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종섭 대사 해임하고 제대로 수사해야 한다

논란 끝에 임명된 대사가 쫓기듯이 출국하더니 불과 11일 만에 귀국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였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주호주대사에 임명했다. 공수처의 수사가 진행 중인 시점에서 전직 국방부 장관을 하필 해외 주재 대사로 임명하고 서둘러 출국시킨 것부터가 도피성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런데 무리한 임명과 출국을 강행했던 신임 대사가 짐 푼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아서 귀국했다.

이 대사는 입국하면서 ‘임시 귀국’이라고 말했다. 다음 주에 ‘방산협력 공관장 회의’ 참석을 이유로 들었다. 그런데 그 방산협력 공관장 회의는 지난해에도 두 번 열렸고 모두 화상회의로 진행됐다. 해외 주재 공관장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일이 자주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화상회의로 진행하는 것이 정상적이기도 하다. 올해 특별히 6개국 대사들을 불러들여서 한자리에 모여 앉아 회의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은 따로 없다. 외교부 전체 공관장 회의가 4월에 열릴 예정이다.

아무리 봐도 이 대사를 불러들일 명분을 만들기 위해 급조된 회의라는 인상을 피할 수 없다. 오라 가라 동원된 다른 나라 주재 대사들의 처지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외교가 정치적 목적에 휘둘리고 있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무리한 임명과 석연치 않은 귀국을 관통하는 배경으로 수사방해 목적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침 이 대사의 귀국을 앞두고 여권에서는 공수처 수사 일정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주문이 쏟아졌던 참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7일 공수처가 이 대사를 ‘즉각 소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20일 열린 국민의힘 현장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김학용 경기권역 선대위원장은 “공수처가 정치적인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신속하게 호주대사를 소환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사 측도 지난 19일 공수처에 ‘조사기일 지정촉구서’라는 것을 접수했다.

“범죄 수사를 받는 피의자가 마치 식당 예약하듯이 자기를 언제 구속해달라고 하는 것은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일이다” 다름 아닌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과거 했던 말이다. 굳이 국회 회기에 영장을 청구해서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는 야당 대표를 향해서는 이렇게 말했던 그가 지금 와서는 ‘식당 예약하듯이’ 지금 소환하라고 공수처를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증거물을 먼저 분석하고, 주변인들을 불러 조사한 뒤 윗선을 조사하는 것이 수사의 순서다. 지금 공수처는 지난 1월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증거자료들을 분석하고 있다. 이 대사의 지휘 아래 있었던 하급자들에 대한 소환조사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 핵심 피의자인 사람을 대사로 임명해서 출국시키더니 회의를 급조해서 귀국시켜서 당장 소환조사하라고 압박하는 것은 공수처 수사를 무력화시키려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이미 초유의 ‘피의자 대사’ 임명으로 외교가 휘둘리고 국격이 상처 입었다. 여기서 더하면 더할수록 외교와 국격 손상을 외면할 정도로 다급한 일이 대통령의 외압을 감추기 위해서라는 의심만 키울 뿐이다. 지금이라도 이 대사를 해임하고 정상적인 수사 일정에 맞춰 제대로 된 수사를 받게 하는 것만이 의심을 잠재울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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