭘까. 자기 돈까지 써가면서 충분한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 음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만큼 음악이 좋기 때문이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사람마다 다른 정체성을 갖고 살기 때문에 음악을 계속하는 이유 역시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더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거나, 음악을 할 때 가장 행복하기 때문이거나, 생계이기 때문에 계속 하는 것만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다른 삶과 상황을 포괄하는 이유는 음악 자체의 마력과 음악을 통해 얻는 보상에서 나온다. 음악은 심연처럼 음악가를 끌어들인다. 음악에 사로잡힌 이들은 그 심연으로 돌진한다. 평생 돌진해야 하고, 더 깊이 돌진해야 한다고 믿는다. 더 맹렬하게 돌진하지 못하는 자신을 한탄하고 부끄러워한다.

그렇다면 음악이 되는 이야기, 계속 창작을 하게 하는 리듬과 멜로디와 노랫말과 사운드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 이야기는 삶 자체에서 온다. 모든 삶에는 이야기가 있다. 흔하고 뻔한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라 맺힌 이야기가 있다. 기쁨과 슬픔과 분노와 안타까움을 꾹꾹 눌러 담은 이야기,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가 있다. 정직하게 꺼내놓으면 다른 사람을 뒤흔들 수 있는 이야기, 다른 이들을 울리고 웃기며 감동시킬 수 있는 이야기다. 모든 삶에는 맺힌 이야기들이 있다. 어르신들이 자기 삶을 소설로 쓰면 10권도 부족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누구든 한 순간이나마 노래 같은 울림을 선사할 수 있는 이유다. 우리에게는 예술가가 아닌 사람의 말과 글과 표현을 접하고 울컥해진 순간들이 있다.

음악 ⓒpixabay

예술가는 그 맺힌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다. 보통 사람들은 마음속에 담아두고 말거나, 소셜미디어에 쓰고, 주위 사람들에게 털어놓는 이야기를 소중하게 건져 올려 어울리는 그릇에 담아내는 사람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날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묶어둔 마음의 그물에 어떤 이야기가 걸려들었는지 계속 살펴보는 사람이고, 수시로 그물을 손질하는 사람이다. 다른 예술가들이 어떤 그물을 썼는지 주의 깊게 응시하는 사람이다. 다른 이들이 건져 올린 이야기를 기웃대는 사람이다. 다른 이들의 그물과 이야기를 바라보다가 자신의 그물을 바꾸기도 하는 사람이다. 그물만 바꾸는 게 아니라 그물을 던지는 방향까지 달리하는 사람이다.

모든 예술가가 자신의 삶과 마음에만 그물을 던지지는 않는다. 어떤 예술가의 그물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넘나든다. 어떤 예술가는 그물을 던지기 위해 만나지 못한 사람과 존재를 향해 뛰어들기도 한다. 알고 있는 이야기만 하는 건 정직한 태도이지만 게으른 방식일 수 있다. 예술가는 만신처럼 다른 삶을 살고 재현하는 존재다. 다른 목소리를 품고 발산하는 존재다. 그 이야기에 끌리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건져 올려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그물을 던진다. 감각으로서만이 아니라 사유의 결과 찾아낸 이야기가 있다. 예술가는 감각과 사유의 그물을 함께 써야 한다.

우리는 예술가들이 건져 올린 이야기를 듣고 비로소 다른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예술은 다른 젠더, 다른 계급, 다른 세대, 다른 인종, 다른 국가, 다른 지역의 목소리를 만나는 월경越境이다. 요즘처럼 좀처럼 자신의 정체성과 취향과 지향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려 하지 않은 이들이 많은 시대에는 예술과 예술가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예술가가 자신의 시선을 계속 확장하고 전복해야 할 이유다. 예술가가 다른 삶을 만나야 다른 작품이 나온다. 곳곳에 맺힌 이야기, 아직 듣지 못한 이야기를 찾아내야 한다. 이 또한 음악을 하는 이유가 되어야 음악과 삶이 튼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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