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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여야의정 협의체, 출발은 대통령의 사과일 수밖에 없다

장기화된 의료공백 사태를 해결할 실마리가 엿보이며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6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의 여·야·의·정 협의체 제안에 ‘긍정적’이라고 입장을 전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한 대표의 제안에 대해 “늦었지만 다행”이라며 여야의정 협의체를 신속히 가동하자고 호응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적어도 여야와 정부 모두 협의체 가동에 대해서는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껏 대화의 물꼬가 트이지 못하고 있었던 주된 이유는 대통령실과 정부의 완고한 입장 때문이었다. ‘2026학년도 의대 증원 1년 유예’를 의정 갈등 해법으로 제시한 국민의힘 한 대표와 의대 증원 정책에서 물러날 뜻이 없다고 강조해 온 윤석열 대통령 사이의 견해 차이는 좀처럼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당정 간에도 대화가 되지 않으니 야당과 의료계를 상대로 한 대화는 시작조차 불가능했다.

대통령실은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에 동의하면서 “의료계가 합리적인 안을 제시하면 언제든 제로베이스에서 논의하겠다”고 말하며 좀 더 유연한 입장을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2026년 증원 유예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결국 협의체 구성은 잘 됐으면 좋겠지만 기존의 입장은 바꿀 수 없다는 뜻으로 보인다.

정부의 태도 변화가 없다면 의료계의 동참을 이끌어 내기 어렵고 의료대란 해결도 요원하다.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니까 대화를 할 듯 모습을 보이면서도 막상 핵심 쟁점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에서 물러서며 체면을 구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야당도. 의료계도, 지켜보는 국민들도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서 신뢰가 없는데 단순히 대통령실이 ‘협의체는 긍정적’이라는 모호한 말만으로 제대로 된 대화가 시작될 리 없다.

지금처럼 여론이 급격하게 악화된 이유도 의대 증원에 대한 찬반 입장 때문이 아니었다.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태도 때문이다. 그 사이에 윤 대통령은 “비상 진료체계가 그래도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말하며,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적반하장으로 “의료 현장을 한 번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복지부 차관은 “고열, 복통, 출혈에도 전화할 수 있으면 응급실에 가지 말라”는 망언을 했다.

지금도 응급실 뺑뺑이는 계속되고 있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의사를 만나지 못해서 죽는 사람이 생기고 있다. 그런데 이 사태를 초래한 어느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고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결국 문제해결의 출발점은 대통령의 사과일 수밖에 없다. 사태를 이렇게까지 악화시킨 책임을 인정하고 문책할 사람을 문책해야 당사자들도 최소한의 신뢰를 가지고 대화에 임할 수 있다. 지켜보는 국민들도 기대를 가지고 여야의정 협의체를 응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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