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김건희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2심 판결이 나온 이후 열흘 넘게 대통령실의 침묵이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가 항소심 판결이 나온 당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법부 판단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히지 않는 점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말한 것이 전부다. 작년 2월 1심 판결이 났을 당시 대통령실이 김 여사와 유사한 유형의 ‘전주’ 손모 씨의 무죄 판결을 근거로 김 여사와 주가조작 사건의 무관함을 주장했던 것과 매우 상반된 모습이다.
대통령실은 작년 1심 판결에 관해 무려 1,400자가 넘는 장문의 김 여사 무죄 논리를 폈다. 특히 “판결문에서 주목할 것은 김 여사보다 훨씬 더 큰 규모와 높은 빈도로 거래하고, 고가매수 등 시세조종성 주문을 직접 낸 내역이 있어 기소된 ‘큰 손 투자자’ A씨(손씨)의 경우에도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는 것”이라며 같은 논리라면 김 여사의 주가조작 관여 사실도 인정될 리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판결문의 전체적인 내용을 반론으로 충실히 반영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취재진에 당부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손 씨의 주가조작 방조 혐의와 관련해 “피고인은 도이치모터스 주식에 관해 시세조종을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에 편승한 뒤 인위적 매수세를 형성해 다른 피고인들의 시세조종을 용이하게 했다. 그에 따라 주식 시세가 증권시장의 정상적 수요와 공급에 따라 형성되지 않아 선의의 일반 투자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결과를 보였다”며 유죄 판단을 내렸다. 대통령실이 김 여사 무죄 주장의 근거로 활용한 손 씨에 대한 1심 판단이 2심에서 뒤집힌 것이다. 대통령실이 1심 때와 달리 “사법부 판단에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며 취재진의 추가 질문을 차단하면서 침묵하고 있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2심 판단대로면 손 씨와 마찬가지로 김 여사 역시 ‘시세차익을 얻으려는 의도로 시세조종에 편승해 선의의 일반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힌’ 주가조작 방조범에 해당한다. 김 여사의 계좌가 총 48회 주가조작에 이용됐다는 재판부 판단도 나왔으나, 김 여사는 애초에 기소조차 되지 않은 탓에 유무죄 판단 대상에서 배제됐다. 검찰 수사와 사법부 판단을 종합해본다면 유죄 판결을 받은 손 씨와 달리 김 여사가 법망을 빠져나간 것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일이다.
대통령실이 1심 판단을 근거로 김 여사 무죄를 주장했다면, 상급심 판단이 뒤집힌 것에 맞게 기존의 주장도 교정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1심 판결 때 냈던 입장을 명시적으로 철회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 어렵다면 2심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라도 표명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지 대통령실이 기존에 주장했던 김 여사의 무죄 논리도 법과 원칙에 맞게 자연스럽게 철회되고, 검찰이 뒤늦게라도 성역 없는 수사로 과오를 바로잡을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이 마련될 수 있다. 그것이 ‘법과 원칙’을 줄기차게 강조해온 윤석열 대통령의 신념에도 부합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바닥 가까이 추락한 윤 대통령과 권력 수뇌부에 대한 불신만 더욱 가중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