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윤종오 진보당 의원 주최로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고준위 특별법’ 졸속 통과 반대 기자회견 모습 ⓒ필자 제공
흔히 핵발전소를 화장실 없는 아파트에 비유한다. 원자로를 가동하고 배출하는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처분하는 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이하 고준위 특별법)의 국회 통과가 급물살을 타는 듯하다. 많은 언론에서 2월 임시국회 내 법안 통과를 점치고 있다. 고준위 특별법을 편의상 ‘화장실법안’이라 부르겠다.
내가 몸담은 핵발전소지역대책협의회는 종교환경회의 등과 함께 지난 2월 1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해 화장실법안 폐기를 촉구하고, 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 등을 면담했다. 또한 이재명 대표와 박찬대 원내대표에게 화장실법안 폐기 의견서를 보냈다.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처분을 위해 화장실법안이 필요하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화장실법안은 포장만 그럴싸하지, 핵폐기물을 더 많이 만들어 더 오랫동안 핵발전소 지역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악법이다. 제대로 된 화장실 건설보다 급한 대로 안방과 거실에 요강을 계속 늘려 대소변을 해결하자는 방안이다.
고준위 특별법의 대표적 독소조항인 ‘제36조(원자력발전소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의 설치ㆍ운영 등)’가 이를 가능하게 한다. 핵발전소 부지에 사용후핵연료 ‘임시’ 저장시설을 손쉽게 건설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해당 지역 주민과 시민사회에서 제36조 삭제를 줄기차게 요구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민주당조차 제36조를 고수한다.
비굴하지만 이쯤에서 무릎 꿇고 민주당에 읍소한다. 요강을 신줏단지로 여기니 읍소 외에 방법이 없다. 다만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 중단’ 약속만큼은 지켜 주시라. 제1당으로서 마지막 자존심은 지켜 주시라.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때 ‘탈원전 선언’을 하며 수명 끝난 노후 핵발전소는 폐쇄한다고 약속했다. 앞선 22대 총선에서도 노후 핵발전소 폐쇄를 약속했다.
뜬금없이 노후 핵발전소 폐쇄를 꺼내는 이유는 제36조에 관련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김성환 의원의 제36조는 안방과 거실에 놓을 요강의 개수를 “설계수명 기간 동안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는 양을 초과하여서는 아니 된다”로 못 박고 있다. 이렇게 하면 노후 핵발전소의 설계수명 연장이 불가능하다. 설계수명 이후에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고준위 핵폐기물)를 보관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환경단체들이 ‘고준위 특별법’ 졸속 통과를 반대하며 민주당 정책위의장 진성준 의원실과 면담을 하고 있다. ⓒ필자 제공
반면 국민의힘 의원들이 발의한 제36조는 “설계수명 기간 동안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는 양을 초과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위원회는 기술발전 또는 안전성에 관한 여건 변화 등이 있을 경우 위원회의 심의 의결로 저장용량을 달리 정할 수 있다.”로 단서를 달아 요강의 개수를 무한정 늘릴 수 있도록 했다.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연장을 허용한다.
김성환 의원은 21대 국회에서도 제일 먼저 화장실법안을 발의(2021.9.15.)했었다. 당시 나는 김성환 의원실의 ‘고준위 특별법 제정을 위한 입법 간담회’에 6차례 참여하며 힘을 보탰다. 그러나 제36조에 대한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면서 더 이상 참여하지 않았다. 김성환 의원실은 제36조를 통해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연장을 막을 수 있다며 ‘우리’의 동의를 구했다. 솔깃했지만, 결국 요강만 늘어나 집안을 똥 밭으로 만들 법안에 찬성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러 22대 국회다. 김성환 의원의 화장실법안은 21대 때보다 훨씬 후퇴하여 국민의힘과 대체로 같아졌다. 여야 쟁점이 해소되어 임시국회 통과를 점치는 보도가 많다. 그러나 아직 제36조의 요강 개수를 확정하는 쟁점이 살아있다. 민주당과 김성환 의원이 이것마저 양보하여 국민의힘에 백기 투항할까? 아니겠지. 윤석열 탄핵과 함께 핵 진흥 정책을 멈추지 못하면 ‘파란 윤석열’이란 비판마저 아깝다.