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신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된 권영세 의원이 30일 취임사를 통해 국민에게 불안과 걱정을 끼쳤다며 사과했다. "변화와 혁신의 채찍질을 멈추지 않겠다"거나 "처절하게 반성하고, 국민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겠다"는 다짐도 했다. 하지만 문언을 뜯어보면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누구에게 무엇을 사과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지경이다.
권 위원장은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으로 불안과 걱정을 끼쳐드린 점"을 사과했다.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탄핵을 반대했고, 지금도 탄핵재판을 방해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권 위원장의 사과는 '탄핵을 막지 못한 일'에 대한 사과일 것이다. 물론 권 위원장이 명시적으로 이를 밝힌 것은 아니다. 그도 자신이 '탄핵을 막지 못해 죄송하다'고 밝히면 국민적 분노가 쏟아질 것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을 테다. 그러니 비겁하다.
권 위원장은 변화와 혁신, 처절한 반성을 거론한 뒤 곧바로 이재명 대표에게 "입법 폭거를 멈춰달라"고 요구했다. "나라가 살아야 정치도 있다"는 주장도 했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나라를 망친 사람은 계엄과 내란으로 위기를 자초한 윤석열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 위원장은 '윤석열'이라는 이름도 거론하지 않았다. 설령 이 대표를 비난하고 싶더라도 자신들이 감당할 반성이 무엇인지는 밝혀야 했다. "사법이 할 일은 사법에 맡겨 놓고 국회는 국회의 역할을 할 때"라는 말도 어이 없다. 국회를 통과한 헌법재판관 임명을 반대해 난국을 만들어낸 당사자가 국민의힘이다. 사법이 할 일을 방해하고 있는 자들이 이렇게 뻔뻔해도 되는지 의아할 정도다.
권 위원장의 진심은 당내 메시지였다. 권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8년 전 탄핵의 모진 바람도 이겨내고 당을 재건하여 정권 재창출을 이뤄냈다"면서 단합을 호소했다. 박근혜를 몰아낸 '8년 전 탄핵'이 그에겐 '모진 바람'이었다는 것이다. 박근혜의 국정 농단에 맞서 일군 국민의 승리가 '모진 바람'이 되는 이런 정당은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 된다. 지금 국민의힘이 그때의 교훈으로 더욱 뭉치고 있다니 국민의힘은 민주 정치의 일각이 될 자격이 없다.
권 위원장은 국민의힘 의원 중에선 그나마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인물이다. 지금과 같은 때에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취임 일성으로 나온 말들은 이런 기대를 무너뜨렸다. 누구에게 무엇을 사과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말장난과 여전히 국민과 맞서겠다는 결심이 전부다. 이제 권 위원장과 국민의힘을 정치권에서 몰아내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