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인가의 일로 기억된다. 메르스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가 났던 시절, 대전MBC의 지역 뉴스에서 난데없이 요르단 취재기, 이라크 외무장관과의 대담, 이집트 대통령과의 인터뷰 등 중동지역 뉴스가 집중적으로 보도됐다.
나는 공중파 방송이 중동지역 뉴스를 다루는 데에 아무런 불만이 없는 사람이지만 이건 좀 이상했다. 왜 중동지역 뉴스를 전국 뉴스가 아닌 대전MBC 지역 뉴스로 다루냐고? 이게 이해가 되나?
그런데 사정을 듣고 난 뒤 나는 진짜 웃겨서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당시 대전MBC 사장이 이진숙 기자였다는 이야기다. 이진숙 기자가 누군가? 젊었을 때 바그다드 종군기자로 이름을 알린 중동 전문가다. 그런 그가 대전MBC 사장에 취임하면서 대전 지역뉴스에 중동 소식을 집중적으로 다뤘다는 거다.
이진숙 씨, 대전MBC가 보도하는 지역 뉴스에서 ‘지역’이란 단어는 대전 지역을 말하는 거지, 중동 지역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혹시 중동을 대전 동구 중동으로 착각한 거라면, 거기는 중앙시장 먹자골목이 있는 곳이지 요르단하고 이라크가 있는 데가 아니라고요~.
사람 웃기는 재주
그런 이진숙 기자가 나중에 김재철의 입이 돼, 또 안광환의 입이 돼 MBC를 개판으로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이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대전 중구 중동과 middle east를 구분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MBC의 고위직에 오르니 조직이 멍멍이판이 안 될 수가 있겠나?
그런데 그 이진숙 기자가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무려 방송통신위원장에 지명됐단다. 나는 그가 방통위원장이 되면 방통위의 할 일과 신통방통을 구분 못할까봐 걱정돼 죽겠다. 혹시 방통위를 삼국지에 나오는 책사 방통(龐統)과 착각하는 거 아니냐?
아무튼 내 머릿속에 이진숙 기자는 이런 식으로 좀 얼척 없이 웃기는 기자였다. 그런데 이번에 방통위원장으로 지명된 그가 기자들에게 밝힌 소감을 듣고 나는 “와, 이건 찢었다. 광기에 가까운 개그 본능이다!”라며 감탄을 거듭했다. 그가 기자들에게 “나는 30년 넘게 방송 현장에서 일한 전직 방송인”이라며 “정치적 중립성을 지켰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고 했다는 거다.
이 정도면 적성이 보도가 아니라 개그에 있는 거 아니냐? 이렇게 웃기는 재주가 있었으면 MBC에 있었을 때 개그 프로그램이나 잘 만들 일이지, 왜 그 재주를 썩혀서 MBC는 개그프로그램을 줄줄이 말아먹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 사람, 2014년 MBC 보도본부장으로 일하면서 ‘세월호 전원 구조’ 오보를 낸 책임자였다. 게다가 그는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 조사에 불응해서 진상규명을 방해했다. 선박과 승객이 가입한 보험금 액수를 계산하는 보도를 내보냈고, 민간 잠수사의 죽음이 유가족과 국민들의 조급증 때문이었다는 황당한 보도를 내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편파 보도의 상징 같은 인물인 셈인데, 벌써 여기서부터 이진숙 씨는 정치적으로 전혀 중립적이지 않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정무직 인선 발표 브리핑에서 지명 소감을 밝히고 있다. 2024.07.04. ⓒ뉴시스
게다가 그는 이명박 정권 때 그 악명 높았던 김재철 전 MBC 사장 치하에서 홍보국장을 맡아서 언론노조 탄압과 MBC 민영화를 옹호했다. 당시 그에게 붙은 별명이 ‘김재철의 입’이었다. 그런데 그 김재철은 사장 퇴임 직후에 새누리당에 입당해 2014년 지방선거에서 사천시장에 도전했다. 어떻게 해석해도 김재철은 중립적인 MBC 사장이 아니었다. 이진숙 씨는 바로 그 김재철의 입이었고 말이다.
아, 참고로 새누리당 사천시장 후보에 도전한 김재철 씨는 당내 경선에서 무려(!) 96표(!!)를 얻어 3등으로 낙선했다. 와, 네 표만 더 얻었어도 100표는 채울 수 있었는데, 아까비!
이외에도 그가 중립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증거는 차고도 넘친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좌파 시민단체와 좌파 언론의 뒤에는 대한민국을 뒤엎으려는 기획자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를 않나, 그 SNS 글에 ‘종북주사파가 배후’라는 해시태그를 달지를 않나, 영화 서울의 봄을 좌파공정 영화라고 매도하지를 않나, “5.18 민주화운동이 폭도들의 선전선동에 따라 발생했다”는 글에 ‘좋아요’를 누르지를 않나, 제발 좀 부탁인데 그만 좀 씨불여라. 이제 더 적을 공간도 없다. 보수라서 반대하는 게 아니다
언론학자들은 방통위원장의 중립성이 매우 중요한 가치라고 이야기한다.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인데, 나는 현실적으로 그런 중립성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수가 집권하면 주요 보직은 보수의 인재풀에서 선정되기 마련이다. 진보가 집권해도 마찬가지다. 솔직하게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언론의 중립성이란 말은 허구에 가깝다. 내가 유머 감각이 좀 떨어져서 이진숙 씨만큼은 웃길 자신은 없지만 나름 웃긴 이야기를 하나 해 보겠다. 내가 과거에 다녔던 신문사(동아일보)가 자랑하는 정신이 ‘불편부당(不偏不黨), 시시비비(是是非非)’였다.
만약 이 대목에서 못 웃으신 분이 있다면 불편부당이라는 한자가 좀 생소했기 때문일 것이다. 불편부당이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한쪽 편으로 무리를 짓지 않는다”는 뜻이다. 누가? 동아일보가? 뜻을 알고 보니 개웃기지 않는가?
내가 그 회사 다닐 때 “회사 정신이 불편부당이라면서 왜 우리는 항상 보수정당 편에 서서 작당을 하나?”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을 때, 그 회사 사회부장이라는 사람이 나에게 쏘아붙였던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될 거 아냐!”
그래, 언론의 불편부당이란 건 원래부터 존재할 수가 없다. 언론은 사회의 의견을 담는 그릇이고, 그 그릇에 무엇을 담을 것이냐는 선택은 피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내가 민중의소리에 입사한지 올해로 꼭 10년째인데, 그 10년 동안 제일 행복했던 대목은 내가 진보적 성향의 기자라는 사실을 숨길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언론사 이름이 민중의소리인데 거기 기자가 보수면 그게 웃긴 거 아닌가?
그래서 나는 언론사 출신이 바로 정치에 뛰어드는 그 자체의 부당함을 비판한 적은 있어도(나는 여전히 언론사 출신들이 정계에 뛰어드는 것을 좋게 보지 않는다) 그들의 정치적 성향을 문제 삼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문제는 기자에게 그런 당파성이 어느 정도는 당연히 있는 건데, 공직자를 선택할 때에는 ‘정도의 문제’라는 것이 있다는 점이다.
보수 정권이 보수 출신 기자를 선택할 때에도, 진보 정권이 진보 출신 기자를 선택할 때에도 지켜야 할 선을 지켜야 한다. 보수랍시고 세월호 사건 발생 직후 정권 따까리 노릇이나 하고, 대전 지역 뉴스에 중동 소식을 쏟아내는 상식 밖의 인물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내가 이동관이나 이진숙 류의 인간들이 방통위원장 자리에 오르는 것에 결사반대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들이 보수라서가 아니라 수준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2019년 자유한국당 시절 인재영입 케이스로 그 당에 입당했던 이진숙이 기자들 앞에서 “언론인 생활 30년 동안 정치적 중립을 지켰다”고 씨불이면, 이게 웃긴가 안 웃긴가?
아무튼 윤석열 정권은 방송통신위원회를 쌈싸먹으려고 작정을 한 모양인데, 이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이진숙을 등용하고 싶으면 자칭 중동 전문가시니 중동에서 일을 시켜라.
참고로 대전 동구 중동 말고도 부산 해운대구, 대구 수성구에도 중동이 있다. 약속한다. 이진숙을 거기 어디서 일 시키면 절대 군소리 안하겠다. 아, 지하철 1호선 송내역과 부평역 사이에 있는 중동역도 괜찮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