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통령 취임식에 국회의장이 불참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청사 브리핑룸에서 열린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4.8.29.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22대 국회 개원식에 끝내 불참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즉 현행 헌법체제 이후 현직 대통령의 첫 불참이다. 임기 5년의 대통령은 대개 한 번의 국회 개원식을 맞는다. 4년간 예산과 입법을 결정하는 국회에 상호협력을 약속하는 자리인데 대통령이 불참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지난 29일 국정브리핑 자리에서 “지금의 국회 상황이 살아오면서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기능해야 되지 않겠나”라며 국회를 질타했다. 연장선에서 개원식도 불참한 셈이다. 거부권 행사 횟수를 비롯해 윤 대통령이 헌정사상 초유의 기록을 여럿 세운 것은 논외로 하자. 그러나 대통령 발언 전날인 28일 국회는 간호법, 이른바 구하라법 등 28개 법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했다. 그런데도 재를 뿌리듯 개원식 불참 소식이 전해졌다. “살아오면서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다.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하기도 전에 집무실과 관저를 옮긴다며 예산을 놓고 현직 대통령과 갈등을 빚는다고, 국회의장이 대통령 취임식을 불참한다면... 분명 욕을 먹는다.

대통령실에서는 일전의 전현희 의원의 발언과 야당의 계엄 언급을 핑계로 추가한 모양이다. 야당과 대통령 간의 거친 언사야 낯익은 일이다. 어제 욕하고 오늘 악수하는 게 정치이기도 하다. 겨우 그런 이유로 4년 만의 행사를 불참한 것은 대통령을 너무 작은 존재로 규정한 것이다.

2일의 개원식은 올해 정기국회 개회식을 겸해서 열렸다. 정기국회에서는 국정감사를 실시하고 내년 예산안을 의결한다.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을 통해 예산안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해야 한다. 정부에서 처리를 촉구하는 법률안도 수두룩하다. 그런데 대통령이 개원식에 불참하니 어떤 기준에 따른 판단인지 알 수 없다. 용산이 자체 설정한 ‘국회 정상화’에 어긋나면 예산이고, 법률이고 필요 없다는 것인가.

11년 만에 여야 대표가 회담을 했다. 8개 항의 공동발표문이 별 내용이 없다는 평가도 있으나 두 사람이 40여분간 독대를 한 것은 향후 신뢰 구축의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국민들로서는 오랜만에 정치가 작동하는 모습을 봤다. 그렇다면 당초 불참 입장을 정했더라도 대통령은 상황 판단을 다시 했어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용산의 입장은 더욱 강경해졌다.

그래서인지 대통령의 불참은 형식적으로는 국회의장의 초청을 거절한 것이지만 야당보다는 여당을 겨냥한 느낌이 짙다. 해병대 특검과 의료대란 대책 등에서 여론에 귀를 기울이는 제스처를 취하던 한동훈 대표에 용산은 강하게 불쾌감을 표했다. 그리고 한 대표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악수를 하는 여의도에 새로운 갈등이라는 폭탄을 던졌다. ‘그 강을 건너지 말라’는 강력한 시그널로 읽힌다. 대표 회담에서 양당의 슬로건을 비교하면서 ‘마치 여야가 바뀐 것 같다’며 중원 확장의 의지를 드러낸 한 대표가 과연 용산의 금지선을 넘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와 별개로 윤 대통령의 최근 행태를 보며 맘에 안 든다고 밥 안 먹고 학교 안 가겠다고 떼쓰는 아이를 생각하는 국민이 여럿일 것이다. 대통령 말고도 걱정거리가 산더미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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