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윤 대통령의 지역 순회 선거운동, 선관위 제재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경남 창원 마산어시장을 방문해 상인 및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4.02.22.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의 민생토론회가 지난달 4일부터 시작돼 22일까지 14차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해당 토론회를 포함한 윤 대통령의 지역 일정이 사실상 4월 총선을 앞둔 선거운동을 방불케 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총선 한두 달을 앞두고 이렇게 빽빽한 지역 일정을 소화했던 전례는 없었다.

윤 대통령의 민생토론회 일정은 초기부터 선거운동 논란 대상이 됐다. 1월 4일과 10일, 15일에 각각 경기도 용인, 고양, 수원 등에서 민생토론회가 진행됐는데, 같은 달 16일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연초부터 민생토론회를 핑계로 수도권의 여당 약세 지역을 돌아다니며 여당의 총선을 지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만 그 당시까지만 해도 민주당 비판이 합당하다고만 보기 어려운 측면들이 있었다. 먼저 각각의 장소에 적용되는 테마가 분명했고, 제시된 정책 방안의 경우 해당 지역과 연계되긴 했으나 옳고 그름을 떠나 국정과제 차원에서 수차례 언급된 것이었다. 가령, 용인에서 진행한 1차 민생토론회에서 제시된 소상공인 지원책, 15일 수원 성균관대에서 진행한 3차 민생토론회에서 제시된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방안 등이 그렇다. 선거를 앞두고 있다고 해서 국정과 연관된 일정을 마냥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 현직 대통령의 행보는 당연히 조심스러워야 한다. 역대 대통령들 역시 선거 기간에 부적절한 선거운동 논란이 될 만한 외부 일정을 하는 데 있어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역대 대통령들의 선거 기간 외부 일정은 대체로 매우 조심스럽게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비판을 받은 전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약 40일 앞둔 2021년 2월 부산 가덕도 신공항 예정부지를 직접 찾아 “신공항 예정지를 눈으로 보고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을 들으니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2008년 18대 총선을 나흘 앞두고 자신의 최측근인 이재오 당시 한나라당 후보 지역구의 은평뉴타운 건설 현장을 찾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대 총선 공천 작업이 한창이던 2016년 3월 대구를 찾아 ‘진박 후보’로 불리던 정종섭 전 장관과 악수한 것이 논란이 됐다.

다만 이러한 행보들은 상대 진영에서 선거운동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일회성에 그쳤다. 나아가 정치권에서는 서로 형식적으로 비판은 하더라도 정권을 잡은 쪽에서 한 번 정도는 써먹을 수 있는 현직 대통령 어드벤티지 정도로 여겨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민생토론회 등 지역 행보는 회차를 거듭할수록 정치권에서 용인되어온 관행 이상으로 선을 넘고 있는 모습이다.

2월 들어서는 기존에 5~7일 간격으로 진행하던 민생토론회 간격이 대폭 축소돼 22일까지 총 8회 진행됐다. 평균 2~3일에 한 번꼴이다. 이 기간 윤 대통령은 한참 전부터 상대국과 조율을 거쳐 확정돼 있던 독일·덴마크 순방도 돌연 가지 않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순방 대신 부산, 대전, 울산, 경남 등 전국 곳곳을 다녔다.

또한 특정 그룹이나 지역을 노린 선심성 정책이 남발되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은 대전 카이스트 민생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은 이공계 석·박사에 연구생활장학금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공계 석사에 80만 원, 박사에 110만 원이라는 구체적인 금액도 제시했다. 야당에서는 “공직선거법에서 금지한 ‘기부행위 약속’을 한 것”이라며 선거법 위반을 문제 삼았다.

울산과 경남 민생토론회에서는 그린벨트 해제, 창원 국가산업단지 지원책, 남부권 광역 관광개발 추진 등 지역 공약들을 대거 홍보했다. “무모한 탈원전 정책”, “이념에 매몰된 비과학적 국정운영” 등 전 정부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부산과 울산, 경남 민생토론회 이후에는 각각 전통시장 방문 일정까지 추가했다. 윤 대통령은 시장에서 상인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고, 마이크를 잡고 연설을 하기도 했다. 연설 때마다 지역 발전과 경제 활성화를 외쳤다. 선거유세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고, 한두번이 아니었다.

야당은 “말이 좋아 민생토론회지 정부 여당의 총선공약을 홍보하는 불법적 관권선거, 사전선거운동의 현장이다. 정치 중립의 의무를 진 대통령이 대놓고 헌법과 법률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꼴”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과거 대통령들이 비판을 받았던 선거 기간 국정과제와 연관된 일회성 행보들에 대해서는 선관위가 “선거기간 중이라 하더라도 정부가 본연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회의 등 직무활동을 하는 것은 ‘법’상 제한하고 있지 않다”고 유권해석을 내려놓은 바 있다. 다만 선관위는 대통령의 반복적인 지역 행보 등에 대해서는 어떠한 해석도 내린 바 없다. 그동안 그런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윤 대통령 사례처럼 선거를 두 달도 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 여러 지역을 돌아가면서 방문해 선심성 지역 공약 제시, 전통시장 연설, 과거 정부 비판 등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행위에 대한 선관위 차원의 제재는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도 대통령 지위를 이용해 ‘국정에 관한 직무활동’을 내세워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하는 우를 범하는 나쁜 관행이 자리잡게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에 대한 선관위의 소극적인 유권해석은 매우 아쉽다. 선관위 측은 위와 같은 윤 대통령의 반복적인 행위들에 대한 ‘민중의소리’의 유권해석 질의에 “이전 사례나 발언 등, 행위 양태를 종합적으로 봐서 현재까지는 위법 사항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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