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부정선거’라는 이름의 사이비 종교

국민의힘 지지층 가운데 65%가 ‘부정선거 믿는다’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신자유연대 등 참가자들이 대통령 수호 집회를 하고 있다. 2025.01.08. ⓒ뉴시스

20년도 넘은 일이다. 전에 근무하던 직장에서 후배가 무단 결근하는 일이 있었다. 전화를 걸어  출근하지 못한 이유를 묻자 후배는 다짜고짜 “선배, 종말이 다가왔는데 뭐하고 계신 거예요?”라고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극도로 흥분한 후배를 진정시키며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종말이 오고 있고, 이제 그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주장을 한 곳은 개신교 계열의 사이비 종교단체였다.

종교적 망상에 빠진 후배를 설득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후배가 다니던 교회에 연락해 목사님과 대화하도록 연결하고, 후배 어머님에게 연락해 설득을 시도했지만, 힘들었다. 망상에서 벗어난 뒤 후배는 “그때는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최근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이들을 보면서 사이비 종교를 믿고 종말론이라는 망상에 빠졌던 후배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부정선거에 대해 과학적 해명과 부정투표라며 제기한 100건이 넘는 소송에서 법원이 근거가 없다고 판결해도 부정선거를 믿는 이들은 요지부동이다.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던 후배의 태도와 비슷하다.

부정선거, 대통령과 정치인의 입을 통해 유포
이제는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도 등장


문제는 이런 부정선거 주장에 빠진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보수적 성향을 가진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부정선거 주장에 동의한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선 부정선거에 대한 믿음이 더욱 굳건하다.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이 MBC의 의뢰로 전국 성인남녀 1003명 대상 지난해 12월 29~30일 실시한 여론조사(통신3사 제공 휴대전화 가상번호 100% 무작위추출 전화면접, 응답률 16.2%, 표본오차 95%에 신뢰수준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층 가운데 65%가 ‘부정선거를 믿는다’고 응답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공수처로 압송되기 전 녹화한 메시지 발표 영상 갈무리. 2025.01.15. ⓒ대통령실 제공

더욱 심각한 것은 지지층 뿐만 아니라 대통령과 여당인 국민의힘 소속 의원도 이런 주장에 동조한다는 것이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대통령 윤석열은 지난 15일 체포 직후 공개한 자필 편지에서 “우리나라 선거에서 부정선거의 증거는 너무나 많다”라며 “총체적인 부정선거 시스템이 가동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김민전 의원은 지난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부정선거 음모론 주장을 담은 윤석열 편지를 언급하면서 “윤 대통령이 다시 출마할 일도 없는데, 이 엄청난 침묵의 카르텔을 깨기 위해 대통령직을 걸겠다니”라고 윤석열을 칭송했다.

부정선거 주장이 대통령과 정치인의 입을 통해 퍼지면서 상황은 심각해지고 있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도 부정선거 주장이 등장했다. 윤석열 변호인들은 탄핵심판 변론을 통해 부정선거를 주장했다. 심지어 극우 매체를 통해 유포된 ‘선거연수원 체포 중국인 99명 주일미군기지 압송됐다’는 가짜뉴스를 언급하기도 했다. 현직 검사가 내부 게시판에 부정선거를 검증해야 한다는 식의 글을 올렸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 서부지법에 지지자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 서부지법에 지지자들이 진입해 난동을 부리고 있다. 2025.1.19들이 진입해 난동을 부리고 있다. 2025.1.19 ⓒ뉴스1

사회 곳곳으로 퍼진 부정선거라는 사이비 종교는 이제 극우주의자들의 폭력까지 부추기고 있다. 지난 19일 윤석열 구속에 항의하며 서울서부지법에서 폭동을 일으킨 이들도 ‘부정선거’를 주장했다. 대통령과 정치인이 앞장서서 선거제도와 법치주의 등 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한하자 극우성향의 윤석열 지지자들이 ‘국민 저항권’을 참칭하면서 폭동을 일으킨 것이다.

지금 필요한 건 과학적 검증이 아니라
무런 근거 없이 선거제도를 흔드는
행위에 대해 엄정한 법적 책임을 묻는 것


여기에 더해 전광훈 등과 같은 사이비 종교인들은 비상계엄과 부정선거를 밝히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영적 전쟁이라고 거들고 나섰다. 김재원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 47일간 윤 대통령은 한남동 관저를 성채로 삼아 자신만의 성전(聖戰)을 시작했다”며 “이제 그 전쟁은 감방 안에서 계속될 것이다. 윤 대통령의 외롭고도 힘든 성전에 참전하는 아스팔트의 십자군들은 창대한 군사를 일으켰다”고 폭동을 옹호했다.

“종말이 다가왔다”며 망상에 빠져있던 후배가 망상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사이비 종교가 약속했던 종말의 날짜가 지났어도 망상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과학적인 검증을 통해 부정선거 의혹을 해소해야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다. 부정선거가 아니라면 자신있게 검증하자고 그럴싸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학적 검증이 다시 이뤄지고, 법적으로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판결이 나도 부정선거라는 사이비 믿음은 깨지기 힘들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건 이미 끝난 과학적 검증을 다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근거 없이 선거제도를 흔드는 행위에 대해 엄정한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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