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전 세계 교육학자들을 들썩이게 한 놀라운 교육 정책이 도입됐다. 바로 스웨덴 국가교육청이 ‘세계 최초’로 예비학교(우리나라의 유치원에 해당)에서 디지털 기기 활용을 의무화한 것이다. 스웨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국가교육청 주관의 시험(Nationella Prov)을 모두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하고 종이 시험을 폐기하겠다고 밝히며, 교육 환경의 대대적인 디지털 전환을 선언했다.
반응은 곧바로 극명하게 갈렸다. 일부 학자들은 스웨덴의 정책을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미래 교육 혁명이라며 찬양하기 시작했고,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나치게 이른 디지털 기기 사용이 교육적 효과를 넘어 발달상의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경악했다. 그리고 스웨덴 정부는 ‘일부 부작용은 발생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했다. 스웨덴 학생들의 문해력 관련 성적이 급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6년 국제 읽기 문해력 연구(PIRLS)에서 555점을 기록했던 스웨덴 학생들은 2021년 544점을 받으며, 5년 새 11점이나 하락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전국 단위 평가 결과를 도출하는 국제적인 지표가 11점 하락한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스웨덴 연구기관들은 문제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고, 스웨덴 왕립 카롤린스카 연구소는 2023년 8월 교육 디지털화 정책과 관련한 성명에서 “디지털 도구가 학생의 학습 능력을 향상하기보다는 오히려 저해한다는 명백한 과학적 증거가 있다”고 발표했다. 결국 2023년 9월, 스웨덴은 예비학교 디지털 기기 의무화, 디지털 시험 전환 정책을 전면 폐기하고 ‘종이책’으로 회귀할 것을 선언했다. 그렇게 ‘세계 최초’ 디지털 기기 의무화 정책은 문해력 퇴행이라는 부작용을 낳은, 스웨덴 교육계의 흑역사로 남았다.
AI의 예상치 못한 결과들
‘세계 최초’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정작 아이들을 놓친 스웨덴 국가교육청의 경험은 우리에게도 큰 시사점을 던져준다. 스웨덴이 디지털 기기 활용 의무화 정책을 추진했던 과정이 대한민국 교육부의 AI디지털교과서 추진 과정과 판박이처럼 닮았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난 2023년 1월 주요 업무 추진계획에서 돌연 AI 기반 코스웨어를 운영하겠다고 발표했고, ‘세계 최초’의 AI디지털교과서를 전면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세계 최초라는 것은 가장 먼저 앞서나간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변수들을 가장 먼저 체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갑작스러운 세계 최초 AI디지털교과서의 전면 도입 선언에 수많은 교육‧시민사회단체들이 우려를 표했고, 교육부는 자신만만했던 스웨덴 정부처럼 ‘일부 문제는 발생할 수 있으나 일단 도입하고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AI를 활용한 코스웨어, 디지털교과서의 전면 도입은 이렇게 말 한마디로 간단하게 추진할 문제가 아니다. 세계 최대 교원단체인 국제교육연맹(Education International, EI)는 지난 2023년 ‘AI와 교육의 예상치 못한 결과들(The Unintended Consequences Of Artificial Intelligence and Education)’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하고, 급속도로 확산 중인 AI와 기술의 교육적 활용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AI와 기술은 교육을 포함한 우리 일상에 점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AI가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것이 EI의 결론이다. 교육에서의 영향성은 장기간 종단 연구가 이뤄져야 제대로 측정할 수 있는 만큼 아직 AI를 전면적으로 교육 현장에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EI는 AI 교육 도구들이 디지털상의 각종 데이터를 학습한 만큼 기존의 편견과 불평등을 강화하고, 특히 소득이 낮은 지역일수록 특권계층의 권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OECD 역시 교육에서 AI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OECD가 EI와 함께 교육 영역에서의 AI 활용을 위한 지침서를 발간했는데, 특이하게도 이 지침서를 ‘가이드라인이자 가드레일(guidelines and guardrails)’이라고 지칭한다. AI와 기술을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사용할지 알려주는 지침서이기도 하지만, AI와 기술을 정교한 방식으로 제대로 활용하지 않으면 가드레일이 없는 절벽에서 운전하는 것과 다름없이 위험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디지털 교육 정책의 기로
온 세상이 교육 현장에서 활용할 AI와 기술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경고하는데, 유독 윤석열 정부는 자신만만하다. 지난 8월 22일 교육부는 2024년 AI디지털교과서 검정 심사에 착수하여 최종 결과를 11월 29일에 발표한다고 밝혔다. 세계 최초의 AI디지털교과서 개발을 불과 3~4개월도 안 되는 기간에 개발 완료하고, 현장 검토를 3개월 남짓 거치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현장 검토 기간은 학생들이 방학한 12월~2월이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짧은 심사, 부실한 검토 계획이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반년도 남지 않은 기간 안에 AI디지털교과서 개발과 검증, 도입을 모두 문제없이 마칠 수 있다고 공언한다. 마치 진료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하염없이 이곳저곳을 헤매는 환자들을 외면하고, “응급의료 체계는 문제가 없다”고 호언장담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떠오르는듯하다. 윤석열 정부의 ‘AI디지털교과서 전면 도입’이 스웨덴의 ‘디지털 기기 사용 의무화’ 정책처럼, ‘세계 최초’만 앞세웠다가 치명적인 결과를 떠안고 대한민국의 흑역사가 될 것이라는 걱정은 그저 기우일 뿐일까.
대한민국 디지털 교육 정책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세계 최초라는 업적에 홀려 막무가내로 추진할 것인가? 아니면 충분한 검증과 검토를 거쳐 AI와 기술의 도입 여부, 방향성을 결정할 것인가? 스웨덴의 디지털 교육 정책은 학교 현장과 학생들에게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 결국 실패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교육부는 스웨덴과 같은 길을 선택했다.
잘못된 길을 가려는 정부를 꾸짖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이제 우리가 나서서 AI디지털교과서 전면 도입에 제동을 걸고, 디지털 교육 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