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핵발전소 노동자를 최근 인터뷰 한 일이 있다. 사고 대비 훈련에 관해 물으니, 주간 소방 훈련에 많이 참여했으나 야간 훈련 경험은 없다고 했다. 야간 훈련이 있지만 본인은 참여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주간보다 야간 사고를 더욱 우려한다. 사고 영향으로 조명이 꺼지면 노동자의 상황 대처가 어렵기 때문이다. 인터뷰에 응한 노동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시야 확보가 가장 필수적이죠. 복잡하기 때문에 경험적으로 구조를 잘 모르는 사람은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울산시 울주군에 건설 중인 새울 3·4호기(옛 신고리 5·6호기)에 시공된 약 2,000톤 물량의 그레이팅이 불량이라는 제보를 접하고 문득 노동자 인터뷰가 생각났다. 그레이팅은 격자 또는 그물망 구조로 된 덮개용 철판이다. 도로나 길가의 우수로를 덮고 있는 그레이팅을 흔히 볼 수 있다. 핵발전소 건물의 바닥 면은 사무실 등을 제외하면 층층이 그레이팅으로 시공한다. 기기 설비가 관통하는 바닥 주변은 특히 그레이팅으로 마감한다. 야밤에 긴급 사고가 발생해 부랴부랴 현장에 투입되어 뛰어다니는 노동자가 떠올랐다. 미끄럼 방지 기능이 없는 그레이팅 위에서 넘어지는 낙상은 노동자와 핵발전소 모두에게 빨간등이다.
새울 3·4호기에 시공된 약 2,000톤의 그레이팅 불량을 제기한 의인은 김상돈 씨다. 김 씨는 2021년부터 불량 그레이팅 시공을 세상에 알리며 4년째 싸우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점은 불량품 시공의 피해자인 한수원이 오히려 불량품을 감싸고 돌면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 있다.
G 업체가 새울 3·4호기에 납품한 그레이팅은 일명 ‘벌집안전그레이팅’으로 불린다. 한수원은 벌집안전그레이팅이 미끄럼 방지 기능이 있어서 납품받았다. 그러나 새울 3·4호기에 시공된 벌집안전그레이팅은 미끄럼 방지용 ‘돌기’가 돌출되지 않은 ‘비돌출’형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돌출’형이 미끄럼 방지 성능을 만족한다.
김 씨는 G 업체에서 품질관리를 맡아 온 직원의 내부고발을 통해 납품 자료를 입수했다. G 업체는 KTR(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에 돌기 돌출형 벌집안전그레이팅을 제출하여 미끄럼 방지 성능을 인증받은 후 실제로는 비돌출형을 대량 납품해 폭리를 취했다.
G 업체의 납품 비리 의혹은 2021년 김성환 의원(민주당)이 국정감사로 다뤘고, 감사원, 국민권익위원회에서도 들여다봤다.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은 이유는 피해 당사자인 한수원이 번번이 G 업체의 제품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사정 기관에 제출해왔기 때문이다.
김 씨에 따르면 그레이팅의 성능 검증은 간단하다. 건설 현장에서 새울 3·4호기에 시공된 벌집안전그레이팅을 무작위로 선별해 즉석에서 테스트하면 20분 안에 진위를 가릴 수 있다고 한다. 한수원은 이 간단한 검증을 지난 4년간 외면한 채 주구장창 G 업체가 제출하는 샘플만 테스트했다. 피해자가 왜 가해자를 감싸는가? 현장 검증으로 깃털처럼 가볍게 훌훌 털고 가시라. 황주호 사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