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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

피아노 연주 장면 ⓒpixabay

사람들은 어떤 음악을 좋아할까. 요즘 사람들은 제각각 다른 취향과 안목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보니 서로 다른 음악을 찾아듣는 것처럼 보인다. 드라마, 영화, 책을 비롯한 문화예술 작품을 고를 때도 다른 기호와 기준을 작동시키는 듯하다. 그 결과 같은 대상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내가 듣고 보고 감동받은 무언가를 상대는 경험하지 않았거나 보았더라도 다르게 느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명예술가나 대자본이 만든 작품만이 아니라 마이너하거나 독립적인 작가/제작사가 만든 작품도 충분히 사랑받아야 하는데,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상황은 아니다. ‘충분히’라는 기준은 주관적이어도 주류와 비주류의 차이는 선명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음악 듣는 안목을 키우기 위해 애쓰면서 음악을 듣지는 않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들리는 음악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충분히 들어본 다음 좋아하는 장르를 정하지 않는다. 다들 취향을 말하지만 취향을 분명히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하게 경험한 이들은 극소수다. 온라인음악서비스나 소셜 미디어에서 좋아하는 음악인을 팔로우하고 꾸준히 찾아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다수는 그런 수고를 감당하면서 음악을 듣는 대신 다른 이들이 좋아한다고 정리한 차트 상위권 음악만 듣는다. 그게 쉽고 간편하며 익숙하다. 그 정도만 알아도 충분하다 여긴다. 온라인음악서비스에서 차트 상위권 음악을 찾아 듣기는커녕, TV 음악 프로그램만 보거나 젊은 날 좋아했던 음악을 반복해서 듣는 사람이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은 친숙한 음악이다. 새로운 대상에 호기심을 갖고 금세 마음을 열거나, 적극적으로 새로운 예술작품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보통 사람들은 친구에게 소개받거나, 온오프라인에서 접해서 친근감이 생겨야 비로소 보고 들을 생각을 한다. 징검다리가 필수다. 케이팝 음악인들과 대중예술인들이 TV, 유튜브를 비롯한 온오프라인 플랫폼에 계속 등장하는 이유다. 이름을 알리는 게 중요한 이유이다.

기타 연주 장면 ⓒpixabay

어디에선가 이름과 얼굴을 익혔다고 곧장 팬이 되지는 않는다. 몇 가지 장치가 더 필요하다. 음악의 경우 쉬운 멜로디와 잘 들리는 보컬이다. 이 또한 음악을 친숙하게 하는 장치 중 하나인데, 금세 흥얼거릴 수 있게 해주고, 귀에 쏙쏙 박히는 음악은 대중적이며 보편적이다. 대부분의 히트곡들은 곧장 따라할 수 있는 훅을 가지고 있다. 어렵지 않아야 한다. 옛날 노래가 좋았다고 하는 이유는 옛날 노래들 대부분 간명한 구조와 선명한 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0cm, 장범준, 하현우 같은 이들의 노래가 인기를 얻는 이유는 이들의 발성과 목소리가 금세 꽂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 목소리, 시원시원하고 또렷하게 다가오지 않는 목소리를 선호하지 않는다. 인디 음악인들의 음악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어려운 이유는 레거시 미디어에서 쉽게 만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음악 중에는 간명하게 들리지 않는 음악이 많고,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사운드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이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장치가 더 필요하다. 친숙한 서사다. 음악인의 삶이 만들어내는 서사나, 음악이 만들어내는 서사가 재미있어야 한다. 음악인이 고생하면서 음악을 하고 있다는 서사, 부모님/연인/자녀를 위해 애쓰는 사람이라는 서사, 로맨틱한 사람이라는 서사를 만들어내면 대중적인 반향을 만들어내기 쉽다. 사람들은 음악을 들을 때도 서사를 원한다. 우리는 모두 이야기에 중독되었다. 발라드 음악이 계속 인기를 얻는 이유는 발라드 음악의 서사가 익숙하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는 음악을 오래도록 들어왔고, 그 이야기에 길들여졌다. 물론 다른 소재와 주제를 담은 노래들이 있고, 그 노래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대세를 뒤집기는 역부족이다.

이렇게 보면 사람들이 음악을 고르는 방식은 얼마나 보수적인가. 대중문화를 비판할만한 근거이기도 하다. 10대였을 때 좋아했던 음악을 평생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방송과 매체에서 소개해주는 음악이나 다른 이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데, 쉬운 노래여야 하고, 사랑과 이별 노래를 편식한다는 사실은 헤비 리스너나 음악팬들에게는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들 입장에서는 세상에 다양한 장르와 사운드와 메시지를 품은 근사한 음악이 정말 많은데 왜 안 듣는지 안타까울 것이다.

음악 작업하는 뮤지션 (자료사진) ⓒpixabay

요즘 록 페스티벌에서는 실리카겔이 음악팬을 불러 모으고, 독립서점에 가면 강아솔과 김목인의 노래가 흘러나오지만 세상에는 그들의 존재조차 모르는 이들이 훨씬 많다. 세상 모든 이들이 어지간한 음악 마니아의 안목과 취향을 갖기는 불가능하다. 세대, 젠더, 계급, 지역, 학력 같은 정체성을 뛰어넘는 안목과 취향을 가지려면 계속 관심을 갖고 경험해야 하는데 30대 이상 세대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 좋은 음악이 널렸고 들으면 행복해지는데 왜 안 들을까 싶지만, 모든 삶에서 음악이 첫 번째가 되지는 못한다. 모든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문화를 향유하면 좋지만, 그럴 수 있는 삶이어야 하고 그러면 좋다는 경험이 쌓여야 한다. 가까운 곳에 공연장이 있고, 주변에 음악 마니아가 있어야 한다. TV나 라디오, 온라인에서 다양한 음악들이 친근하고 재미있게 다가와야 한다.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필수다. 그래야 음악 듣는 일이 즐겁고, 세상에 무척 많은 음악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음악인들이 좋은 음악을 계속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음악을 듣는 일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이 더 다양해지고, 음악 듣는 이들도 늘어날 것이다. 사람들이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이야기 하려다 삶의 환경과 조건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고 말았다. 음악을 듣는 일도 삶이고 문화이기 때문 아닐까. 문화가 바뀌어야 다양한 음악이 공존하고 공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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