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인 길원옥 할머니가 16일 별세했다. 1928년 평안북도 화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일제강점기 ‘위안부’로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었고 세월의 풍파를 넘나들다 향년 95세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길 할머니는 1998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했다. 이후 매주 빠지지 않고 수요시위에 참여하고 해외 활동도 활발하게 벌여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데 앞장섰다. 국제적 문제 환기를 위해 유엔 인권이사회와 ILO총회 등에 참석했고 프랑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등 유럽과 미국, 캐나다, 호주에 이르는 등 세계 각지를 돌며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인권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인권운동가로서의 삶이 평온한 것만은 아니었다.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에 대한 부당한 마녀사냥에 연루되어 치매 왜곡과 학대, 재산 갈취의 피해자로 둔갑되기도 했다. 민족적 시련과 시대의 고통을 감내한 삶을 존중하지는 못할망정 색깔론의 도구로 이용한 파렴치한 보수세력과 황색언론의 행태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길 할머니의 별세로 이제 생존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단 7명이며 모두 90세 이상의 고령자들이다. 용기 있게 세상의 문을 열고 피해자로 등록한 240명 중 233명이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 국가폭력의 고통과 여성인권 문제를 온몸으로 밝힌 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큰 빚을 졌지만 아직까지 온전한 명예회복을 이루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는 아예 역사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만행까지 벌어졌다.
올해는 8.15광복 80주년, 한일협정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일본군 ‘위안부’의 명예회복은 시간이 흐른다고 사장될 문제가 아니다. 전쟁폭력의 추방과 여성인권의 회복 등 생전에 그토록 바랐던 길 할머니의 유지가 부디 이루어지기를 다시 한 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