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하나마나 회견, 보나마나 여당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을 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4.11.07. ⓒ뉴시스

기사 마감을 앞당기는 방법 중 하나는 쓸 수 있는 부분을 미리 써두는 것이다. 물론 막상 벌어진 사건이나 상황이 예상과 다르면 날리게 된다. 기사에서 핵심은 제목이다. 독자들에게 전하려는 핵심 포인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기사의 제목을 써둘 수 있다면, 거의 다 쓴 것이나 진배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는 날이 기자수첩 마감 날이었다. 무척 부산할 것 같아 이틀 전 제목을 정해놓았다. ‘하나 마나 회견, 보나 마나 여당’. 물론 윤 대통령이 그동안의 태도를 뒤집어 국민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대책을 제시한다면 이 제목은 버려야 한다. 설혹 제시한 대책이 야당과 언론이 주문한 것에 미치지 못한다 해도 국민들 보기에 진정성이 있다면, 막무가내로 비난만 할 순 없다. 이럴 경우 정권의 존망을 놓고 정치세력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판이었다. 월말에 하겠다는 회견을 앞당겼으니, 뭐라도 색다른 것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게 정상적인 사고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정해놓은 제목을 쓸 수 있게 됐다!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 뉴스인 회견이었다. 초장에 사과한다며 고개는 숙였지만,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는 끝내 얼버무렸다. 제때 핸드폰을 못 바꾼 것? 대통령 남편의 전화에 하루 3천통씩 쌓이는 문자에 일일이 답한 여사의 정성? 사과의 이유가 불분명하니 후속조치랄 것도 없다. 제2부속실장 발령을 깜짝 뉴스인 듯 공개하고 이미 김 여사의 대외활동을 최소한으로 줄였다고 하니, 더 어찌할 것도 없다. ‘앞으로 부부싸움을 많이 해야겠다’는 말을 나름 조크라고 던지고 웃는 대목에선 국민과 대통령 부부의 아득한 거리만 확인했다. 어려운 와중에도 정권 퇴진이 운위되는 사태를 초래한 명태균씨에 대한 비판이나 험담은 한마디도 없었다. 부인과 명박사에 대한 사랑이 눈물겹다. 그러니 하나 마나 한 회견이다.

그리고 제목처럼 여당은 보나 마나다. 원내대표 등 친윤계는 회견을 안 본 사람처럼 찬양가를 불러대고, 당대표 비롯한 친한계는 뒷담화만 늘어놓는다. 국회의원들에게 한마디도 안 지던 똑똑하고 자존심 높은 한동훈은 1년 가까이 행방불명이다.

이제 막 김 여사가 이달 해외순방에 동행하지 않고, 두 사람 핸드폰 번호를 바꾼다는 소식이 다급하게 전해진다. 웃음이 났다. 신뢰를 잃고, 마지막 기대까지 꺼졌으니 그들이 무엇을 한들 누가 관심을 가질까. 용산의 시간은 끝났고, 국회와 광장 시간이 시작됐다. 대통령이 가진 마지막 카드를 깠는데 ‘개패’였다. 이제 모두 자기 패를 까야 할 시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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